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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현종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9년 05월 15일(水)
文정부의 ‘남 탓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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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정책 실패는 공무원 복지부동
정치는 야당, 경제는 외부 탓
‘2년 아닌 4년 같다’는 靑·與

공직사회 상하 불신 심각 수준
코드 인사, 정책 오류 사기 꺾어
대통령부터 ‘내 탓’ 인정해야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남 탓’을 하게 된다. 정신분석 전문가들은 4가지 이유를 든다. 첫째, 어떻게든 원인을 만들어내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둘째, 책임을 남에게 돌려 자기 잘못을 덮고자 한다. 셋째, 직접 나서진 않고 상대방을 컨트롤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마지막으로 어떤 형태로든 감정을 분출하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3년 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의 ‘남 탓 증후군’은 중증(重症) 상태에 접어들었다. 다시 동물국회·막말국회가 된 정치는 촛불 민심을 거역한 자유한국당 탓, 역대 최악의 경제 성적표는 국제 환경 및 전임 보수 정부의 정책 탓, 북핵 문제는 ‘스몰 딜’ 아닌 ‘빅 딜’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미국 탓으로 돌린다. 이제 집권 2년이 됐는데 내세울 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자 당·청의 고위 관계자들이 한목소리로 ‘공무원 탓’으로 돌리고 있다. 촛불로 탄생한 문 정부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심지어 ‘민간인 사찰 DNA’도 없는 무결점이라는데 말이다.

집권 초엔 전 정권 탓을 해도 이해가 됐지만 2년이 넘었는데도 반복하면 정상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신형 탄도미사일을 잇달아 쏘고 있는데 외국 신문에 “한반도에 총성이 멎었다” “한반도에 봄이 다가왔다”는 기고문을 보냈고, 참담한 경제 실패에도 지난 13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대한민국을 재설계하며 대전환을 추진했다”고 한 것을 보면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지난 10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방송사 마이크가 켜져 있는지 모르고 나눈 대화를 보면 현 정권 핵심부의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문 정부 정책을 총괄하는 김 정책실장은 “2주년이 아니라 마치 4주년 같다”며 ‘레임덕’을 자인하고, 이 원내대표는 공무원들의 군기를 잡겠다고 한다. 요즘 공무원들이 서로 만나면 “넌 JP 지수가 얼마냐”고 묻는다고 한다. ‘JP지수’는 적폐 지수로 전임 정권에서 청와대나 핵심 요직에 근무했다면 퇴출 대상, 역사교과서 국정화처럼 적폐 정책에 관여했다면 6, 7급도 지수가 아주 높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전·현직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과 산하 공공기관 임직원 중 26명을 수사 의뢰, 104명을 징계하라고 문체부에 권고할 지경이니 이 부처의 JP지수는 아주 높다. 이러니 요즘 상급자들은 하급자가 안을 갖고 오면 “책임질 수 있느냐”고 먼저 묻고, 하급자는 상급자 지시를 녹음하거나 서류에 흔적을 반드시 남겨두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고 한다.

공무원의 복지부동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문 정권에서 이런 일이 두드러지는 데는 4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잘못된 정책에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나 최근 버스 파업 사태를 보면 최저임금의 무리한 인상과 주 52시간제 실시 등을 핵심으로 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원인이다. 정책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무리하게 부처를 압박하다 보니 부작용만 속출한다. 탈(脫)원전, 4대강 보(洑) 철거 등도 마찬가지다.

둘째, 무능한 코드 인사가 공무원의 기를 꺾어 놓고 있다. 장관급 중 14명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는데도 임명됐다. 경력관리용 국회의원 장관은 물론, 법무법인 동료를 법제처장에, 백두대간 종주를 관련 경력으로 내세운 인사를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에 내리꽂는 식이니 공직자들이 어떻게 보겠나. 셋째, 적폐 몰이 속에 유능한 인재들은 떠나고 그 자리를 이념형, 코드형이 차지하고 있다. 전 정권에서 잘나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적폐 취급받아 뒷방으로 밀려나거나 옷을 벗는 공직자가 한둘이 아니다. 외교부에선 가장 엘리트라는 미국통은 아예 초토화돼 버렸다. 주일대사관 근무 희망자는 한 명도 없을 정도라고 한다. 넷째, 지난 정권의 정책을 자주 뒤집다 보니 보신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탈원전, 보 철거에 개입했다가 다음 정권에 자칫 적폐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공직사회 전반에 승진 기피 현상인 ‘리더 포비아(leader phobia)’가 만연해 있다고 한다.

정권은 5년이지만 공직자들은 수십 년 근무하게 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식이면 정부의 경쟁력은 바닥을 면치 못한다. 대통령부터 ‘내 탓’을 시인하며 책임을 자청해야 공직자들도 충성할 마음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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