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를 위해 황혼에 써내려간 6·25전쟁 참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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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아홉이 되어서야 이 이야기를 꺼냅니다 / 한준식 지음 / RHK

6·25전쟁 이야기에 관심 가질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저자는 이렇게 생각했단다. 자신의 참전기를 손녀가 인터넷에 올린다고 했을 때, 그저 할아버지를 생각해 주는 손녀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울 뿐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구독 조회 수가 폭발했고, 출판사가 책을 내자고 제안해 왔다.

제목처럼 저자는 올해 89세이지만, 6·25전쟁 참전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70세 때부터였다. 나날이 커가는 손주들을 보며 후세대가 자신처럼 전쟁의 비극을 겪지 않도록 그 무자비한 모습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는 이야기이지만, 책을 읽다 보면 목울대가 자주 뜨거워진다. 평시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겪는 병사들의 고통과 공포, 슬픔이 구체적 묘사를 통해 생생하게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6·25가 발발했을 때 스무 살이었던 저자는 이듬해인 1951년 8월에 국군에 입대한다. 같은 해 1월 맏형이 “무너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입영한 후였다. 저자는 기초 훈련조차 받지 못하고 총 쏘는 방법과 실탄 장전 요령만 교육받은 채 전투에 바로 투입됐다. 책은 이때부터 1952년 10월까지, 그러니까 그가 부상병으로 후송될 때까지 아비규환의 현장을 눈앞에 보듯 그려낸다. 지역 인민위원장을 지낸 거구의 인민군 시체에서 목을 따내기 위해 벌어지는 국군의 소동, 국군에 생포된 인민군들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먹을 것을 두고 아귀다툼을 하는 장면 등은 전쟁의 그늘을 여실히 보여준다.

저자는 전쟁터에서 총탄에 맞아 신음하며 죽어가는 전우를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던 무력감을 지금도 뼈저리게 기억한다. 적의 포탄 파편에 맞아 피를 흘리며 후송될 때의 갈증도 떠올린다. 과다 출혈 상태에서 갑자기 물을 마시면 체내 피의 농도가 묽어져 죽기 때문에 그는 목이 타 들어가는 갈증 속에서도 물로 입만 축이고 뱉어내야 했다.

저자가 뒷세대에게 당부하는 말들은 위정자들이 새겨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참전 용사들이 외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단 소식을 들을 때마다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그저, 이들의 존재를 당신이 잊지 말았으면 한다.” “나와 내 전우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이 나라에서 그 어떤 전쟁의 위협 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그러려면 어떤 압박 속에서도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정신적인 무장을 단단히 해 본인 스스로부터 지킬 수 있어야 한다.” 200쪽, 1만3000원.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