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인간 욕망에 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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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 도둑 /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 / 흐름출판

지난 2009년 6월의 어느 저녁, 미국 출신의 플루트 연주자 에드윈 리스트는 영국 런던 왕립음악원에서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후 기차에 올라탔던 그는 트링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에 남몰래 들어가 새 가죽 299점을 훔쳐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그중에는 생명 진화를 연구했던 학자 찰스 다윈과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오지에서 목숨을 걸고 수집했던 것들도 있었다.

트링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조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어서 희귀 새들로 가득했다. 당시 19세였던 에드윈 리스트는 어떻게 이 박물관에 침입할 수 있었을까. 왜 하필이면 죽은 새들의 가죽만 들고 튀었을까.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커크 월리스 존슨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5년간 사건의 앞뒤를 추적했다. 그 내용을 기록한 책은 스릴러 소설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허구가 아닌 사실을 다루는 논픽션이지만, 새 깃털의 아름다움을 좇는 인간의 집착과 욕망을 깊숙이 성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작품의 본질에 닿아 있다. 지상 최고의 향수를 만들겠다는 야심에 사로잡힌 한 남자가 아름다운 체취를 내뿜는 여성들을 희생시킨다는 내용의 소설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이 책은 실화를 통해 다채로운 지식 여행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소설과는 다른 묘미를 준다. 인류학, 박물학의 흥미로운 대목들을 숱하게 만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인간이 다른 생명을 절멸시켜온 역사를 살필 수 있게 한다.

책은 1823년 영국에서 태어난 박물학자로 생물지리학을 개척한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가난 탓에 젊은 시절에 토지 측량 일을 해야 했던 월리스가 세상 곳곳을 탐험하며 미지의 생명체들을 수집하고, 찰스 다윈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종의 기원을 설명하는 자연선택이론을 찾아냈다는 내용이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월리스는 평생을 바쳐 수집한 생물 표본들을 대영박물관에 기증했는데, 이 표본들은 세계대전 기간에 폭격을 피해 런던 교외의 트링 박물관 등으로 옮겨 간다. 트링 박물관을 소유한 부호 월터 로스차일드는 전 세계의 동물과 새들을 모으는 데 열을 올린 수집가이기도 했다.

새와 그 깃털의 아름다움에 대한 숭배는 고대에서부터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 천재 플루티스트 에드윈 리스트가 트링 박물관에서 도둑질한 것도 그와 관련이 있다. 우연한 계기로 플라잉 낚시에 매혹된 그는 희귀 깃털로 바늘을 만드는 플라이 타잉(Fly Tying)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책은 깃털 숭배의 근원에 인류 패션 역사가 있음을 유장하게 소개한다. 깃털 열병을 앓은 최초의 환자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언급되는 것은 읽는 이로 하여금 쓴웃음을 짓게 한다. 428쪽, 1만6000원.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