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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9년 05월 22일(水)
커피 한잔 놓고 사교모임·정치토론… ‘제3 장소’의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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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는 오늘날의 ‘제3의 장소’를 생각하는 좋은 텍스트다. ⓒUnsplash

■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세상 - (17) 현대 카페로 진화한 英 커피하우스

17세기에 런던서 시작된 문화
귀족·평민 차별없이 입장 가능
다양한 분야 자유로운 토론 속
이곳서 당파 결성되는 경우도

전세계 정보 교환·발신의 거점
저널리즘·광고 발전하는 바탕

개인 공간이자 함께 있는 공간
오늘날 꼭 필요한 ‘제3의 장소’


▲  18세기 런던 커피하우스 내부 모습. ⓒlookandlearn.com
북카페는 카페이기도 하고 서점이기도 한 일종의 복합문화공간이다. 그런데 카페도 아니고 서점도 아닌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구립도서관에도 북카페는 있다. 대학에서도 혼자 앉아서 공부하기보다는 여럿이 함께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도록 바닥에 누워서 공부하고 휴식하는 ‘카페형 도서관’을 만들기도 한다. 스터디를 위한 ‘스터디카페’도 있고, 음악을 즐기고 대화를 주고받으며 교류하는 ‘라이브카페’도 있으며, 인터넷 사이트의 동호회 이름에도 곧잘 카페라는 이름이 붙는다. (게다가 이 글이 연재되는 코너 이름도 ‘지식카페’다.) 그렇다면 ‘카페’의 무슨 성질이 여러 분야 사람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묶어내는 것일까?

최근 대도시에 급격하게 늘어나는 카페는 하나의 사회현상이다. 그런데 이것과 비슷한 모습은 이미 17∼18세기에 걸쳐 영국에서 시작해 유럽의 사교장이 된 커피 전문점인 커피하우스(Coffee House)에서 나타났다. 아라비아반도 끝에 있는 예멘의 모카에서 생산된 커피가 16세기부터 유럽에 알려지면서 18세기 런던에서는 커피하우스, 19세기 파리의 카페, 20세기 바이마르 시대 베를린의 카페 등 시대마다 도시에서 번성하며 유럽 근대도시 안에서 독특한 매력을 갖는 공간으로 등장했다.

커피하우스가 처음으로 런던에 등장한 것은 1652년이었다. 옛날에는 이런 장소가 아니면 커피를 마실 수 없는 귀중한 것이었지만, 이들은 커피를 몸에도 좋고 정신적으로도 좋다고 여겨 1683년 런던에 약 3000개, 1714년에는 약 8000개나 생겼다. 이런 커피하우스 덕분에 신분과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커피하우스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았으므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고 사업에 관한 대화도 할 수 있었다. 펍이라는 술집보다 값도 쌌다.

게다가 당시 주택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아 집에 사람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웠던 이들이 이곳을 많이 이용했다. 이것은 손님이 오면 집에 불러들이기보다 인근의 카페에서 만나는 오늘날 우리의 사정과 다를 바가 없다.

커피하우스는 귀족이든 평민이든 돈만 내면 들어가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특이한 장소였다. 이곳에서는 유명한 사람이라고 자리를 양보하지도 않았으며, 상대방이 누구든 저항을 느끼지 않고 자신과 취향이 같은 사람끼리 정치와 경제, 문학과 예술을 논할 수 있었다. 다만 이곳에는 남자만 출입할 수 있었으므로 연인이 데이트하는 곳이 아니었다. 이곳에서는 술과 도박을 엄격히 금지했고 큰 소리로 떠든다든지 상스러운 말을 해서는 안 됐다. 그러나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신문이나 잡지를 낭독해 주었다. 초기의 신문은 이렇게 시작했다. 이들은 여기에서 정치를 토론하고 패션을 화제로 삼으며 문학을 두고 논쟁을 하고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거래도 성사시켰다. 살롱이나 클럽과는 달리 커피하우스는 길에 직접 접속한 개방적인 장소였다. 사람들이 오가며 자유로이 들를 수 있게 길에 접하고 있는 상업공간은 공공공간 못지않게 활기찬 교류의 장소가 될 수 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당시 런던의 커피하우스에서는 우리가 카페에서 흔히 보듯이 사람들이 따로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한가운데의 테이블을 둘러싸고 자유로이 정치를 논하고 권력을 비판했다. 이 점이 커피하우스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그래서 커피하우스는 청교도 혁명에서 왕정복고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론이 형성되는 장소가 될 수 있었다. 당국은 정보원을 보내 커피하우스의 동향을 살펴보게 했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탄압하지는 않았다. 심지어는 이곳에서 당파가 결성되기도 해서 직업, 계급, 정당마다 제각기 커피하우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토리당의 오진다 커피하우스(Ozinda’s Coffee House)와 그것에 인접한 휘그당의 세인트 제임스 커피하우스(St. James’s Coffee House)였다.

그러나 18세기 입헌 군주 정부가 안정을 찾아가면서 정치적 논쟁의 장이었던 커피하우스의 역할은 크게 줄었다.

커피하우스는 전 세계의 식민지에서 수집된 정보를 교환하고 이 정보를 발신하는 거점이기도 했다. 이 당시 런던의 시민들은 금융 센터였던 런던 시티 거래소 가까운 곳에 있는 커피하우스에 모여 상인들의 정보를 얻었다. 인쇄술의 발달로 신문은 발행됐지만 가정마다 배달되지는 않고 신문을 커피하우스에 비치해 이것을 돌려 보았다. 또 그곳에 가면 런던 공보(London Gazette, 정부 공고)를 읽을 수 있었다. 이런 것이 바탕이 돼 커피하우스를 중심으로 저널리즘과 광고가 발전했다.

또 이곳은 편지를 교환하는 우편국 역할도 했다. 영국에서는 관영 우편 제도가 상당히 일찍부터 정비돼 있었지만, 17세기 후반에도 여전히 호별 배달 제도가 확립돼 있지 않아 여관이나 커피하우스에 놓아두고 찾아가게 했다. 특히 커피하우스는 사설 외국우체국 역할도 했다. 외국으로 보내는 선박 우편은 커피하우스가 우편물을 받고 선장이 출항하기 전에 이것을 모두 모아서 출항하기도 했다.

힘을 축적해온 신흥 부르주아는 커피하우스를 통해 궁정이나 국회에 출입하는 귀족에게서 정보를 얻고 상인끼리 그 정보를 교환했다. 런던에는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인 1571년에 거래소가 열렸으나 1666년 런던 대화재로 소실된 다음 재건됐다. 그러나 상인들은 이 거래소를 사용하지 않고, 근처에 있는 커피하우스에서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며 거래했다. 개러웨이 커피하우스(Garraway’s Coffee House)에서는 촛불에 핀을 넣어 두었다가 주변의 초가 녹아 핀이 쓰러지는 직전에 값을 매긴 낙찰가로 선박을 거래하는 ‘촛불 경매’가 성행하기까지 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에드워드 로이드 (Edward Lloyd)가 1688년에 시작한 로이즈 커피하우스였는데, 특이하게 요즈음의 편의점처럼 24시간 영업을 했다. 당시 아프리카에서 재배한 커피는 동인도회사에 의해 런던으로 많이 수출됐는데, 텔레비전이나 신문이 없던 시대에 커피하우스는 이런 정보를 얻는 데도 제격이었다. 모험가의 항해에 돈을 걸고 있던 투자가나, 다음의 성공을 노리는 선주, 선원들은 여기에서 항해 정보, 배의 입·출항, 매매 정보 등을 주고받았다. 이 정보는 1696년 ‘로이즈 리스트’로 정리됐는데, 이 리스트를 바탕으로 투자가들이 해상보험을 매매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1771년 보험인수인이 출자해 ‘로이즈 협회’를 설립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 최대의 보험 회사인 로이즈 런던(Lloyd’s of London)의 시작이었다.

커피하우스는 왕정복고 시대에 폐쇄령이 내려졌지만 그래도 세금을 내면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는 대지주가 지배 체제를 확립하고 사회의 계층 질서가 뚜렷해지면서 상류계급은 클럽으로, 도시 하층민은 펍으로 옮겨 갔다. 여기에 값이 싼 중국 차가 많이 수입돼 홍차가 가정에서 즐겨 마실 수 있는 국민 음료가 됐다. 이에 커피 수입량이 급감하고 값이 올라갔다. 그 결과 대영제국이 가장 번성한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남성적인 커피하우스 문화 대신에 홍차가 가족 단란의 상징이 됐다. 영국식 정원이 발달해 공원이 많이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이 차를 마시러 공원에 가는 새로운 문화가 생겼다. 그리고 신문을 통해 정보를 손쉽게 얻게 되자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급속히 쇠퇴했다.

이런 커피하우스를 오늘날에 꼭 있어야 할 ‘제3의 장소’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는 집은 첫 번째 장소이고 직장이나 학교는 두 번째 장소인데, 이 둘을 잇는 것이 ‘제3의 장소’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영국의 커피하우스, 독일의 비어 가든, 영국의 펍, 프랑스의 작은 카페나 레스토랑인 비스트로(bistro)처럼 친숙한 모임 장소와 같은 것이 제3의 장소라고 보았다.

제3의 장소는 가정이나 일의 영역을 넘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정기적으로 찾아가되 허물없이 즐겁게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말한다. 아침 식사도 하고 친구 만나러 하루에 몇 번이고 찾아가며 안에 비치된 신문이나 잡지를 읽거나 모여서 토론도 하는 소중한 생활의 장이 제3의 장소다. 예전에는 선술집, 이발소, 미용원 등이 제3의 장소에 속했으나, 근대에 들어와 주거지가 교외로 나가면서 이런 교류의 장을 잃게 됐다. 주택과 오피스에 편중돼 도시재개발사업이나 도시재생사업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사정은 똑같다. 그러나 도시의 매력은 바로 제3의 장소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다.

카페는 사적으로 사용되는 레스토랑과 달리 개인만의 공간을 느끼면서 누군가 함께 있다는 느낌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카페는 혼자 앉아 있는데도 지나가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극장적인 관계가 있다. 그래서 카페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이 이어지는 장치이고, 내부공간과 가로가 이어지는 인터페이스와 같은 곳이다.

▲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카페의 발상지인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카페는 시민에게 ‘제2의 가정’이자 ‘소규모 문화적인 장’이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자주 드나드는 카페는 현대건축과 도시의 중간 지대를 새롭게 생각하고 응용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텍스트다.

카페는 커피 마시는 곳을 넘어 운영하고 만든 사람의 표현의 미디어가 된다든지, 다른 분야와 교류하는 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비즈카페라는 카페도 등장하고 있는데, 이곳은 음식점이라기보다는 그곳에서 스타트업, 크리에이터, 지원 사업가 등이 모여 커피나 알코올을 들고 정보를 교류하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새로운 장소가 되고 있다.

또한 싼값으로 산 한 잔의 커피를 두고 지역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들러 몇 시간이고 지낼 수 있고, 한 주에 두세 번 정도 여는 소규모 이벤트와 배움 교실에 다닐 수 있는 지역 교류의 장도 오늘날의 새로운 커뮤니티를 위한 제3의 장소가 된다. 오래된 빈집을 다시 고친 다음 늘 개방해 지역의 어른이나 아이들이 모이게 하고, 유기농 음식과 함께 지역 사람들이 모여 라이프스타일을 함께 배우고 익히며 교류하는 장소를 만들 수 있다면 이것 또한 오늘날의 또 다른 커뮤니티형 제3의 장소가 될 것이다.

요즈음 도시재생사업에서는 마을 공동체를 조성할 때 주민 생활에 밀접한 문제들을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한 작은 조직인 ‘마을카페’를 많이 만들고 있다. 한잔의 커피의 힘을 믿고 차린 카페의 주인과 손님이 만든 마을카페와 골목카페. 이런 것들이 발전해 최근에는 프랜차이즈 형태의 협동조합을 만들기도 하고, 주민들이 마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기 위한 ‘카페마을 협동조합’을 만들어 직접 운영하는 사례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 작은 문화공간이자 생활공간은 우리 주변에 나타나고 있는 제3의 장소다. 그렇다면 카페라는 이름을 가진 이런 ‘제3의 공간’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거슬러 올라가면 그 원형은 17세기 영국의 커피하우스다. (문화일보 5월1일자 29면 16회 참조)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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