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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철환의 음악동네 게재 일자 : 2019년 05월 09일(木)
‘헤일 수 없던’ 그 시절은 사라졌어도… 노래는 영원히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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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뷔 60주년’ 이미자

‘꽃으로 퉁 칠 생각하지 마라’는 엄마의 현수막이 웃음을 자아낸다. 가수 현철의 성대모사 가수 이름(현찰)도 떠오른다. 이제 어버이날 최고의 선물은 용돈으로 굳어졌다. 올해엔 받기 싫은 선물 순위도 공개됐다. 케이크와 꽃다발이 2, 3위에 올랐다. 먹고 나면 그뿐, 시들고 나면 그뿐이기 때문일까. 놀랍게도 1위는 ‘책’이었다. ‘눈이 잘 안 보여서’라는 건강상 이유보다는 ‘열심히 살라는 압박으로 느껴져서’라는 심리적 저항이 더 컸다.

‘열심히’보다는 ‘즐겁게’ 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니 음악동네에선 콘서트 티켓이 인기다. 어버이날부터 사흘에 걸쳐 세종문화회관에서 이 분의 노래인생 6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어느 누가 60년 전 데뷔하고도 여전히 노래할 수 있으며 또 관객을 모을 수 있단 말인가. 그분, 이미자(사진)다. 트로트 가수가 ‘격조 높은’ 무대에 선다는 걸 반대해 이사직을 사퇴한 분까지 계셨다는 뉴스는 이제 ‘격세지감’ 리스트로 이동했다. 이미자는 1989년 데뷔 30주년을 맞이해 대중가수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랐고, 그로부터 또 30년이 흐른 후 바로 그 무대에서 열창 중이다.

‘밤하늘에 잔별 같은 수많은 사연/ 꽃은 피고지고 세월이 가도/ 그리움은 가슴마다 사무쳐 오네’(‘그리움은 가슴마다’ 중). 사연 중에 가장 많은 사연은 말 못할 사연이라 했던가. 초등학교 시절을 시장에서 보냈는데 가게마다 일손을 돕는 누나 한 명씩은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말이 됐지만 기억에 남는 ‘식모’ 누나가 있다. 예뻤고 친절했다. 동네 배달청년들에게도 ‘인기 짱’이었다. 어느 날 쌀집 총각이 내게 과자봉지와 함께 봉투 한 장을 건네며 누나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어린 나이에도 연애편지라는 건 눈치챘다. 누나는 뜯어볼 생각을 안 했다. 그 후에도 몇 장 더 전달했는데 누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는 차마 하기 힘든 고백을 했다. 답장을 안 하는(못 하는) 이유가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글을 읽지 못해서였던 것이다.

▲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문맹자라고 사랑에서조차 눈멀라는 법이 있던가. 드디어 내가 대필작가로 데뷔하는 순간이 왔다. 누나가 은밀히 마음을 펼치면 나는 예쁜 글씨로 받아 적었다. 가끔은 열 살 소년의 상상력이 추가되기도 했다. 이때부터 음악이 등장한다. 그 당시 라디오를 틀면 ‘헤일 수 없이’ 뿜어져 나오던 노래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였다. 감정이 풍부한 누나는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부분에선 실제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묻고/ 오늘도 기다리네 동백 아가씨’. 지금도 동백꽃 우거진 뜰에 가면 누나의 마음이 보일 듯하다.

올해 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유년시절 함께 살았던 ‘식모’ 누나 이야기다. 만약 내가 비슷한 영화를 만든다면 이미자의 노래가 대거 등장할 것 같다. 소년은 누나에게 묻는다. ‘흑산도 아가씨’는 왜 ‘애타도록 보고픈 머나먼 그 서울을/ 그리다가 검게 타버린’ 걸까. ‘산새도 슬피 우는/ 노을 진 산골에/ 엄마구름 애기구름 정답게 가는데’ 도대체 ‘기러기 아빠’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 시절이 사라졌다고 그 노래마저 사라진 건 아니다. 스토리와 함께 남는 노래는 시들지 않는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라는 부제가 붙은 ‘순천 할매들 여자의 일생을 이야기하다’를 읽다가 기억의 회로가 1968년에 잠시 멈췄다. 그해 MBC 10대 가수 청백전은 세종문화회관의 전신인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렸다. 이미자는 가수왕(최고인기가수)으로 뽑혔고, 최고인기가요로 ‘여자의 일생’이 선정됐다. 지금의 시대 분위기로 가사를 음미해보면 난센스 같다. 하지만 주어를 사람으로 바꾸면 여전히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살아가는 이웃들은 여전히 많다.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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