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기자의 엔터 톡>철밥통을 걷어차라

“위기죠, 위기.”

드라마 ‘하얀거탑’ ‘밀회’ 등으로 유명한 안판석 PD는 20일 열린 MBC 새 수목극 ‘봄밤’의 제작발표회에서 “요즘 지상파 드라마가 위기인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 달라”는 주문에 이같이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답이 너무 길 수밖에 없다”며 에둘러 답변을 마쳤죠. MBC 출신인 그가 위기에 빠진 친정의 구원투수로 나서며 직접 그 문제점을 짚기는 난감했을 겁니다.

사실, 안판석 PD를 다시 불렀다는 것만으로도 MBC가 위기 상황을 인정하고 돌파구를 찾은 것이라 볼 수 있죠. 2003년 MBC에 퇴사한 그는 2007년 ‘하얀거탑’을 연출한 후 무려 12년 만에 다시 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사이 안 PD는 ‘아내의 자격’ ‘밀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등을 연출하며 JTBC 드라마가 지상파의 아성을 넘보게 만드는 첨병 역할을 했죠. 그런 그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주역이었던 배우 정해인과 손잡고 MBC로 돌아온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적잖은 드라마 외주제작사들이 요즘 지상파 드라마 하향 평준화의 이유로 ‘연출자의 부재’를 첫손에 꼽습니다. 케이블, 종합편성채널 등 새로운 플랫폼이 론칭되며 실력 있는 드라마 PD들을 10억∼20억 원의 웃돈을 주고 데려갔기 때문이죠. 이에 대한 지상파의 대응은 어땠을까요? 아주 단순합니다. 지상파 출신 프리랜서 PD가 연출하는 드라마에는 편성을 내주지 않는 거죠. 하지만 tvN이나 JTBC 혹은 중견 외주제작사로 자리를 옮긴 PD들은 개의치 않고 성과를 내왔습니다. 그들의 성공은 비(非) 지상파 채널의 성장과 비례했죠.

그렇다면 인력 유출에 허덕이는 지상파 드라마국은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순혈주의’를 고집하며 아직 훈련이 덜 된 자사 PD를 메인 연출자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지금 지상파 드라마의 현주소가 대신 답하고 있죠. 실력은 부족한데 “나 본사 PD야!”라고 외치며 어깨에 힘부터 넣는 PD가 적지 않다고 외주제작사와 연예 매니지먼트 관계자들은 입을 모읍니다. 그러니 tvN과 JTBC 드라마를 우선적으로 검토하는 ‘지상파 드라마 패싱’ 현상이 나타난 거죠.

최근 종방된 한 지상파 드라마의 경우 방송사 소속 PD와 CP(책임 프로듀서)가 공식 종방 파티에 불참하고 몇몇 배우를 불러 따로 식사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일 방향 소통에 반기를 들었던 주연 배우와 제작사는 제쳐 버렸죠. 지상파 드라마국이 각성해, 탄탄한 실력으로 무장한 프리랜서 PD들의 연출을 허용한다면 상황은 어찌 될까요? 철밥통을 걷어가는 셈이니, 안주하려는 이들은 불만이겠지만 기울어가는 지상파 드라마호(號)의 균형은 맞출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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