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조급증 단계 접어든 文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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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석 정치부 차장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지난 14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찾아가 사과의 뜻을 전했다. 지난 11일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 해산 요구 국민청원에 대한 자신의 답변과 12일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 요구 국민청원에 대한 복기왕 정무비서관의 답변을 두고 한국당이 “야당에 대한 전쟁 선포”라고 반발하면서 6월 임시국회마저 문을 못 열게 되자 예정에 없던 일정을 잡은 것이다. 강 수석은 나 원내대표 면담 후 기자들을 만나 “그동안 청와대와 한국당 간 소통이 부족했다면 내가 더 많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로써 청와대와 제1야당의 충돌은 3일 만에 청와대가 고개를 숙이는 모양새로 정리됐다.

그러나 청와대 정무라인이 이례적으로 국회를 공개 비판한 데서 시작된 이번 소동이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사태 전개 추이가 과거 정부의 실패 과정과 닮았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를 하나로 꿰어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여권 핵심부의 대외 소통 자세에 초점을 맞춰 정부의 실패 과정을 분석하면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그 첫째는 민의가 압도적으로 자신들에게 있다고 여기는 단계다. 주로 집권 초기 ‘오만과 과욕’의 단계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실현 가능한 목표, 동원 가능한 수단에 대한 고려 없이 뭐든 다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자신들은 열심히 잘하고 있는데 개혁을 거부하는 야당과 기득권 세력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고 하는 단계다. 집권 중기 ‘조급함’의 단계로, 성과를 내기 위해 야당과 공무원 조직, 나아가 여당과 민간 기업까지 압박하는 일이 벌어진다. 셋째는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역사는 자신들을 평가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단계다. 집권 말기 ‘자기 합리화’의 단계다. 이 시기에 이르면 정부 성과에 대한 여권 핵심부의 평가와 남들의 평가 사이에 괴리가 더 커진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인사들이 국회와 야당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여가는 모습은 3년 차의 문재인 정부가 정부 실패의 1단계를 지나 2단계로 접어든 게 아닌가 의심케 한다. 국회, 특히 야당과의 관계를 원활히 유지해야 할 청와대 정무라인까지 대국회·대야 공격에 앞장선 것은 여권 핵심부의 조급증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지연이 경제 활성화를 막는다는 군색한 논리도 조급증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번 추경은 6조7000억 원 규모로, 2019년 정부 예산(469조6000억 원)의 1.4%에 불과하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목소리를 높이고 싸움을 키우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이 남긴 게 뭔지 돌아보자. 2개월을 넘긴 국회 마비는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과 연합해 한국당을 고립시키는 ‘실력대결의 정치’가 얼마나 허망한지 여실히 보여줬다. 한국당을 적폐세력으로 더 거칠게 몰아붙여 내년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당 의석이 조금 더 늘더라도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해법은 지금까지 성과를 못 낸 원인을 되짚어보는 데서 찾아야 한다. 어떻게 오만했고, 어떤 과욕을 부렸는지 반추해야 한다. 정부 실패의 1단계를 넘어 2단계, 3단계로 가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도, 대한민국에도 불행이다. greent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