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 시대’ 이렇게 극복하자>국민연금, 미래세대에 불공평…“탈정치적 지속가능 해법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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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위기의 공적연금제도

초기가입 세대 받는돈 많지만
후속세대 갈수록 비율 작아져
부과방식으로 전환땐 더 심화

일본은 선제적 연금제도 개혁
경제상황 따라 지급액 차등화

소득계층별로 기본소득 보장
세대별 독립재정 등 검토 필요

“인구변화는 예측가능한 사실
실증적 분석으로 개혁 모색을”

심각한 저출산 현상이 의학기술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증가하는 첨단시대와 맞물려 대한민국은 고령 인구의 비중이 급속도로 높아지는 ‘인구고령화’가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9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여성 1명이 평생 아이를 1명도 안 낳는 나라가 됐다. 노인 인구 역시 급속하게 늘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18년 14%에서 2025년 20%로 증가하고, 2036년 30%를 넘어 2051년엔 40%를 초과할 전망이다. 한국의 인구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전례 없이 빠를 뿐만 아니라 앞서 고령화를 겪은 선진국과 달리 저성장 국면에서 고령화가 가속화된다는 점에서 고령화 위기는 더욱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저출산의 경우 그동안 정부가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었음에도 개선되지 않았고,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구조와 일자리 지형, 삶의 양식 변화는 여전히 불확실함으로 가득 차있어 사회적 대응책을 마련하는 일은 어려운 과제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저출산에 비해 인구 고령화는 ‘정해진 미래’이기 때문에 미래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또 저출산 역시 고령화와 상호 밀접한 영향을 주는 인구변화인 만큼 사회구성원들이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문화일보는 ‘저출산·고령화 시대와 한국형 사회복지’를 주제로 앞으로 5회에 걸쳐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사회보장 혁신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국내 경제성장률과 인구 추계를 분석해 세대 간 자원배분을 분석한 결과, 미래세대로 갈수록 사회보장의 불공평성이 심화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국민연금제도의 경우 적립기금 고갈 이후 이러한 불공평성이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의 학술연구사업을 통해 ‘저출산·고령화와 지속가능한 세대공생 연금해법의 모색’을 연구한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와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제학과 교수는 13일 인구고령화 시대 과제는 세대 간 공평성(equity)과 세대 내 연대(solidarity) 원리를 만족하기 위한 전환(transition)의 문제 해결이라고 강조했다. 인구 고령화 시대는 저성장 사회인 데다, 사회 부담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고령화 문제 자체를 인구 및 경제문제로만 접근하면 위기론만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노령층과 근로연령층 간에 자원배분의 조정, 그리고 노령층 내 계층 및 젠더 간 자원배분의 조정 등 세대 간 및 세대 내에서 어떻게 자원배분의 정의를 실현할 것인가의 분배 문제로 풀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공적연금 개혁이 가장 시급 = 연구팀은 기획재정부, 통계청, 국회예산정책처 등의 자료를 통해 1960년생부터 2050년생까지 세대별로 부가가치액(전체 생산액)과 소비액을 산정해 세대 간 자원배분이 공평한지 분석했다. 이 결과 초기세대는 부가가치액 대비 소비액 비율이 1.0에 가까웠지만, 미래세대의 경우에는 0.8 이하로 줄었다. 이는 초기세대는 자신이 생산한 만큼 소비했지만, 미래세대는 자신이 생산한 것의 80% 이하밖에 소비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나머지는 부양 등으로 자신의 자원 혹은 소득을 다른 세대에게 이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출산율이 하락하는 미래세대에서 점점 증가하면서 세대 간 자원배분이 불공평해졌다. 불공평현상은 사망률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출산율이 높아질 때만 완화됐다.

시뮬레이션 결과,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제도에서 세대 간 불공평성이 더욱 악화했다. 국민연금 가입 초기세대의 경우 국민연금으로 인한 자원배분 혹은 소득이전으로 부가가치액 대비 소비액 비율이 크게 높아졌지만, 미래세대의 경우 이러한 비율의 증가가 크게 작았다. 국민연금제도가 수정적립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일정 기간은 적립기금이 있어 내는 돈(보험료)보다 받는 돈(연금)이 더 많아 큰 이익을 보게 된다. 반면, 적립기금이 고갈돼 부과방식으로 전환되는 세대의 경우 부과방식 보험료율을 적용받으면서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결국 미래로 갈수록 세대 간 자원배분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게 된다.

다만 국민연금제도를 수지 균형적 제도로 전환해 시뮬레이션한 결과에서는 국민연금에 의한 세대 간 자원배분의 불공평성이 최소화됐다. 현행 9%인 국민연금보험료율을 연금수지균형보험료율인 17%까지 향후 20년간 점진적으로 인상하고, 2033년까지 65세로 점진 상향하는 현행 연금수급개시연령도 68세로 단계적으로 인상(2048년)하는 방식일 경우다. 일본은 선제적으로 연금개혁을 시행했다. 일본 국립사회보장 인구문제연구소 스즈키 도루 부소장은 “고령화 나라인 일본에선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압력이 강하지만, 매크로경제슬라이드(피보험자 수 감소와 수명연장에 맞춰 자동적으로 연금급여 수준 인하)를 적용했다”며 “경제가 나빠지면 연금 지급도 낮아지는 메커니즘인데, 그런 제도로 고령화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대공생 해법은 탈정치적 연금정치 = 연구팀은 연금의 세대공생 해법으로 세대별 수익비 1.0(세대부담=세대급여)을 정부가 최저방어선으로 유지하면서, 소득계층별로 상이한 다층노후소득보장전략을 통해 노령세대의 최저소득을 보장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수익비가 1.0으로 떨어지는 시점에서는 세대별로 기여한 만큼 받아갈 수 있는 명목확정갹출(NDC)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석 교수는 “다층노후소득보장전략을 통해 소득계층별로 다른 기본소득보장을 달성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중·상층은 법정퇴직연금 등을 포함해 최저소득보장을 달성하고, 저소득층은 최저소득보장을 위해 최저보증연금과 같은 보충소득제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다층체계는 계층마다 독특한 제도적 기능을 분담해 제도의 목표, 재원, 적용대상, 급여결정 방식이 상이한 기능을 담당하도록 구성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갹출연금인 국민연금도 적립방식 요소를 강화해 가능한 한 세대 간 소득이전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대 독립재정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를 위해선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이 필수적이다.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퇴직 적립금 중 일부를 국민연금보험료로 전환해 보험료인상 부담을 일부 흡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기초연금 도입으로 국민연금의 소득 비례부분을 줄이거나 기초연금으로 통합하자는 제안들도 나오고 있다.

한국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대응해온 일본의 경우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근로 세대에서 노령 세대로 이전되는 사회보장소득을 부담 여력이 있는 계층에서 부담 여력이 없는 계층으로 이전하는 방법도 검토되고 있다. 즉 세대 간 소득이전이 아닌, 고소득층에서 저소득층으로 소득을 이전해야 한다는 의미다.

석 교수는 “불확실한 사회변화 가운데서도 인구변화는 비교적 명확한 사실이며, 연금급여 지출전망도 비교적으로 예측 가능한 사실”이라며 “연금해법은 그 무엇보다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분석자료를 기반으로 탈정치적으로 사회공학적 해법을 모색할 수 있도록 연금정치(pension politics)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석 교수는 “스웨덴, 독일, 일본 등의 경우 연금을 탈정치적 공간에서 사회공학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여건을 정치적으로 조성해갔다”며 “그것이 지속가능한 연금의 미래를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