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폭력의 민낯을 강렬한 표현으로 담아낸 리언 골럽의 ‘용병 시리즈’ 중 하나.
■ 전준엽이 만난 美感의 세계 - ⑪ ‘불편함’을 담는 작가들
美 비판적 사실주의 화가 골럽
제3세계 잔혹한 용병들 소재로
폭력의 민낯 적나라하게 고발
위·아래 뒤집어 그린 바젤리츠
의도적으로 불편한 느낌 유도
상식과 뗄 수 없는 非상식 표현
은밀한 욕망에 주목했던 피슬
관객 응시하는 알몸 사내 통해
“이게 당신 모습이야” 말하는 듯
미술의 존재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미술에서 지식을 얻거나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 돈이나 권력이 되는가 하면 대중을 선동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종교적 상징으로 둔갑해 경배의 대상이 된 적도 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험도 미술을 통하면 수월하다. 또는 아이디어의 촉매제로 미술을 응용할 수도 있고, 집 안을 꾸미는 데 미술의 고품격 감각을 빌리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장식품으로서의 존재 이유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미술의 장식적 기능은 유효하다. 인간의 원초적 시각 욕구인 아름다움을 다독여 우리에게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미술의 존재 가치를 빛나게 해주는 것은 진실을 보여주는 역할이다. 이런 맥락에서 읽히는 작가가 리언 골럽(1922~2004)이다. 그는 폭력의 민낯을 그린다. 보기에는 불편하지만 꼭 봐야 하는 그림이다.
폭력이 지닌 상업적 가치는 무궁하다. 인류 역사와 어깨를 나란히 해 왔기 때문이다. 폭력을 다루는 사업은 언제나 부를 불러왔다. 그래서 폭력은 인류 역사에서 건장한 몸체를 과시하며 튼실하게 자라왔다. 이와 가장 많이 닮은 것이 정치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술에서도 폭력은 인기 테마 중 하나다. 미술에서 다루는 폭력은 대부분이 비판적 대상이었다. 그러나 폭력을 찬양했던 미술도 있다. 정치에 오염된 미술이 그런 경우다.
미국의 비판적 사실주의를 대변하는 리언 골럽은 폭력이 가진 더럽고 끔찍한 얼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로 유명하다. 특히 정치와 결탁한 폭력을 직설적으로 그려내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그의 작품에는 실제 일어났던 정치적 사건이 종종 등장한다. 따라서 폭력이 자라는 데 충분한 조건을 가진 제3세계권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권 나라 중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벌어지는 현장을 늘 주목했다. 그 속에서 고통받는 선량한 사람들의 현실을 고발하는 데 화업의 전부를 바쳤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거꾸로 그린 그림으로 일상 속에 숨은 비상식적 세계를 그려낸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올모의 소녀-2’.
폭력을 직업으로 삼는 집단 중 부정한 정치권력으로부터 합법적 활동을 보장받는 것이 용병이다. 골럽은 용병의 활약상(?)을 추적해 잔인한 상황을 담아냈다. 1980년대 초반 집중적으로 제작한 ‘용병 시리즈’는 폭력의 본모습을 담아내는 데 아주 적절한 주제였다.
‘용병 시리즈’ 중 네 번째로 제작한 이 작품은 아프리카에서의 백인 용병 활동을 담은 보고서를 바탕으로 그렸다. 미국 국방부의 기밀문서를 골럽이 어떻게 봤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용병들의 잔인하고도 가혹한 진압 활동상이 소상히 기록된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한 골럽의 회화에는 폭력의 진면목이 유감없이 나타나 있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용병들이 저지른 구체적인 사건을 볼 수는 없다. 이들이 투입된 국가나 진압한 사건도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의 공포는 강하게 드러난다. 핏빛이 연상되는 붉은 배경과 짙은 갈색 톤으로 그린 인물 때문이다. 그들의 강인한 표정과 거친 몸짓이 붉은 배경 속에서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백인 용병을 그렸다고 하는데 한 명 빼고는 흑인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들의 얼굴을 꼼꼼히 살펴보면 백인이 맞는다. 오랜 용병 활동 탓에 구릿빛으로 그을렸으리라. 여기에는 폭력의 강인함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도 숨어 있다.
이들은 복장이 구구 각색이고 무기도 다양하다. 눈에 띄는 무기는 미국산 M-16과 구소련제 AK 소총이다. 돈을 위해 목숨을 파는 이들에게 이념이나 국가는 아무 의미가 없다. 오직 고용한 자의 목적 달성을 위한 폭력만 존재할 뿐. 그게 폭력의 진짜 얼굴이기 때문이다. 골럽이 ‘용병 시리즈’를 통해 통렬하게 고발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폭력의 민얼굴이었다.
사람들은 비상식적인 것을 봤을 때 불편함을 느낀다. 독일 신표현주의를 이끄는 대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게오르그 바젤리츠(1938~)가 보여주는 세계는 몹시 불편한 경우다.
통일독일 이전 동독 출신으로 1970년 서독으로 망명한 이후 독창적인 회화 세계를 펼쳤던 바젤리츠가 현대미술 현장에서 주목받게 된 시기는 1980년대 중반부터다. 독일 현대미술 중흥을 위한 국가 프로젝트로 기획했던 전시회 ‘여기에서부터 전’(뒤셀도르프 메세 13번홀, 1984년 9~12월)에서 뒤집어진 그림이 화제를 모으면서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뛰어올랐다. 자전거 타는 두 명의 소녀를 그린 이 작품은 거꾸로 돼 있다. 작가가 그렇게 그렸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포즈의 인물을 그릴 때, 대부분은 사람을 먼저 그리고 자전거를 그리게 된다. 사람의 모습도 얼굴, 목, 어깨, 발 이런 순서로 그려야 자연스럽다. 그러나 바젤리츠는 자전거 바퀴부터 시작해 사람의 발, 다리, 머리…. 이런 순서로 그렸다. 그리는 순서 자체가 완전히 뒤집힌 셈이다.
이렇게 그렸음을 알 수 있는 것은 이 그림을 뒤집어 중력의 법칙에 따라 정상적으로 서 있는 상태로 보면 더욱 어색해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작심하고 거꾸로 그렸음이 확실해진다.
이처럼 뒤집힌 그림은 바젤리츠 회화의 대명사로 불리며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이런 그림을 보고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는가. 불편하고 불안한 느낌이다. 그게 정상인의 심정이다. 작가의 의도 역시 관람자들에게 불편한 심기를 주고자 함이었다. 이처럼 불편함을 주는 그림을 그는 왜 그렸을까.
보는 방법에 대한 반란을 노린 것이다. 사람들은 중력의 법칙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순서로 사물을 본다. 그래야만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편안함을 느낀다. 거의 본능에 가까운 편안함이다.
이런 심리에 대한 반전을 통해 익숙함에서 새로움을 찾아보려는 것이 작가의 의도다. 그러니까 정상적인 것 속에서도 조금만 다른 각도로 본다면 얼마든지 비정상적인 면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상식의 세계 속에 비상식이 붙어 있다는 철학적 사고인 셈이다.
이렇게 해서 바젤리츠가 찾아낸 새로운 세계는 불편함을 주더라도 꼭 봐야 하는 것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이다. 불편하지만 꼭 보여주고 싶은 세계가 당신이 매일 마주치는 일상 속에 있다는 사실을 뒤집힌 그림으로 얘기하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감추고 싶어 하는 진실인지도 모른다.
즉 자신 속에 묻어둔 낯부끄러운 비밀 혹은 죄악 같은 것은 아닐까. 인간은 누구나 크든 작든 죄를 짓고 사니까. 그런 수치스러운 내막을 들켰을 때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개인의 성적 욕구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에릭 피슬의 ‘침대, 의자, 춤, 관찰 시리즈’ 중 하나.
바젤리츠의 뒤집힌 그림은 인물만이 아니다. 동물도 그렇게 그렸고, 풍경도 거꾸로 그린다. 그런데도 인물 그림이 유명한 이유는 그만큼 불편함의 농도가 짙고,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 전에는 사람이나 동물이 나무에서 깃발처럼 옆으로 펄럭이는 그림도 그렸다.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 그림 외에도 사람을 토막으로 나눠 그리기도 했으며, 인물의 눈, 코, 입, 팔, 다리 등이 뒤죽박죽 엉켜 있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습관 너머에 또 다른 자유가 있다는 진실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라고 한다. 이 시기가 어떤 모습인지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쉽지 않다. 관통하는 이념이나 공통적인 가치관 같은 것이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것이 개인의 생각, 취향, 영역 같은 사적 가치관이다. 포스트모더니즘 회화가 다루는 주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이 계열에서 가장 두드러진 작가가 에릭 피슬(1948~)이다. 그는 미국 중산층의 개인적 취향을 담아낸 사실주의 회화로 유명해졌다. 특히 개인의 성적 욕구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사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욕망의 본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지극히 사적인 공간인 개인 욕실에서 두 소녀가 자위행위 하는 장면을 건조하게 그린 ‘소녀들’, 모텔로 보이는 공간에서 대낮에 중년 여성에게 몸을 파는 소년을 그린 ‘나쁜 소년’ 같은 작품들이 그렇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침대, 의자, 춤, 관찰 시리즈’도 그런 주제다. 누구나 보고 싶어 하는 장면을 너무나 솔직하게 그려 사람들은 당혹해 했으며, 그런 마음을 들킨 미술계에서도 악평을 쏟아냈다. 오히려 그 덕에 스타 작가가 됐다.
이 그림에서 우리와 눈을 마주치는 사내를 통해 작가가 건네는 이야기는 도전적이다.
“당신도 이러고 싶잖아. 나처럼 이렇게 벌거벗고 여자를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지…. 다 알면서 내숭 떨지 말라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
이 그림에서 피슬은 우리가 숨기고 싶어 하는 성적 욕구를 노골적으로 까발린다. 정면을 바라보는 사내의 시선이 그걸 말해준다. 그림 속 사내는 우리를 바라보는 것 같지만 실은 자기 앞에서 벌거벗고 서 있는 여자를 보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와 눈을 마주치는 그림 앞쪽 공간에 알몸의 여자가 있다. 따라서 이 사내가 보는 여자를 우리도 반대편에서 보는 셈이다. 그림을 보는 관람자를 성적 욕구의 공범자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림을 보는 바로 이 순간, 사내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이게 바로 당신 모습이야.”
(문화일보 5월 7일자 22면 10 회 참조)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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