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發 ‘버스 대란’ 오는데… 손 놓고 있는 정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9일 오전 서울 은평구 수색동 은평공영차고지에서 한국노총 산하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소속 조합원들이 ‘주 52시간 근무’ 시행에 따른 실질 임금 감소 대책을 요구하면서 파업 찬반 투표를 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전국서 파업투표 속속 가결
기사들 “월 110만원 임금감소”

연간 예산 1조 마련 무대책
지자체들 “정부서 지원해야”

초읽기에 들어간 ‘버스노조 파업 사태’가 이미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당시부터 제기돼 왔으나 노조의 임금 보존 요구에 대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은 여전히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관련 규제를 손보지 않은 채 국민 세금 등으로 ‘발등에 떨어진 불’만 진화하면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9일 정부 및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등에 따르면 버스 노조는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면 기사마다 월평균 최대 110만 원의 임금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버스 업계 역시 주 52시간 근로제를 맞추려면 신규 기사 1만5000여 명을 추가로 채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7300억 원 정도가 추가로 들고, 기존 버스기사의 임금 인상 보존까지 합하면 연간 1조 원 정도가 필요하다는 것이 한국교통연구원의 분석이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버스 요금 인상을 권고하는 것 외에는 뚜렷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 권고대로라면 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른 부담을 국민이 짊어져야 하지만 지자체는 요금 인상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정부·지자체가 운영비를 지원하는 ‘준공영제’와 연계해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임금을 보존해 주는 방안도 여의치 않다. 결국 국민 세금으로 임금을 보존해주는 것이므로 형평성 논란이 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임금 보존을 위해 세금을 투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산간벽지, 인기 없는 노선 등에 대한 지원은 몰라도 나머지 지역은 각각의 시장에 맡겨야 한다. 그럴 경우 택시 운전사들이 먼저 반발할 것”이라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표시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강제로 근로시간을 규제하면서 벌어진, 예고된 결과라는 반응이다. 규제를 유연하게 조정해서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지, 막대한 국민 세금을 풀어 해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개인이 선택해야 할 근로시간을 국가가 강제로 규제하면서 벌어진 사태인 만큼 원점으로 돌리긴 어려워도 유연하게 규제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타협이나 노동력 충원 등을 통해 파업 문제를 해결해도 ‘땜빵 처리’에 불과할 것”이라면서 “현장에서는 너무나 지키기 어려운 규제인 만큼 버스를 예외업종으로 하는 등 제도적인 조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차고지에서 만난 20년 차 버스 운전사 장모(62) 씨는 “버스 준공영제가 도입된 서울은 미도입 지역보다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서울시와 협상 난항을 겪으면서 임금이 제자리 수준”이라며 “주 52시간이 되면 초과 근무 시간이 줄어 임금이 감소하는 걸 감수해야 하는데, 이제는 중앙정부가 지자체에만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직접 예산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훈·윤정아 기자 powerkim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