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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9년 05월 17일(金)
아직도 지속되는 일본의 ‘戰時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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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자폭탄으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를 1947년 12월 7일 방문한 일왕 히로히토와 그를 환영하는 일본인들. 멀리 ‘원폭 돔’이 보인다. 패전 후에도 일본인들은 여전히 천황의 신민이었으며 전후(戰後) 체제 역시 변화가 없음을 보여 주는 역사적 장면 중 하나다. 자료사진

- 민주와 애국 / 오구마 에이지 지음, 조성은 옮김 / 돌베개

1955년 기준으로 제1, 2戰後
불확실 시대서 구질서로 복귀
사상적 국가정체성 변화 탐색

사상가·軍병사·학생들 통해
군국주의언어가 민주주의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파헤쳐

전쟁경험이 ‘공통의 심정’ 낳고
전후사상의 新내셔널리즘 형성


1956년 일본의 ‘경제백서(經濟白書)’에는, 당시 유행어가 된 “더 이상 전후(戰後)가 아니다”라는 말이 등장한다.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의 원폭 투하로 항복한 전범국 일본은 불과 10년 만인 1955년에 1인당 국민총생산이 전쟁 전 수준으로 회복됐다. 한국전쟁 특수가 주효했다. 스리랑카와 비슷한 개인소득 수준이었던 1955년 이전과, 고도 경제성장으로 상징되는 이후의 ‘전후’는 같은 ‘전후’로 부르지만 확연히 다르다. 그해에 보수의 연합으로 만들어진 자민당이 출범하며 장기집권을 시작하는 이른바 ‘55년 체제’가 성립됐다. ‘유동적인 사회질서’와 ‘불확실했던 미래’가 경제와 정치라는 토대에서 안정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역사사회학자 오구마 에이지(小熊英二)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대 교수는 앞의 전후를 ‘제1의 전후’, 뒤를 ‘제2의 전후’로 부른다. 제1 전후의 ‘유동적’ ‘불확실’은 제2 전후의 ‘질서’ ‘안정’이라는 말에 상대되지만, ‘개혁의 가능성’과 개혁 열기가 식어버린 ‘구질서로의 복귀’로도 바꿔 말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문학비평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은 1950년대를 회상하면서 “현실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강조가, 리얼하게 울렸던 시대였다”고 했던 반면, “고도성장이 시작되고 도쿄올림픽(1964) 무렵이 되면 사회 분위기 자체가 변해버려서, 비평이 그에 응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말하는 일본에서의 ‘전후’라는 개념은 책에 관한 적지 않은 시사를 준다. 사실 일본 이외의 나라에서 ‘전후’란 종전 직후 10년 정도를 가리킬 뿐 통상적으로 쓰지는 않는다. 2차 대전 직후 새로운 체제로 출범한 나라들은 ‘건국’이 더 익숙하다. 하지만 일본은 2차대전 이후 대일본제국이 패망하고 일본국으로 ‘건국’이 됐지만, 여전히 ‘건국 ○○년’을 취하지 않고 ‘전후 ○○년’이란 말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한다. 저자는 “일본 정부와 정권 내부의 유력자 중에 새로운 체제를 환영하지 않은 사람이 많았던 것이 한 가지 이유”라면서도, 이를 “그런 시대 구분을 나타낼 말이 없다는 사태”라고 규정한다. 전시 체제의 이데올로기가 전후 체제에도 청산되지 않고 일본인들의 잠재의식에 지속되고 있는 징후로 볼 수 있으며, 책은 그렇게 된 과정을 살피고 있다.

‘전후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공공성’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두 개의 ‘전후’ 사이에서, 일본의 내셔널리즘 등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공적인 논의와 사상에 어떤 질적 변화가 있었는지를 탐색한다. 책은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오쓰카 히사오(大塚明夫) 등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들을 비롯해 전시 조종사 등 당시 일본군 병사들, 평범한 학생 등의 수많은 언어와 언설의 궤적을 통해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언어가 어떻게 민주주의와 전후 사상의 언어로 살아남았는지 파헤친다. 예컨대 국가나 민족, 민주, 애국, 평등 등의 똑같은 말도 제1, 제2 전후에는 개념과 울림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단적인 사례로 ‘제1 전후’에는 좌파의 언어였던 ‘애국’이 ‘제2 전후’의 고도성장 이후에는 우파의 언어로 바뀌었다. 패전 후의 일본 공산당은 반미 애국을 내걸고 민족주의 노선을 택하면서 근대주의나 시민을 비판하는 혼란스러운 양태를 보였다. 당시 부르주아가 시민과 동의어로 쓰였고 1960년이나 돼야 현재의 의미를 갖는다.

그런 혼란은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역사가 존 다우어가 ‘패배를 껴안고’에서 지적한 것처럼, 미군 점령기에 이뤄진 일련의 개혁들, 즉 신헌법 제정, 농지 혁명, 군대와 재벌의 해체 등은 ‘위로부터’ 강제된 혁명이었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에 일본의 엘리트들이 추진한 개혁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개인, 자유, 권리, 민주주의 같은 사상도 민중의 요구를 통해 성취되지 못하고 미국에 의해 수혜를 주듯 던져진 것이다. 점령기의 민주화는 미군의 검열과 통제 속에 비민주적으로 이뤄졌고, 슬로건은 군국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바뀌었지만 위에서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일본인의 사고방식 및 행동양식은 바뀌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일본 사상가들의 언어가 전시와 전후의 연속성을 갖는다고 보는 저자는 전쟁의 경험을 중요하게 본다. 동시대의 공통 경험이 공통의 ‘심정’을 낳고, 그것이 ‘담론’ 변화의 원동력이 됐으며 전후 사상의 새로운 내셔널리즘을 형성시킨 토대였다는 것이다. 현대 일본과 ‘전쟁 체제’가 여전히, 깊이 결합돼 있다는 것이다. 1143쪽, 6만5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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