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무형문화재를 찾아>“화났을 때 그리면 화난 부처님 나와… 바른 품행·信心으로 붓질”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임석환 국가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 보유자가 경기 고양시에 있는 작업실인 수산전통불교미술원에서 불화의 작업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⑪ 임석환 불화匠 기능보유자

단청色에 매료돼 20세쯤 시작
습화만 3000회 넘게 그리면서
엉덩이 종기 났다 터졌다 반복

불교내용 담은 벽화·탱화·경화
문양 그려 넣는 단청과는 달라
日안고쿠지서도 요청받고 작업

“마음 가다듬는 것이 제일 중요
머리 비우고 차분하게 그려야”

“불화는 원래 화승이라고 절집의 스님들이 그리던 그림입니다. 지금은 속인들이 많이 그리지만 그래도 불교신자로서 불교를 잘 알아야 하고 불교 가르침에 맞게 품행을 잘 지켜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스승님은 ‘불화는 염불과 같은 것이니 신심으로 부처님을 믿고 경전에 맞게 잘 그려라’고 항상 말씀하셨지요.”

임석환 장인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佛畵匠) 기능보유자다. 그는 현존하는 유일한 불화장이다. 전에는 석정스님까지 2명이었으나 석정스님은 2012년에 입적했다. 경기 고양시의 수산전통불교미술원에서 만난 그는 “불화에는 신심이 제일 중요하다”고 먼저 입을 열었다. 수산(樹山)은 그의 호다.

불화는 불교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는 그림이다.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온 것으로 추측되며 부처님을 표현하는 성화(聖畵)이므로 승려들에 의해서 그려지고 전승됐다.

불화는 크게 벽에 그려지는 벽화(壁畵)나 족자나 액자로 그려지는 탱화(幀畵), 경전에 그려지는 경화(經畵)로 분류된다. 사찰의 대웅전 부처님 뒤편에 신앙대상물로 봉안되는 후불탱화 역시 불화의 일종이다. 또 단청과도 혼동하는 이들이 있는데 여러 명이 공동 작업하는 단청은 사찰 벽면, 처마 끝, 기둥 등에 기하학적 문양을 다채롭게 그려 넣어 불전을 장엄하고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을 이른다.

“어려서 불심이 깊은 어머니를 따라 고향(충남 홍성) 인근의 수덕사(예산)를 다니며 단청을 보고 감탄한 적이 많아요. 목재 건물에 어쩌면 저렇게 아름답게 색칠을 할 수 있을까 궁금했죠. 그래서 서울 진관사에 처사로 계신 사촌 형이 제 재주를 알아보고 권유해 제가 처음 익힌 것도 단청이었지요. 스무 살 무렵이었어요. 불화는 그 이듬해 지리산 쌍계사의 혜암스님으로부터 익히기 시작했죠.”

2006년 이전까지는 불화장과 단청장이 구별되지 않아 단청장이 단청작업을 하면서 불화를 함께 그렸다. 그러나 제작목적이나 표현기법 등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문화재청에서는 2006년 불화장을 별도로 지정하고 임석환 장인을 불화장 보유자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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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 작업은 인내와의 싸움이다. 불화 자체가 고도의 집중력이 장시간 필요하고, 오랜 시간 엎드린 자세로 일하다 보니 허리 통증이 생기기 일쑤다. 머리카락처럼 가는 붓을 들고 도안을 따라 그리는 ‘습화’는 불화의 기초다. 처음에는 습화만 3000번 이상 해야 한다.

“불화를 처음 익힐 때가 스물을 갓 넘겼을 때니 혈기왕성할 시기였는데 쌍계사에서 주먹만 한 종기가 엉덩이 양쪽에 교대로 생겨 터져나가도 모른척하며 불화를 그렸습니다. 혜암스님으로부터 대대로 전해오던 초(草, 밑그림)를 받았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해요.”

부산 범어사, 서울 진관사, 강화도 전등사,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문수암, 청도 운문사, 양산 통도사, 수덕사 등 국내 유수의 사찰을 돌며 작업했고, 일본 요코하마(橫濱)의 안고쿠지(安國寺)에서도 요청을 받아 작업을 했다.

불화 속의 부처님은 32상(相), 80종호(種好)라는 특별하게 규정돼 있는 도상에 입각해 그려진다. 감청색 눈동자에 소의 눈썹처럼 길게 정돈된 눈썹, 붉은 입술, 드러나지 않는 코, 두툼한 귓불의 귀 등이 경전에 명시돼 있다. 그러나 불화를 그리는 이들이 더 중요시하는 것은 정성이다.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화가 나 있을 때 부처님을 그리면 부처님도 화난 표정이 됩니다. 작업하기 전에는 몸을 깨끗이 하고, 머리도 마음도 비워야죠. 그리고 복잡하지 않게,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부처님 모양을 그려야 합니다.”

임 장인은 현대 서구인들도 모두 탄성을 발하는 ‘고려불화’의 전통이 현재까지 이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지니고 있다.

“불교가 국가 종교였던 고려는 불교의 전성기였고, 불화도 발전했습니다. 귀족들이 모두 불교 신자였던 만큼 화려하면서도 치밀하게 그려져 완성도가 높았죠. 그러나 조선시대로 들어오며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으로 불교가 쇠퇴하며 불화도 변했어요. 그나마 전래돼 오던 고려 불화도 임진왜란 때 많이 소실돼 현재까지 전 세계에 전하는 고려불화가 160여 점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글·사진=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