<오후여담>‘수도권’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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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북한강이 품은 남이섬과 자라섬은 불과 800m 거리지만, 분위기는 딴판이다. 한 해 300만 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남이섬은 항상 북적인다. 반면 자라섬은 번듯한 숙박·편의 시설 하나 없이 썰렁하다. 자라섬은 경기 가평군, 남이섬은 강원 춘천시에 속해 있다. 수도권·비수도권을 나누는 기준선에 따라 희비가 극명하게 갈린 것이다. 경기 양평과 강원 원주, 경기 이천과 충북 음성, 경기 안성과 충남 천안 등 ‘수도권 규제 분단선’이 지나는 지역은 대개 쇠락한 농촌과 활기찬 산업도시로 대비된다.

1982년 제정된 수도권정비계획법(수정법)은 수도권 과밀 억제가 목적이었지만, 얼마 안 가 주민의 삶을 억압하는 법으로 변질됐다. 역대 정부가 규제 개혁을 외치면서도 수정법은 손도 못 대거나 시늉에 그쳤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지방 여론을 의식한 탓이다. 그런데 최근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 경기도가 김포·파주·연천·양주·동두천·포천 등 접경지역 6곳과 양평·가평 등 농촌 지역 2곳을 수정법이 규정한 ‘수도권’에서 제외해달라고 건의한 것이다. 여기서 빠진 여주·이천 등도 수도권 탈퇴를 위한 독자 행동에 나섰다.

빌미는 정부가 제공했다. 지난달 예비 타당성 조사 제도를 개편하면서 이들 경기 동북부 8개 시·군을 비수도권으로 분류하자, 수도권 굴레를 벗어날 호기로 본 것이다. 이들 지역은 수정법 외에 군사시설보호·개발제한·상수도보호 등 중첩 규제에 시달려왔다. 경기 분도론(分道論)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한강 북쪽에 위치한 10개 시·군을 별도 광역 지자체로 분리하자는 논의다. 이 경우 인구 340만 명의 경기 북부는 서울·경기 남부·부산에 이어 4위 규모가 된다. 경기도 내 불균형 발전 해소를 내세우지만, 서울과 엮이면서 규제 덤터기를 써 온 과거와 차제에 결별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규제에서 탈출하려는 수도권의 분투는 눈물겹지만,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편법이 아니라 정공법이다. 수도권을 묶으면 기업 투자는 지방이 아니라 해외로 향한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경제철학의 전환’(2017)에서 “수도권 규제는 서울 집중도를 광역 수도권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균형발전을 내세웠던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참모가 ‘수정법 폐지’를 언급한 대목에 특히 눈길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