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미술동네 설설>난민 700명 수장된 배… 아무 설명 없이 작품으로 전시 논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몰타관의 ‘Atlantropa X’는 개념적으로 지중해를 막아 간척지를 만드는 일을 형상화하며 영상미로 예술성을 담보한다. 여기에 키프로스 난민 출신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작품을 통해 공유하고 공감하도록 하고 있다.

베니스비엔날레 ‘우리들의 배’
영문 모르는 관람객 기념 촬영만

베니스비엔날레는 세상 사람들이 간과하고 살아가는 배려와 관용 그리고 공생의 정신을 일깨우고자 하는 주제와 이의 실천을 위한 제언들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목소리와 서로 다른 말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탓에 정신이 없을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누구에게도 질 수 없다는 식의 자신만의 주의와 주장은 전시장에서 다른 작가나 작품에 대한 배려를 찾아볼 수 없도록 했다. 그래서 비엔날레의 주제와 작가들의 주장은 이율배반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는 이번만의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사실 논쟁은 야심만만한 많은 출품작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지만 스위스 태생으로 아이슬란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토프 뷔헬(1966~ )의 작품 ‘우리들의 배’(Barca Nostra, Our Boat)는 논쟁의 중심에 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손이 닿지 않고 품이 들지 않은, 2015년 지중해에서 아프리카 난민들을 태우고 이탈리아로 향하다 람페두사에서 포르투갈 화물선에 받혀 침몰하면서 약 700명과 함께 수장됐다 인양된 낚싯배다.

이번 전시를 위해 시실리에서 베니스까지 견인해 왔다. 지난 2017년 비엔날레에서도 10세기에 세워진 베니스 교회건물을 이슬람 사원으로 만들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전력의 그가 이번에는 이 배를 가지고 논쟁의 중심에 선 것이다.

물론 이 배를 보고 느끼는 것은 전적으로 관객의 관점에 달린 일이다. 하지만 이 배 앞에는 어떤 설명이나 암시 또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싣고 침몰된 배라는 최소한의 설명조차 없다. 따라서 많은 사람은 이 배의 과거를 모른 채 지나치며 베니스에 온 기념으로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여행의 자유와 여유를 즐긴다. 단지 이 비극적인 배는 그냥 그들 인스타그램의 배경에 불과하다. 사실 예술감독인 루고프도 이 작품을 전시하는 데 마지못해 응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 진짜 속내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이 배 앞에서 ‘사악한 방관자’ 또는 타인의 희생, 죽음에 둔감한 파렴치한 그저 ‘나만 잘살면 되는 사람’이 된다. 결국 배의 과거를 알 수 없는 관객들은 모두 ‘나쁜 사람’이 돼버린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물론 뷔헬은 이 작품으로 유럽 전역에 순회 전시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시실리에 ‘기억의 정원’으로 존치되거나, 아니면 이 난파선이 밀라노 인권 박물관에서 사용되도록 정부의 승인을 받고자 한다. 어떤 이는 이 작품을 두고 ‘과거가 아니라 현재’라고 옹호하지만 한편에선 ‘정치적 선전’이라 비난한다. 이런 옹호와 논쟁은 그 내용과 상관없이 작가에게는 호재다. 작가를 유명하게 만들어 줘 몸값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아무튼 한 해에 15만 명이나 구조했던 이탈리아의 마레 노스트럼(Operation Mare Nostrum) 작전이 2014년 중단되자마자 일어난 참사라는 점에서 안타깝지만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현재 유럽 어느 나라도 난민들을 수용하는 데 적극적인 나라는 없다. 오히려 더욱 완강하게 막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남에게 선행을 미루는 것도 선행일까. 그래서 되레 난민 문제의 중심에서 난민들을 수용하고 있는 몰타국가관이 더 호감이 간다.

몰타의 클리차 안토니우는 비디오로 해초를 말려 세운 벽과 벽 사이의 바닥에 난민과 난민선의 흔적을 영상으로 투사해 난민들의 묘지가 된 지중해 해변을 보여준다. 1920년대 독일 건축가 하만 소겔(1885~1952)이 구상한 아틀란트로파 계획을 기반으로 지중해를 메워 육지를 만든다는 계획에 바탕을 두고 있다.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