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명분에만 휘둘리는 DMZ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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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일 문화부 부장

강원 고성의 통일전망대 너머 비무장지대(DMZ) 철책선을 따라 걷는 ‘DMZ 평화의 길’에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 탐방 신청이 쇄도해 추첨으로 참가자를 선발하고 있는데, 주말이면 경쟁률이 15 대 1을 훌쩍 넘는다. DMZ 평화의 길 개방은 ‘DMZ를 평화지대로 만들자’는 남북 정상의 4·27 합의에 따른 후속조치다. DMZ 평화의 길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남북 간 긴장 해소’라는 명분이란 얘기다.

과연 그게 ‘북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인지에 대한 논란은 차지하고, 오로지 명분만 앞세우는 지금의 DMZ 관광 방식은 문제가 적잖다. 고성의 지역경제는 지난 4월 발생한 대형 산불로 말이 아니다.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인한 불황이 10년 넘게 계속되면서 고성 경제는 산불 이전에도 이미 빈사 상태였다. ‘한 집 걸러 문 닫은 업소’라는 간성읍만 가봐도, 불경기의 고통이 얼마나 혹독한지 실감할 수 있다.

DMZ 평화의 길 고성구간 개방은 꽁꽁 얼어붙은 지역 경기에 그나마 작은 모닥불이라도 피워볼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 1주년이나 남북 긴장해소 등의 ‘상징적 가치’나 구호에만 관심이 있었고, 피폐한 지역 경제 사정은 나 몰라라 했다.

DMZ 평화의 길을 열면서 고성까지 찾아온 관광객들을 묵어가도록 한다거나, 인근 관광지와 동선을 이어 체류시간을 늘리고 지갑을 열게 하는 등 지역 경기를 위한 관광 연계전략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러면서 엉뚱하게도 국비 10억 원을 투입해 당장 시급하지도 않은 전방관측소(OP) 리모델링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역 경기 활성화보다 관측소를 근사하게 리모델링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는 얘기다.

관광이란 정책의 명분을 강화하거나 구호를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경제적 행위’다. 정책 홍보나 명분만으로 지탱되는 관광은 오래가지 못한다. 과거 금강산 관광이 활발하게 이뤄지던 시절, 빼어난 자연경관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한 번 다녀간 사람이 금강산을 재방문하는 비율이 5%를 한참 밑돌았다는 게 그 증거다.

실용은 뒷전이고 명분만 앞세우는 관광 분야의 정책 사례는 또 있다. 근로자 휴가 비용 일부를 정부와 기업이 분담하는 근로자휴가지원제도는 현 정부가 가장 자랑해 마지않는 관광 분야의 성과다. 당초 이 제도의 방점은 ‘지역 경기 활성화’와 ‘국내여행 유인’에 찍혀 있었다. 하지만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은 정책 성과평가 과정에서 이 제도를 ‘복지’라는 틀 안에 욱여넣었다. ‘관광복지확대’라는 관광 분야 국정과제의 전리품으로 삼기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다.

이처럼 근로자휴가지원제도의 초점이 소비증대가 아니라 복지 쪽에 맞춰지면서 정책 핵심은 ‘근로자 몇 명에게 혜택을 주느냐’로 옮겨갔다. 지역 경기 활성화라는 목표가 희미해지면서 ‘제도의 혜택이 관광지 주민에게 어떻게 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느냐’ 같은 소비 선순환 등에 대한 논의나 모색은 사라지고 말았다.

관광이 달성해야 하는 목표는 통일이나 복지 같은 거창한 명분이 아니라, 자발적 관광 소비 확대를 통한 지역경제 선순환이다. 이런 목표가 달성될 때, 명분도 비로소 힘을 얻게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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