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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19년 05월 24일(金)
인류의 뇌·문화 발달은 ‘느낌’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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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과 마음, 의식, 문화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천지창조의 성경 구절처럼 ‘태초에 느낌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생명의 항상성을 지켜주는 ‘느낌’이 생명의 단세포 시절부터 진화와 문명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자료사진

- 느낌의 진화 / 안토니오 다마지오 지음, 임지원 등 옮김 / 아르테

생물의 본질은 느낌과 감정
태초에 존재했던 단세포가
‘느낌’으로 항상성 유지해와
생명 번성하고 감각도 발달

아픔·행복·즐거움·공감 등
인간 문화 만드는데 큰역할
두려움·고통 해소하기위해
철학·과학까지 발전시킨것


“태초에 느낌(feeling)이 있었다.”

느낌·감정·의식과 뇌의 작동 과정을 분석한 ‘데카르트의 오류’(1994), ‘스피노자의 뇌’(2003) 등의 저술로 세계적 석학의 반열에 오른 안토니오 다마지오(75)의 최근작 ‘느낌의 진화’(2017)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와 같다. 신경과학자이자 신경과 전문의인 저자는 지능이나 의식·인식 능력에 주안점을 두고 느낌과 감정(emotion)을 부차적으로 취급해온 서구 철학, 여타 자연·사회·인문 과학의 전통을 전복시킨다. 이 책의 원제목인 ‘만물의 놀라운 순서: 생명, 느낌 그리고 문화의 형성’은 책의 주제를 요약해 보여준다. 생명은 단세포 단계부터 ‘느낌’으로 인해서 유전자나 신경계 등 생명이 더 복잡하게 추동, 유지됐으며 의식·인식 능력의 뇌가 발달했고 인간의 문화도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서구 철학은 플라톤 이래 근대철학을 연 데카르트까지 의식만을 중시했고, 몸은 본질적이지 않으며 죄악의 근원인 ‘느낌과 감정’이 속한 곳으로 보았다. 서구 문명의 핵심적 믿음 중 하나인 ‘심신이원론(心身二元論)’이다. 스피노자와 니체에 이르러서야 몸이 관심의 대상으로 부상했다. 심신이원론의 흐름은 현대에까지 뇌가 인간의 몸을 좌우한다는 흐름으로 이어졌으며, 느낌과 감정은 프로이트에서 시작된 심리분석 또는 정신의학이라는 새로운 틀 안으로 밀쳐졌다. 하지만 세계 어느 곳의 사람이나 보편적 감정을 느끼고, 이는 진화적 연원을 가졌다는 점에서 느낌과 감정은 생물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박테리아 같은 원시 생물도 ‘느낌’을 통해 반응함으로써 항상성을 유지한다. 바닷속 원시 생물들. 자료사진
지구에 최초로 나타났을 박테리아 같은 단세포 생물은 어떻게 생존했을까. 영양소가 많은 곳으로 이동하고, 그렇지 않거나 위험한 환경은 피하는 게 가장 기초적인 생존 방식이었을 것이다. 단세포 생물은 이처럼 개체로서의 생존을 지키는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기 위해 감지, 반응한다. 항상성은 고등 생물뿐만 아니라 뇌와 핵도 없는 박테리아 수준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생명의 기본 메커니즘이다. 이 책의 키워드는 ‘항상성’이다.

책에 따르면, 실제 박테리아는 부지불식 간에 자신이 속한 집단의 힘을 가늠하고 그 힘에 따라 영역을 방어하기 위한 전투를 벌이거나 자신들의 덩어리를 둘러싸서 방어벽을 형성한다. 심지어 우리가 일종의 ‘도덕적 태도’라고 부를 만한 움직임을 하기도 한다. 집단 속 가까운 존재들은 표면의 분자나 분비하는 화학물질로 서로 식별해 협력하며, 협력하지 않는 ‘배신자’ 개체는 따돌리기도 한다. 이는 모두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행동으로, 그 대리인이 ‘느낌’이다. 항상성이 부족한 경우 부정적인 느낌으로, 항상성이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을 때 긍정적인 느낌을 받는 식으로 둘은 연결돼 작동한다.

항상성은 단순히 생존에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생명이 후대로 이어지고 번성하도록 해준다. 항상성은 또 균형과 안정과 같은 ‘중립적 상태’가 아니라 ‘좀 더 편안하고 좋은 상태를 향해 스스로를 상향 조절하는 생명의 작용’이다. ‘느낌’은 생명체가 항상성이 결핍되는 문제에 반응하도록 ‘동기’(motives)를 유발하고, 그 반응이 성공적인지 그렇지 못한지를 ‘감시’(monitors)한다. 더 나아가 느낌은 인간의 문화를 탄생시킨 촉매제로 작용했는데, 그 형성과정에서 요구되는 조정을 위한 ‘협상자’(negotiators) 역할을 했다고 저자는 논리를 확장한다.

느낌으로 해서 신경계는 더욱 정교해졌고, 생명의 진화에 따라 다양한 감각적 능력이 발달하며 후각·미각·청각·시각으로 세분화했다. 이로부터 개체의 내부와 외부에 대한 느낌을 감지하게 되고 이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신경계와 그 신경계의 주인에 해당하는 생물의 상호작용에 의해 의식과 마음, 자아의식을 생성했고 언어적 서사 능력이 나타났다. 뇌가 의식과 마음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기존의 통념과는 거리가 먼 주장이다.

저자는 인간이 문화를 만드는 데도 아픔과 고통, 행복과 즐거움 등의 느낌, 특히 공감의 느낌이 그 발전을 자극하는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종교적 믿음, 도덕성, 정치적 관리 체계 등 문화의 목표는 ‘고통을 줄이는 것’이고, 이는 ‘유기체가 영향을 받는 과정을 재조정하고 제약을 가해 항상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예술, 철학, 과학도 스트레스를 줄이고, 쾌감을 만들어 내는 동시에 고통, 두려움, 분노 등의 느낌을 해소하고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과감하게 말하면, 우리가 현재 진정한 문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항상성 명령에 의한 효율적인 사회적 행동이라는 외피를 쓴 간단한 단세포 생명체에서 조용히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주장이 너무 만물에 느낌과 감정을 적용하거나, 흔히 자연과학자들이 범하는 ‘과학 환원주의’로 기울어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노학자는 그런 비판을 예상하고 “내가 확립하고자 하는 연결 고리가 문화현상을 그 생물학적 뿌리로 환원시키거나 문화의 모든 측면을 과학으로 설명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문화적 활동이 바로 느낌에서 비롯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느낌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인간 본성의 여러 갈등을 이해하려면 느낌과 이성 간의 호의적인 관계 그리고 동시에 적대적인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노력이 생물학의 영역과 별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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