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정치의 새로운 변화>해외거주 루마니아인도 투표 못하는 사태

영국·이탈리아·네덜란드 등
공관마다 지연되다 마감 넘겨
사법개혁안 투표와 함께 치러
조직적 선거방해 가능성 제기

유럽의회 선거(23∼26일)는 민주주의 절차 측면에서도 곳곳에서 오점을 남겼다. 투표에 참여하려던 해외 거주 루마니아인들이 투표장에서의 절차 지연으로 투표를 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해 당국의 조직적인 ‘선거 방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3일 영국에서 있었던 외국인투표자 등록 논란에 이어 투표권이 침해받는 일이 발생하면서 민주주의가 훼손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7일 로이터통신, 네덜란드 RTL 등에 따르면, 전날 유럽 지역에 거주하는 루마니아인들은 선거를 위해 영국과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연합(EU) 가맹국 내 자국 공관에 개설된 투표소를 찾았지만, 상당수가 투표를 하지 못한 채 돌아서야 했다. 절차 때문에 투표 시간이 길어졌고, 줄을 섰던 대다수는 투표를 하지 못한 채 투표 마감 시간인 오후 10시를 맞이했다. 해당 공관 측은 시간 외 투표를 허용하지 않았고, 최대 7∼8시간이나 줄을 서 기다리던 루마니아 시민들은 결국 투표를 하지 못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투표를 거부당한 유권자들은 루마니아 집권 사회민주당(PSD)을 향해 “도둑놈들아, 우리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선 성난 루마니아인들을 경찰이 간신히 해산시켜야 했다. 영국 버밍엄, 이탈리아 로마 등등 유럽 곳곳에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서 루마니아 정부가 고의로 투표를 방해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이날 루마니아는 선거와 함께 자국의 사법개혁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했는데, 집권 사회민주당(PSD)이 해당 법안의 부결 상황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PSD는 공직자 비리를 수사하는 반부패청(DNA)과 검찰 등의 권한을 축소하고 부패사범 사면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사법개혁을 추진해왔고, 자유당 출신 클라우스 요하니스 루마니아 대통령은 이 개혁안이 사법부 독립에 역행한다고 판단해 국민투표에 부쳤다.

이후 PSD는 국민들에게 ‘투표 거부’를 독려해왔지만, 해외에서는 역대 최대인 35만7000명이 투표에 나서는 등 절대다수의 루마니아인들이 투표에 나섰다. 의혹에 대해 루마니아 외교부는 “지난 선거 때의 두 배 이상인 440개의 재외 공관에 투표소를 마련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워낙 많은 인원이 몰리며 투표에 차질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파행에도 루마니아는 41%의 투표율을 기록해 개표에 필요한 투표율 30%를 넘겼고, 개표 결과 80%의 반대표가 나왔다. 국민투표에 구속력은 없지만 PSD의 법안 추진에는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실제 이날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던 리비우 드라그네아 PSD 당수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구속 수감됐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