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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푸드 플러스 게재 일자 : 2019년 05월 08일(水)
바닷물을 끓여 만든 소금… 천일염과 다른 전통의 순한맛 ‘자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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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반도의 맛을 찾아서 - 2

욕조 크기 가마솥에 펄펄 끓여
갯벌 흙 투과시켜야 깔끔한 맛
건조시켜서 바로 먹을 수 있고
칼슘 함량 높고 불순물도 없어

일제때 천일염 중심 생산 전환
1970년대 서해 간척지 개발로
자염 염전 역사속 사라졌다가
제방 붕괴로 갯벌 생기며 부활


태안반도에서 생산되는 식재료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뭐니뭐니해도 음식의 기본이 되는 ‘소금’이다. 그것도 그냥 소금이 아니라 전통방식대로 바닷물을 끓여서 만드는 ‘자염(煮鹽)’이다. 태안에는 자염을 만드는 낭금갯벌이 있다. 소금가마의 움막을 염벗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움막을 가지고 있었던 부자들을 ‘벗주’라고 했다. 땅을 가진 이를 ‘지주’라고 부르고 선박을 가진 이를 ‘선주’라 부른 것과 같은 이치다. 소금 생산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현장소장 격의 기술자를 ‘염한이’라고 불렀다. 염한이는 소금생산을 위해 함토(바짝 마른 갯벌 흙), 함수(갯벌에 고여있는 바닷물)를 확보하고 땔감을 조달하는 일을 하면서 함수 끓이는 일도 직접 했다고 한다. 소금이 생산되면 벗주가 절반, 그리고 남은 절반은 염한이와 소금을 운반하거나 허드렛일 하는 간쟁이가 나눠 가진다.

# 음식의 기본은 소금

서산 동부시장에서 차로 30분쯤 달렸을까. 큰 도로에서 기도원 옆 숲길로 들어섰다. 조금씩 숲 사이로,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드는 천일염 염전의 모습들이 먼저 펼쳐져 보인다. 조각보처럼 이어진 소금밭이 끝없이 늘어선 모습이 장관이다. 천일염전을 지나 5분 정도 더 바닷가 쪽으로 달리자 두 개의 작은 섬이 있는 갯벌이 나타났다. 자동차 내비게이터는 이미 우리가 달리고 있는 곳을 파란색 바다로 표시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멀리서 오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이리 들어오시지요.” 건장한 체격의 정훈희 대표가 자염 공장 안으로 안내했다. 정 대표는 2대째 가업을 물려받아 전통 소금인 ‘자염’을 생산하고 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니 숫자가 크게 적힌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부터 사리까지 조수간만을 표시해놓은 ‘안흥항’ 기준의 달력이다. 공장 내부는 사우나탕처럼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고 소금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소금을 구울 때 나는 냄새는 뜻밖에 구수하다. 자염 생산 장소로 들어가 보니 온탕 크기의 가마솥 두 개에서 소금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갯벌을 밑천 삼고 소나무를 연료 삼아

두 명의 사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분주히 일하고 있다. 넓은 어깨와 그을린 피부를 보면 노동의 강도가 만만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 사내가 가마솥에서 한 삽을 뜬다. 눈꽃을 연상시키는 고운 입자의 소금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이것이 바닷물을 끓여서 만든 전통 소금인 자염이다. 맛을 보았다. 첫맛은 짰지만 점점 짠맛이 덜하면서 끝맛에서는 짠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탈수를 시작하니 뽀얀 우유 빛깔의 소금물이 빠져나온다. 염분이 남아있는 이 물을 인근의 두부 공장에서 간수로 받아간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금을 건조실로 옮겨 말린 후 포장을 마치면 바로 판매 가능하단다.

공장 바로 앞에 사뭇 황량해 보이는 조그마한 두 섬과 갯벌을 바라보며 정 대표는 자염과 낭금갯벌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 대표의 설명을 정리하면 이렇다. 삼국시대부터 리아스식 지형의 서해안은 갯벌의 천국이었다. 이 갯벌을 밑천 삼고 인근의 소나무를 연료 삼아 끓여 만든 자염이 유명했다. 자염을 만드는 갯벌에서는 늘 소금물 끓이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일대를 지나는 뱃전에서도 그 연기가 보였다


# 육지가 됐다 기적 같이 돌아온 갯벌

일제강점기에 서해안은 끓여 만드는 자염에서 증발시켜 만드는 소금인 천일염으로 염전 자체의 판이 완전히 바뀌었다. 바닷물의 ‘증발’을 이용한 천일염 생산방식이 ‘갯벌 흙’을 투과시켜 함수를 끓여 만들어 내는 자염보다 훨씬 생산이 수월했고 생산량도 많았기 때문이다. 염전 노동자들도 천일염전의 일이 훨씬 수월해 모두 일자리를 옮겨갔다. 특히 1970년대 이후 경제개발정책에 발맞추어 서해안 갯벌은 제방을 쌓아 간척지로 전환되며 자염염전의 ‘자염’ 또한 완전히 역사에서 사라졌다. 자염의 완벽한 몰락이었다.

이후 사라졌던 자염이 다시 돌아오게 된 계기는 전혀 뜻하지 않았던 일로 시작됐다. 태안의 낭금갯벌 일대에서 제방 공사가 진행됐는데, 공사에 동원된 노동자들이 시공업자로부터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자 출근은 하되 일에서 거의 손을 놓았다. 그러다 보니 제방 공사가 부실하게 마무리됐고, 급기야 조류가 가장 거센 사리 때 제방 두 곳이 무너지고 말았다.

둑이 허물어지면서 제방을 쌓아 육지가 된 땅에 다시 바닷물이 차올랐다. 낭금갯벌에 다시 바닷물이 드나들게 된 사연이 이렇다. 그게 벌써 50여 년 전의 일이니 제방 건설과 함께 사라졌던 갯벌은 지난 50년 시간의 퇴적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갯벌이 땅이 됐다가 갯벌로 다시 돌아온 기적 같은 이야기다. 이곳이 바로 지금 태안자염이 생산되는 태안군 근흥면 마금리 낭금갯벌이다.

# 바닷물을 끓여 만든 소금

과거에도 낭금갯벌은 자염이 생산됐던 곳이었다. 태안자염은 과거 젊은 시절에 자염 공장에서 일했던 주민의 증언을 일일이 듣고 받아 적어 복원한 것이다. 간수를 빼기 위해 최소 3년을 기다려야만 하는 천일염과 달리 자염은 건조해 바로 먹을 수 있고 칼슘함량이 높다.

‘삶을 자(煮)’에 ‘소금 염(鹽)’. 한자의 뜻을 풀면 ‘바닷물을 끓여 만든 소금’을 뜻하지만, 자염은 바닷물을 단순히 끓여만 낸 것이 아니다. 바닷물을 끓여낼 때 7일 이상 바짝 말린 갯벌의 흙(바짝 말린 갯벌의 흙은 미네랄이 다량 함유돼 있어 갯벌 위가 허연색으로 변한다)을 투과시켜야 소금 맛이 깔끔하고 좋다. 이렇게 만든 자염은 불순물이 없는 게 특징이다.

자염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갯벌 흙 확보다. 보통 투과에 쓰이는 마른 개흙은 갯벌 위에서 말려 만들어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시간이 많이 걸렸다. 자염 생산업자들이 빠르고 수월하게 일하기 위해 갯벌이 아닌 볕 좋은 곳에서 개흙을 말려봤단다. 시간은 적잖이 단축됐지만, 그렇게 만든 소금에서는 중금속이 많이 검출됐다. 자염을 만들던 이들은 결국 자염을 얻기 위해서는 갯벌의 자정작용,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됐다.

소금농사가 활황이었을 때가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며칠 뒤부터 천일염 가격이 폭등했고 이 지역 많은 천일염 염전의 소금이 모두 동났었다. 천일염 가격은 폭등했고 생산량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전통소금인 자염은 이렇듯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 하니, 생산량도 적고 고객층이 한정돼 있어 그때도 가격은 제자리였다.

# 소비가 늘어야 지켜지는 전통

자연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자염을 만드는 이들은 늘 이듬해에도 자염 생산을 계속할 수 있을지를 걱정한다. 자염은 자연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면 생산이 어렵다. 자염을 복원해 ‘태안자염’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지 올해로 15년째. 10여 년 전과 비교해봐도 날씨가 많이 바뀌었다. 엘니뇨, 태풍, 무더위, 열대야에 최근에는 미세먼지까지. 이렇게 날씨가 바뀌면 갯벌 흙을 말리는 작업이 어려워진다. 자염은 갯벌에 물이 빠져나간 ‘조금’ 기간에만 마른 개흙을 만들 수가 있다. 그것도 장마와 겨울을 빼고 나면 5∼6개월 안에 1년 치를 만들어 두어야 한다. 물때도 중요하지만 물때야 정해져 있으니 날씨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 전통소금인 태안자염이 명맥을 유지하려면 소비가 늘어야 한다. 가정에서 음식을 자주 해 먹지 않게 되면서 외식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지만, 반대로 자염을 포함한 고급 천연 조미료 시장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소비가 줄면 생산도 줄어드는 건 자명한 이치. “외식도 좋지만 집밥을 많이 해 드셨으면 좋겠다”는 게 자염을 만들고 있는 이들의 소망이다. 바다와 갯벌, 인간과 소금…. 생각이 많아졌다. 화려한 유형의 보물이나 기술, 유서 깊은 민속놀이만 전통유산은 아니다. 우리나라 전통 소금 자염 또한 지켜 내야 할 우리의 음식유산이자 세계의 음식유산이다. 자염이 세계 슬로 푸드가 정한 ‘맛의 방주’에 오른 것도 당연한 일이다.

▲  강태안 미식여행가
# 고즈넉한 사색의 명소, 신두리

태안의 다음 여행지는 신두리 해안사구다. 신두리 해변에는 모래 퇴적층이 발달한 바닷가 사막이 형성돼 있다. 바다 옆 사막 그리고 사막 바로 옆 소나무 숲. 태안에서 가장 멋지고 이국적인 해변이자 생태적으로 보존해야 하는 곳이다. 내가 여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7월의 마지막, 8월 첫 주를 빼놓고는 거의 사람들이 없다. 혼자 생각하거나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명소다. 해안 바로 근처에 서 있는 펜션과 호텔들이 옥에 티이긴 하지만….

해안사구 안내센터부터 원시적인 해안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초지 및 사막이 잘 보존돼 있다. 해안사구의 산책길 중에서 가장 길이가 긴 2시간짜리 코스를 추천한다. 시간이 충분치 않다면 소나무 숲 초반에서 다시 바닷가로 나가는 길을 통해 1시간 정도의 산책도 충분히 즐겁다. 여기서 바라보는 석양도 훌륭하다.

# 붕장어의 맛과 태안의 노을

지금부터는 신두리 근처의 밥상 얘기. 천리포 해수욕장 인근의 음식점 ‘천리포 횟집’은 붕장어 요리를 잘한다. 일대 주민들은 물론이고 외지인들에게도 대중적으로 알려진 집이다. 유독 이 집 주차장에만 손님들이 몰고 온 승용차들로 가득한 것만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간재미’ 무침이 먼저 나왔다. 두툼하고 크게 썰어낸 붕장어 회에 오이, 배, 참나물, 미나리 등과 갖은 양념의 고추장에 새콤달콤 무쳐냈다. 참나물의 쌉쌀함과 씹는 식감이 특히 좋았다.

다음 메뉴는 이 집의 대표메뉴 ‘붕장어 두루치기’. 고추장 양념이 맵지 않고 부드럽다. 붕장어의 육질과 감자의 폭신함이 고추장 양념과 잘 어울렸다. 떡볶이 국물보다 더 진하게 자글자글 익혀냈다. 저절로 손이 가는 맛이다. 제공되는 찬도 정갈하고 깔끔했다. 몇 년을 드나들었는데, 음식 맛은 변함없다. 처음 식당을 찾았을 때와 달라진 건 식당 간판이 몇 배나 커졌다는 것. TV 방송에 소개되고 손님이 몰리면서 간판을 새로 했던 모양이다. 이 정도 내공의 음식을 차려내면 간판이 적어도 될 텐데…. 포만의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 태안의 바다로 지는 해가 아름다웠다.

강태안 미식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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