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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철환의 음악동네 게재 일자 : 2019년 06월 13일(木)
세계를 들었다 놨다… 영웅이 된 한국의 ‘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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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TS·U-20 ‘영웅’들

퀴즈프로그램 ‘1대 100’에 당당히(?) 1로 출연한 적이 있다. 장학퀴즈, 퀴즈아카데미 등을 연출한 PD가 퀴즈 문제를 얼마나 풀 수 있을까. 그게 궁금하다고 제작진은 섭외이유를 밝혔다. “드라마 연출자가 연기 잘할 필요는 없는데….” 그래도 재밌을 것 같고, 상금도 탐나서 결의를 다졌다. 등장할 때 구호 비슷한 걸 외치라고 해서 궁리 끝에 이렇게 소리쳤다. “게임은 이기고 인생은 비기자.”

속담 문제, 십장생 문제 등 초반은 잘나갔다. 그러다 결국 급소를 맞았다. ‘오늘 기준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최하위 국가는?’ 황당한 문제였다. 3개의 보기가 주어졌지만 행운은 세 갈래 길에서 내게 퇴장을 명했다. 하지만 추억이 남고 이야기가 남았으므로 후회나 억울함과의 대결에선 100대 1 명승부였다.

어제 새벽에 새로운 영웅들이 탄생했다. 한국 남자축구가 사상 처음으로 FIFA 주관 대회 결승에 진출한 것이다. 중계기록을 들여다본다. “전반 38분 프리킥 찬스를 잡은 이강인이 센스 있는 패스를 연결했고, 이것을 최준이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힙합 전사라면 3개의 단어를 연결할 것 같다. 찬스, 센스, 패스. 찬스가 와도 센스가 없으면 골망을 흔들지 못한다. 센스가 작렬해도 패스하지 않으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결국은 협력이다.

▲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다 말하지/ 너무 작던 내가 영웅이 된 거라고/ 난 말하지/ 운명 따윈 처음부터 내게 아니었다고”(BTS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중). 한국 소년들 참 대단하다.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선 방탄소년단(BTS·사진)이, 폴란드 루블린 스타디움에선 축구소년단이 세계를 들었다 놨다 한다. 하지만 즐거움만 있고 깨달음이 없다면 기쁨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유달리 ‘영웅’이란 두 글자에 눈길이 머문다. 최근 EBS ‘세계의 명화’에서 본 영화 ‘보이 후드’의 마지막 장면이 겹쳐진다. 소년이 어른으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12년 동안 촬영한 보기 드문 영화다. 일상이 모여 일생이 된다는 진리를 영화는 다큐멘터리처럼 풀어낸다.

이 영화 OST 제목이 ‘영웅’(The Hero)이다. 인디 팝 포크밴드 패밀리 오브 더 이어가 불렀는데 초반에 소년이 바라지 않는 것 3가지를 나열한다. ‘당신의 영웅이 되는 것/ 큰 인물이 되는 것/ 그리고 당신의 가면무도회 대열 중 일부가 되는 것(I don’t wanna be your hero/ I don’t wanna be a big man/ Your masquerade, I don’t wanna be a part of your parade)’.

한국드라마에도 이 메시지가 절실했나 보다. ‘스카이캐슬’에도 잔잔히 깔렸고, 5년 전 노희경 작가가 쓴 조인성·공효진 주연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도 여러 번 나왔다. “세상에서 제일 폭력적인 말이 남자답다, 여자답다, 엄마답다, 의사답다, 학생답다 이런 말들이라고. 그냥 다 처음 살아본 인생이라서 서툰 건데, 그래서 안쓰러운 건데, 그래서 실수 좀 해도 되는 건데.” 뒤틀린 관계의 구도에서는 앉는 자리가 늘 정해져 있다. 기대감의 맞은편에는 늘 부담감이 착석한다. 기대가 깨지고 부담이 커지면 인생은 뒤엉킨다.

“잘 싸웠다”. 그라운드를 떠나는 선수에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는 스포츠 영웅이다. “잘 살았다”. 세상을 떠날 때 이런 말을 듣는 자, 그가 진정 인생 영웅이 아닐까. ‘그때 그 선거에서 이겼어야 했는데…’ ‘그때 그 땅을 샀어야 했는데…’. 이런 탄식으로 죽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낙양성 십 리 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저기 저 모양 될 터이니/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김세레나 ‘성주풀이’ 중). 영웅이 시대를 만들까, 아니면 시대가 영웅을 만들까. ‘보이 후드’의 마지막 대사가 답을 건넨다. “우리가 순간을 붙잡고 있는 줄 알았는데… 순간이 우리를 붙잡고 있는 것 같아.”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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