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파 최고 걸작 ‘빅 벤’ 한국서 뿜는 원색 에너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앙드레 드랭의 작품 ‘빅 벤’을 살펴보며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있다.

- 세종문화회관서 전시

앙드레 드랭 作, 亞최초 공개
강렬한 색상·거친 터치 눈길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담아내

어둡게 밀폐된 공간, 종소리만이 장엄히 울려 퍼진다. 40호 남짓한 크기의 그림 한 점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시계탑 위로 높이 떠오른 태양은 오렌지빛으로 작열하고, 건물은 온통 파란색이다. 강물의 반짝임은 노랑과 분홍빛으로 표현돼 있다. 강렬한 원색과 거친 붓 터치가 특징이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지난 13일 개막해 9월 15일까지 계속되는 ‘혁명 그 위대한 고통,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야수파 걸작전’에 야수파(野獸派, 포비즘)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앙드레 드랭(1880~1954)의 ‘빅 벤’(Big Ben, 79×98㎝)이 아시아 최초로 공개돼 주목을 받고 있다.

야수파는 20세기 초 유럽 화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미술 사조다. 대표적 작가로 앙리 마티스(1869~1954)를 먼저 언급하지만 마티스 못잖게 빼놓으면 안 되는 작가가 드랭이다.

미술사가들은 야수파의 창시자로 마티스와 모리스 드 블라맹크(1876~1958) 그리고 드랭을 꼽는다. 그중에서도 마티스와 드랭의 관계는 각별하다. 프랑스 샤토에서 작업 중인 드랭을 발견, 1905년 파리 앙데팡당전에 데뷔시킨 이가 마티스다. 또 그림 작업을 반대하던 부모도 마티스가 설득했다.

마티스는 1905년 가을 전시인 ‘살롱도톤(Salon d’Automne)’의 ‘7번 방’에 드랭을 포함, 일련의 작가를 모아 기획전을 열었고, 원색의 물감 덩어리와 거친 선이 난무하는 충격적인 작품들 앞에서 한 평론가가 ‘야수주의’라고 외치며 ‘야수파’가 탄생했다.

당시 예술가들은 산업혁명으로 세계사의 중심에 선 런던, 그중에서도 탬스강의 빅 벤을 화폭에 담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중에서도 인상주의 화가인 클로드 모네 등이 빛과 안개를 동원해 그린 ‘예쁜 풍경’의 빅 벤이 사랑받았다.

드랭은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했다. 쏟아지는 태양으로 시대의 에너지를 표현했고, 시계를 강조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담아냈다.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예고하는 빅 벤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는 “새로운 화법의 그림이 탄생했다. 다른 세상에서 나온 듯 화가의 기개가 넘친다”고 찬사를 보냈다.

드랭을 위시한 야수파, 곧이어 등장한 입체파(큐비즘)는 ‘다른 세상’을 열어젖혔다. 이들은 각각 눈앞의 색채와 형태를 그대로 옮기는 것에 반기를 들며 미술에 혁명을 일으켰다. 한편 전시에는 야수파와 피카소로 대표되는 입체파의 원화 68점을 비롯해 각종 아카이브 등 140여 점이 선보인다. 원화는 프랑스 트루아 현대미술관 ‘레비 컬렉션’에서 선별한 것이다.

전시 기획사인 코바나컨텐츠 관계자는 “트루아 현대미술관은 라코스테 그룹의 소유주인 피에르 레비 부부가 40여 년간 수집한 컬렉션 2000여 점을 1976년 국가에 기증해 만들어졌다”며 “약 2년간의 미술관 리모델링을 기회로 서울과 독일, 단 두 곳에서 전시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글·사진 =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