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기자의 엔터 톡>‘어벤져스’라는 이름의 가족극

어버이날을 앞두고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부모님 보여드릴 만한 공연 없냐?”는 물음이었죠. 마땅히 떠오르는 작품이 없었지만, 곰곰이 생각하다 내놓은 답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어벤져스)이었습니다. “장난하는 거냐?”고 묻던 지인은 이윽고 “틀린 말은 아니네”라며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죠. 이 지인이 정말 부모님께 ‘어벤져스’ 관람 티켓을 끊어드렸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꽤 괜찮은 ‘가족극’이었다는 평가에는 고개를 끄덕인 셈이죠.

‘어벤져스’의 외피는 블록버스터입니다. ‘대작’이라 이름 붙이는 한국 영화 10편쯤 만들 수 있는 제작비를 단 1편에 쏟아붓죠. 당연히 볼거리가 넘칩니다. “큰 스크린으로 봐야 하는 영화”라는 입소문이 퍼지며 용산 아이맥스 명당자리는 개봉 후 지금까지 줄곧 매진이죠. 하지만 이 영화, 눈만 즐거운 건 아닙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역대 마블 시리즈 중 가족애를 가장 깊이 다루고 있습니다.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바람둥이의 상징이었던 아이언맨은 아빠가 됐습니다. 누구보다 승부욕 강한 그지만, 어린 딸을 두고 또다시 전쟁을 시작하는 것을 주저하는 모습에서 당위성이 읽히죠. 신의 영역에 속하는 토르 역시 가족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고, 시리즈 내내 한 번도 가족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블랙 위도는 어벤져스 멤버들이 그의 가족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어벤져스를 떠났던 호크아이가 다시금 전투에 나서게 되는 이유를 알려주는 오프닝 역시 가족의 소중함에 방점을 찍죠.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악의 상징인 타노스는 포화 상태에 놓인 전 우주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생명체 절반을 없애는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하지만 그가 과업을 수행한 후에도 전 우주는 행복해지지 않았습니다. 생명체의 절반이 사라지며 가족을 잃은 이들이 집단 우울증에 빠졌기 때문이죠. 이는 결국 어벤져스가 다시금 타노스에 맞서 모든 것을 되돌려 놓으려고 결정하는 계기가 됩니다. 관객들이 이 논리에 설득당하는 이유 역시 간단하죠. 관객들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영화 속 주인공들이 느끼는 감정에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의달에 어울리는 번듯한 특집 프로그램 하나 없어 ‘어벤져스’를 가족극으로 소개하는 상황은 못내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입에서 입으로 번지는 “3000만큼 사랑해”라는 명대사의 감동을 공유하는 기회를 잡으라 권하고 싶은데요. 아마도 2019년 가정의달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문장일 겁니다.

끝으로, 이 글을 읽으며 누군가는 ‘스포일러 당했다’고 불평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미 약 1200만 명이 결과를 알고 있는 영화이니 관대히 바라봐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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