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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효정의 에로틱 시네마 게재 일자 : 2019년 05월 21일(火)
잘나가는 젊은 ‘제비족’… 진짜 사랑과 함께 찾아온 살인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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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칸 지골로

영화의 오프닝은 신형 세단의 앞머리가 블론디의 ‘콜미’ 오프닝 전주에 맞춰 힘차게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것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고속도로의 후경을 품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석양보다, 반짝반짝 광이 나는 브랜드 뉴 세단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는 운전석에서 음악에 맞춰 턱짓하는 줄리앙(리처드 기어)이다. 시내에 차를 세운 그는 고급 양복점에서 옷을 맞추고, 슈트에 어울리는 구두의 사이즈를 잰다. 성공한 남자의 전형을 전시하는 듯한 오프닝 시퀀스에서 약간의 반전이 있다면, 줄리앙의 모든 치장비용을 한 중년 여성이 계산한다는 것이다. 여자가 수표를 꺼내 사인할 때면 줄리앙은 멀찌감치 서서 다음 쇼핑 목록을 구상한다.

서술한 대목은 막 인기몰이를 시작한 리처드 기어를 대스타의 반열에 올린 폴 슈레이더의 1980년 연출작, ‘아메리칸 지골로’의 오프닝이다. 젊고 잘생긴 줄리앙은 상류층 여성들을 상대로 하는 이른바 남자 에스코트, 즉 지골로다. 앤(니나 반 팰랜트)은 시골 촌뜨기였던 줄리앙을 고급스럽게 꾸며 상류층 여자들과 밤을 보내게 하고 수수료를 가져가는 그의 포주다. 앤이 주선한 고객과 밤을 보낸 후, 그는 베벌리힐스의 고급 호텔 바에서 한 여자, 미셸(로렌 허튼)을 발견하고는 추파를 던진다. 긴 시간 동안 외로움에 찌들어 있었던 것 같은 미셸은 줄리앙의 유혹을 기다렸다는 듯 반긴다. 미셸은 상원의원의 아내로 숨죽이며 살아가는 서글픈 삶을 위로받고 싶어 하지만 그의 넋두리가 부담스러워진 줄리앙은 이내 자리를 뜨고 미셸은 한참을 아쉬워한다.

며칠 후, 줄리앙은 또 다른 포주, 리옹(빌 듀크)에게 작업을 제안받는다. 위험한 일을 가리지 않는 리옹이 내키지 않지만 그는 웃돈을 준다는 제안에 일을 승낙한다. 팜 스프링스의 한 저택에 도착한 그는 이내 불안한 기류를 감지한다. 섹스를 나눌 여자의 남편이 줄리앙을 맞이하면서 반드시 자신의 눈앞에서 일을 끝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다. 또한 남편은 여자를 때리고 수갑을 채우라고 시키는 등 각종 변태 성행위를 강요한다. 이 모든 석연치 않은 조건을 수행한 줄리앙은 서둘러 저택을 떠난다. 집에 돌아오고 며칠 되지 않아 예기치 않은 방문객이 찾아온다. 현관 너머에는 처음 만났을 때만큼이나 처절하고 고질적인 외로움을 띤 얼굴의 미셸이 있다. 미셸은 당신과 자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며 줄리앙에게 거액을 안겨준다.

▲  김효정 영화평론가
줄리앙은 미셸의 돈을 챙기고 그를 침대로 데려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줄리앙은 느닷없이 자신의 아파트로 파고드는 미셸의 존재를 기다린다. 미셸이 안겨주던 돈다발은 그를 향한 애정 어린 키스로, 돈벌이의 수단이었던 섹스는 미셸과 함께하기 위한 애틋한 시간으로 바뀌어간다. 미셸을 위해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함께 살아보고픈 꿈을 꾸려는 찰나 줄리앙은 팜 스프링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다. 며칠 전 팜 스프링스에서 만났던 부인이 살해된 것이다. 경찰은 줄리앙이 변태 성행위를 하는 도중 여자를 살해했다고 결론을 내린다. 줄리앙은 사건이 일어나던 날 밤 리사라는 고객과 침대에서 뒹굴고 있었으나 신분 노출을 염려한 리사가 그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주지 않는 것이다.

결국 줄리앙은 꼼짝없이 살인 누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한편, 줄리앙과 미셸의 관계를 알아버린 상원의원은 아내를 선거 기간 동안 로마로 보내버리려는 계획을 세운다. 사면초가에 놓인 줄리앙은 결국 감옥행을 택한다. 사지가 꺾여나간 듯한 고통 앞에 놓인 줄리앙에게 미셸이 찾아온다. 접견실의 유리를 사이에 두고 미셸은 줄리앙을 위해 사건 당일 같이 있었다는 증언을 했으며 남편과는 헤어질 것이라는 고백을 한다. 유리에 비친 미셸을 매만지며 줄리앙은 흐느낀다.

소년의 테를 벗지 못한 줄리앙의 안도 섞인 통곡으로 영화는 쓸쓸히 끝을 맺는다. 슈레이더 감독은 연출 데뷔 이전, 각본가와 평론가로 활동했다. 그의 두 번째 연출작, ‘아메리칸 지골로’는 그의 천재적인 필력과 이미지 연출의 정점을 보여주는 수작이자, 소년과 청년의 그 중간 어디에서 크지 못한 남자의 성장을 약간의 시기와 선망으로 관조하는 에세이적(的) 필름이기도 하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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