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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9년 06월 17일(月)
“내 그림의 다른 이름은 ‘죽기 아니면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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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종현 화백이 작품 ‘이후접합 10-2’(244×366㎝) 앞에서 마대 작품 탄생 배경을 설명한 후 두 손을 번쩍 들고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김선규 기자 ufokim@
- 4년만에 국내 개인전 여는 ‘단색화 거장’ 하종현 화백

“한국 미술 ‘아류’ 취급하는
서구 미술사조에 대한 저항
나만의 독창 기법 연구하다
마대자루 캔버스 작품 택해”

“6·25 등 비극 견뎌낸 한국
민족의 氣, 색감으로 표현
헝그리 정신으로 수행하듯
쉬지도 않고 그림만 그려”


지난 3월이었다.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가좌동의 하종현(84) 화백 화실 앞마당에 난데없이 관광버스 2대가 연이어 들이닥쳤다. 그리고 외국인 수십여 명이 버스에서 내려 화실로 밀려들어 왔다. 화실은 개조한 창고 4동으로 이뤄져 있다. 각각의 창고는 200㎡(60여 평) 크기로 2동은 전시실, 1동은 작업실, 나머지 1동은 수장고로 쓰인다.

“유럽에서 미술관을 후원하는 분들이 50명씩 두 차례로 나뉘어 제 작품을 보기 위해 화실을 찾아왔어요. 마침 그즈음 홍콩에서도 아트바젤 행사(3월 29~31일)가 있었는데 끝난 후 제 작품을 작업 현장에서 보겠다는 분들도 많이 왔어요.” 지난 11일 일산의 작업실에서 만난 하 화백은 흐뭇한 표정으로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하종현 화백은 박서보, 정상화와 함께 현존하는 ‘단색화 거장’ 3인 중 한 사람이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적 추상화’로 알려진 단색화는 세계 화단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의 독창적 미술사조다. 일반적으로 단색화는 작업 과정에서의 반복과 수행을 통해 물성을 미학적으로 드러낸 작품군으로 분류된다.

그는 50여 년의 세월 동안 끊임없는 변신을 시도했다. 1960년대 앵포르멜 스타일의 추상 유화 작업에 매달렸고, 1970년대 아방가르드협회를 결성한 후 미군 원조미를 담아 보내던 마대로부터 석고, 신문지, 각목, 로프, 용수철, 철조망, 나무상자 등 오브제를 중심으로 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1970년대 중반 마대를 캔버스 매체로 사용하는 자신만의 단색화 스타일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올이 굵은 마포 뒷면에 두꺼운 물감을 바르고 천의 앞면으로 밀어내는 배압법(背押法)을 통해 독창적인 작업 방식을 구축했다. 앞면으로 배어 나온 걸쭉한 물감 알갱이들은 나이프나 붓, 나무 주걱과 같은 도구로 다시 변주되며 마침내 물질과 행위의 흔적이 결합된 결과물로 완성된다.

“해외 전시 등으로 현지 미술비평가들을 만나는 일이 잦았죠.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한국의 현대미술 화풍을 어떻게든 자신들의 미술 사조로 편입시키려 했죠. 그래서 그런지 한국 작품 중에 서구 미술 작품을 ‘모방해 그린 부분’을 찾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였어요. 제 작품도 서양의 모노크롬(monochrome) 계열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선택한 것이 마대자루에 작업하는 것이었습니다.”

서구 미술 사조의 아류가 아닌 우리만의 독창적인 기법에 대한 하 화백의 탐구는 색감에서도 확인된다. 단색화 작업에 몰입해온 후 그의 마대 캔버스에 등장하는 색은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흰색으로부터 흙담, 기왓장, 도자기 등 우리 전통 색이다. 최근 등장하는 적색과 청색 그리고 다홍색도 우리 단청의 색감에서 따온 것이다. 이 같은 전통 색감은 그의 고향이 지리산 자락인 경남 산청인 것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 단색화에는 6·25전쟁 등 처절하리만큼 비극적인 상황을 견뎌온 우리 민족의 ‘기’가 담겨 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요. 전란 중 어머니가 저를 진주역에서 부산행 기차에 태워 보내며 ‘제발 굶지 말고 살아만 돌아와라’고 하셨습니다. 차창에 비가 내리고 있었는지, 제가 울고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그처럼 ‘눈물 젖은 빵의 기억’이 제가 작품을 하며 자연스럽게 (배고픔의 상징인) 마대자루를 선택하게 한 것 같아요. 헝그리 정신으로 진짜 수행하듯 쉼 없이 그렸어요. 그래서 남들은 제 그림을 ‘단색화’라고 하지만 제가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죽기 아니면 살기’죠.”

하 화백은 7월 28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파리, 런던, 뉴욕, 도쿄(東京) 개인전 등 국제 활동에 주력해온 하 화백이 국내에서 개인전을 열기는 4년 만이다. 전시에는 수십여 년 동안 천착해온 대표 연작 ‘접합’(Conjunction) 근작과 신작 10여 점을 선보인다. 접합은 물성과 물성, 물성과 정신을 한데 붙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우리 단색화가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데는 특히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의 공이 가장 크다”고 강조했다.

84세의 노익장. 고령에도 그는 요즘도 거르지 않고 해 뜰 때부터 해 질 녘까지 작업한다. 전시도 계속된다. 오는 9월에는 밀라노 카디 갤러리, 2020년 2월 런던 알민레시 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열린다. 또한 오는 6월 21일부터 미국 미시간주 크랜브룩 현대미술관에서의 그룹전 ‘주인의 색채 : 예술, 경제 및 물성에 대해’ 전에 루초 폰타나, 야니스 쿠넬리스, 박서보, 권영우, 윤형근과 함께 참가하며 7월에는 중국 베이징(北京) 소재 송 현대미술관 그룹전 ‘추상’에서 김창열과 함께 작품을 건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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