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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10문10답 게재 일자 : 2019년 05월 24일(金)
‘구로동 여경’사건 계기로 주목받는 물리력 가이드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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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 판단’에 맡긴 진압 …민원·소송·징계 걱정에 장비사용 주저
11월부턴 폭력 쓰면 전자충격기 맞대응… 흉기 휘두르면 권총 발사

직무집행법상 사용기준 모호해
수갑 채웠다 민원 받으면 징계
차라리 폭행 당한 뒤 입건 선택

순응·저항·공격 등 5단계 구분
경찰봉·분사기·전자충격기 등
명확한 기준 맞춰 난동자 제압

겁주기용 공포·실탄 발사 금지
경고 사격 땐 70~90도 각도로
車 탑승해 실탄 쏘는 것도 안돼

부상 발생땐 즉시 의료진 호출
사용경위·방식 등 보고서 ‘의무’
주취난동 대응규정 여전히 모호


지난 20일 경찰위원회에서는 ‘경찰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 제정안’이 심의·의결됐으며, 경찰청은 6개월의 기간 경과 후인 오는 11월부터 이를 시행할 예정이다. 과격 시위대나 행패를 부리는 취객에게 매를 맞고 부상하는 경찰이 발생할 경우 ‘소극적 대응’이란 지적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현장 출동 경찰이 피의자를 연행하다 부상을 입혀 ‘과잉 대응’이란 민원에 시달리는 일이 이제까지 빈번했다. 경찰의 이번 가이드라인으로 이 같은 논란이 사그라들고 명확한 규정에 따른 엄정한 공권력 집행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1. 물리력 기준 제정 배경

최근 민주노총의 경찰 폭행 사건이나 ‘대림동(실제 행정구역은 구로동) 여경’ 사건으로 ‘매 맞는 공권력’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경찰의 과잉 대응 논란도 꾸준했다. 이처럼 경찰의 물리력 행사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경찰의 소극 또는 과잉대응 논란이 계속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특히 지난해 4월 광주광역시에서 벌어진 집단폭행 사건 때는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는데도 폭행이 이어졌다”는 증언이 잇따르자 현장대응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10대 남성이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친구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경찰과 대치하다 달아난 ‘암사동 흉기 난동 사건’도 이런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이에 경찰은 작년 초부터 한국경찰법학회에 물리력 사용 가이드라인에 관한 연구용역을 맡기고 현장 경찰관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지난 1년 여간 물리력 사용 가이드라인을 공론화해 왔다.

2. 가이드라인 바뀐 점은

이번에 경찰청 예규로 마련된 ‘경찰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 제정안’은 경찰의 물리력 행사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새로 마련된 기준에 따르면 현장 경찰관의 물리력 행사 등 대응 수준은 대상자의 저항 정도에 따라 협조적 통제, 접촉 통제, 저위험 물리력, 중위험 물리력, 고위험 물리력 등 다섯 단계로 구분된다. 협조적 통제는 안내·체포 등에 수반되는 최소한의 신체적 물리력 등을 의미한다. 또 신체 일부 잡기나 밀기, 경찰봉이나 방패로 대상자의 신체를 밀착한 상태로 밀어내는 행위 등은 접촉 통제에 해당한다. 저항이 강해지면 관절을 꺾거나 팔·다리를 이용해 움직이지 못하도록 조르는 저위험 물리력으로 대응한다. 이 단계에서는 분사기 사용도 가능하다. 대상자가 폭력적 공격을 사용할 경우 대상자에게 부상의 위험은 있으나 생명·신체에 중대한 위해 발생 가능성이 낮은 중위험 물리력을 사용하는데, 손·발로 대상자의 신체를 가격하거나 전자충격기를 사용하는 행위가 포함된다. 대상자의 저항으로 인해 경찰 등 주변인들의 생명에 중대한 위험이 발생할 경우에는 권총 등 총기류를 사용하는 고위험 물리력으로 대응하게 된다.

3. 저항·폭력 기준도 마련

경찰은 물리력 행사 대상자 행위를 순응·소극적 저항·적극적 저항·폭력적 공격·치명적 공격의 다섯 단계로 구별하기로 했다. 가장 낮은 단계인 순응은 현장 경찰의 통제와 지시를 잘 따르는 경우를 기본으로 하지만 대상자가 경찰 요구에 즉각 응하지 않고 약간의 시간만 지체하는 경우도 이 기준에 포함된다. 소극적 저항은 경찰 지시를 따르지 않고 비협조적이지만, 경찰 또는 제3자에 대해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이 단계를 넘어 경찰의 체포·연행 등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하면서도 경찰 또는 제3자에 대해 낮은 수위의 행위를 할 경우 적극적 저항으로 분류된다. 특히 경찰 등에게 주먹·발 등을 사용해 신체적 위해를 가하면 폭력적 공격으로 규정된다. 이어 총기류나 흉기, 둔기 등을 이용해 경찰 등 주변인에게 사망 또는 심각한 부상을 초래할 수 있는 행위를 할 경우 치명적 공격으로 규정돼 경찰도 최고 수위의 물리력을 동원해 제압하게 된다.

▲  지난 13일 서울 구로경찰서의 한 여경이 경찰을 폭행하고 행패를 부리는 취객을 제압하고 있다. 연합뉴스
4. 권총 사용 세부 규정

경찰은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되는 대상자가 도주하면서 주변인에게 중대한 위해를 야기하거나, 권총 이외의 수단으로 대상자를 저지할 수 없는 상황에 한해 권총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특히 경찰은 오로지 대상자 자신의 생명·신체에 대해서만 중대한 위해를 야기하는 경우에는 권총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또 오로지 재산만을 보호할 목적으로 권총을 사용해서도 안 된다. 경찰이 대상자에게 겁을 줄 목적 등으로 실탄 또는 공포탄을 발사하는 행위도 해서는 안 되며, 움직이는 차에 탑승해서 권총 실탄을 발사하는 ‘영화 같은’ 행위도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금지 대상이다. 14세 미만인 사람이나 임산부에 대해서도, 이들이 폭발물이나 총기를 지니지 않은 이상 권총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또 경찰은 권총집에서 권총을 뽑은 상태에서 사격을 하지 않을 때는 총구를 항상 지면 또는 공중을 향하도록 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공포탄 또는 경고사격을 할 때는 경찰관 발 앞쪽 70~90도 각도의 허공을 향해 발포해야 한다.

5. ‘언어적 통제’란

이번 가이드라인은 경찰 단속이나 검거 등의 대상자가 경찰관의 지시나 통제에 따르고 있는 상황이라면 물리력 사용 이전에 ‘협조적 통제’의 가장 낮은 수위 대응 중 하나인 ‘언어적 통제’를 먼저 해야 한다는 점을 규정했다. 또 직접적인 물리력 사용 이전에도 언어적 통제를 통해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언어적 통제는 구체적으로 경찰관이 합법적인 명령을 하기 위해 말이나 행동으로 하는 대화, 설득, 지시, 경고 등을 일컫는다. 대상자의 어깨를 다독이거나 손을 잡아 주는 등의 가벼운 신체적 접촉도 포함한다. 이 과정에서도 불필요한 자극은 자제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시도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거나 급박한 경우에는 생략할 수 있다. 또 대상자가 갑자기 위해를 가하거나 도주할 것에 대비해 물리력 사용 태세도 갖춰야 한다.

6. 과거 물리력 행사 기준

과거에는 물리력 행사 금지 상황에 대한 규정만 있었을 뿐 물리력 행사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을 보면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경찰관이 합리적으로 판단한다”고만 돼 있었다. 총기와 수갑을 제외하면 사실상 장비 사용에 대한 세부 규정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셈이었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경찰의 물리력 행사에 대해 ‘부당하다’ 또는 ‘과잉대응’이라는 민원 제기와 이에 따른 징계 가능성 등을 이유로 경찰이 진압 장비 사용을 주저하는 경우가 있었다. 테이저건과 수갑을 잘못 사용해 국가인권위원회 혹은 경찰 내부 감찰 부서에 민원이라도 제기되면 과잉장구 사용이라고 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경찰청 측에서도 “현행 규정이 모호한 데다 현장 재량권이 적다 보니 물리력 사용을 주저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7. 과잉·소극 대응 논란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 백남기 농민 사건’ ‘광주 집단폭행 사건’ ‘암사역 흉기난동 사건’ 등 각 사건에 따라 경찰의 대응이 너무 과도하다 또는 너무 소극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했다는 엇갈린 반응이 반복돼 왔다. ‘고 백남기 농민 사건’은 경찰의 과잉진압이 문제가 됐다. 경찰은 당시 시위 현장에서 이미 쓰러진 백 씨에게 계속해서 물대포를 쐈다는 의혹과 지탄을 받았다. 반대로 ‘광주 집단폭행’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경찰이 도착해서도 계속 피해자에게 폭행을 가했으며 도착한 경찰에게도 신체적 위해를 가한 사건이다. 경찰은 소극대응하다가 제압하지 못하고 가해자들에게 맞기도 했다. ‘암사역 흉기난동 사건’은 서울 지하철 암사역 인근에서 A 씨가 자신의 친구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으로, 경찰이 이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는 영상이 퍼지면서 논란이 됐다.

▲  지난 4월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국회 정문에서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노동법 개악 저지 등을 촉구하며 경찰 펜스를 걷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8. 물리력 사용 후 조치는

경찰은 물리력을 사용한 경우에는 반드시 대상자의 부상 여부를 즉시 확인해야 하고, 부상 발생 시에는 곧바로 의료진을 호출하거나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이 같은 상황을 감독자에게도 보고해야 한다. 또 가장 낮은 수위의 물리력 중 하나인 수갑 사용조차도 일시·장소·사용경위·사용방식·사용시간 등을 근무일지 또는 수사보고서에 기재해야 한다. 또 경찰이 적절한 절차를 거쳐 권총을 비롯한 ‘고위험 물리력’을 사용했을 경우 해당 경찰이 육체적·심리적 안정을 되찾고 향후 관련 조사에 성실히 임하도록 할 필요가 인정되면 경찰기관의 장은 공가 허가, 근무 중 휴게 부여, 의료·상담기관 연계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9. 물리력 과잉에 대한 우려

새로운 경찰 물리력 행사 기준이 현장에서 유명무실해질 우려도 남아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 기동순찰대 소속 이모 경위는 지난해 8월 성추행 신고를 받고 논현동에 있는 한 클럽에 출동했다. 이 경위는 술에 취해 있는 여성을 깨우는 과정에서 머리채를 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해당 여성은 클럽 앞에 쓰러진 채로 머리채를 흔드는 경찰에게 저항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현장에 있던 한 시민이 이 모습을 7초 분량 영상으로 촬영해 SNS에 올리면서 ‘과잉대응’ 논란이 일어났다. 이 경위는 성추행을 당했다는 신고로 출동한 상황이었다. 당시 강남경찰서는 이 경위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날 대기발령 조치를 내렸다. 이처럼 술에 취하거나 심신미약 상태에 빠져 자발적 행동이 불가능한 대상자에 대해서는 어떤 기준으로 적절한 물리력을 선택해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이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빠져 있다.

10. 해외 경찰들은

미국에서 경찰권한은 지역 경찰이 담당, 물리력 등 무기를 사용함에 있어서도 광범위하게 재량권이 인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경찰관의 결정은 넓은 범위에서 사법심사로부터 자유로운 경향이 있으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사용한 총기사용이라면 적법한 경찰활동으로 이해된다. 즉 위험에 대한 경찰관의 주관적 판단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오늘날 경찰의 물리력 사용에서는 전자충격기, 화학액 분사기, 물포, 고무탄, 가스총 등과 같은 총을 대체하는 비치명적(non-lethal)이거나 덜 치명적(less than lethal)인 무기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일본은 무기사용에 관해 각종 규범으로 정리돼 있으며, 이를 토대로 지방자치단체별로 경찰권한 총기 사용 및 취급 규정을 두고 있다. 2000년 이후 일본에서도 흉악범죄가 증가하면서 총기사용 본질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졌다. 2002년 발행된 도쿄(東京)경시청의 자료를 보면, 무기사용 요건의 강화까지는 아니지만, 사용하지 못해 순직하는 경우는 방지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권총을 사용함에 있어 일률적으로 경봉 등이 권총보다 우선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뒀다. 또 사람에게 위해를 주지 않는 경우 보고의무를 간소화했다. 영국은 합리적으로 인정되는 범위에서만 물리력 사용이 가능하다. 수갑, 총기류, 스프레이, 테이저건 등에 대해 세세히 규정한다.

김수민·송유근·서종민·이용권 기자

human8@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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