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외식업 상생 협약과 새로운 합의 문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곽수근 서울대 명예교수 前 동반성장위 적합업종실무위원장

외교사절을 파견할 때 상대국으로부터 얻는 사전 동의를 ‘아그레망(agrement)’이라고 한다. 파견국이 예정자의 이름과 경력 등을 상대국에 통보해 사전에 동의를 구하는 국제 관행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로마 시대에는 전쟁 중인 국가들 사이에서도 외교사절에 대한 신임장 제정은 이뤄졌다. 이것은 임명된 외교사절을 상대국이 거절함으로써 일어나는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제도였다.

프랑스어인 아그레망은 언어, 신사협정, 무역, 군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확산됐는데, 사회적 합의(agreement)로까지 발전했다. 특히, 1982년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이 대표적이다. 당시 네덜란드는 물가 및 임금 상승으로 제조업은 경쟁력을 잃고 경제가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노조는 임금 동결을 수용하고, 기업은 노동시간 단축을 받아들였으며, 정부는 재정 및 세제로 이를 지원한 것으로, 기념비적인 쾌거였다.

합의는 최소한의 동의를 전제로 한다. 바세나르 협약은 당면한 경제 문제 타결을 위해 공동 노력한다는 메모 한 장이 시작이었다. 이것을 바탕으로 하나씩 합의가 추가되면서 마침내 78개 항목의 바세나르 협약을 맺게 된 것이다. 합의를 시작할 때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고 작은 것부터 출발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합의는, 모든 것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전부 아니면 전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최근 외식산업의 대기업과 중소상공인이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5월 국회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 품목 중에서 소상공인의 생계가 달린 일부를 생계형 적합업종이라 하고, 지난해 12월 13일부터 법적인 보호를 받도록 했다. 그런데 중기 적합업종의 기간이 만료되는 음식점업은 생계형 적합업종을 신청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음식점은 대기업과 대립하기보다는 상생을 통해 얻는 효과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생계형 적합업종은 기존의 중기 적합업종처럼 골목상권 진출을 막는다. 하지만 권고 수준이었던 중기 적합업종보다 법적인 규제를 받게 돼 구속력이 높다.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대기업이 5년간 해당 업종에 진입할 수 없고 위반했을 경우 이행 강제금을 부과한다. 그런데도 음식점업은 생계형 적합업종을 신청하지 않는 대신 22개 대기업과 공동으로 상생협약을 맺게 된 것이다. 상생협약의 내용을 보면, 종전 중기 적합업종에 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동반위를 중심으로 대기업과 한국외식업중앙회가 상생협약을 발전시키기 위한 상생협의체를 만들기로 했다.

이번 상생협약 추진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가 한층 성숙해진 합의 문화를 만든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갈등을 조정하는 데 있어서 최선은 자율 합의 조정이라 할 수 있다. 한국외식업중앙회는 40만 개의 음식점이 가입한 음식점업 대표 단체로, 합의 과정에서 대기업과 함께 실타래를 풀어가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생계형 적합업종의 도입으로 사회적 갈등이 늘어날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어떤 업종과 품목을 생계형으로 지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 뜨거운 감자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갈등을 법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갈등이 있는 경우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전통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사회적 합의란 언뜻 강제성이 약해 실효성이 떨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바세나르 협약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음식점업 상생협약이 새로운 합의 문화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