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TV세상>선인도 악인도 아닌 정치인 ‘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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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

기존 한국 정치드라마와 차원이 다른 정치드라마가 등장했다. 바로 종합편성채널 JTBC ‘보좌관-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하 ‘보좌관’)이다. 주인공이 국회의원이 아닌 여당 원내대표의 보좌관으로 일하는 장태준(이정재 분)이다. 그는 정의파 초선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다 닳고 닳은 부패 중진 의원인 송희섭(김갑수 분) 의원실로 갈아탔다. 이 때문에 배신자 소리를 듣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가 송 의원에게 간 이유는 권력 때문이다. 장태준은 송 의원이 더 큰 권력을 움켜쥐도록 보좌하며 동시에 그 자신이 국회의원이 돼 권력을 잡으려 한다.

이런 설정을 보면 주인공 장태준이 선인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권력욕 때문에 부패 정치인의 수하가 되고, 그 정치인의 이익을 위해 부당한 일을 마다치 않는다. 그동안 우리 정치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선인이었다. 그런 착한 주인공이 부패 정치를 개탄하며 꾸짖는 것이 일반적인 설정이었다. 얼마 전 끝난 KBS ‘국민 여러분’에선 주인공이 사기꾼이었지만 국회에 진입하는 순간 갑자기 정의파로 변해 정치판을 꾸짖었다. 과거 인기를 끌었던 SBS ‘대물’에선 고현정이 바른 정치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것이 하이라이트였다.

‘보좌관’에서 장태준은 열변을 토하지도, 부패 정치를 개탄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부패 밀실 정치판의 일원으로 앞장서서 일한다. 그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주로 뒷조사, 협박, 밀실거래 등이다. 하지만 완전히 악인은 아니다. 무고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거나 국민에게 해가 될 법안을 내지는 않는다. 그가 공격하고 거래하는 대상은 중진 의원을 비롯한 부패 기득권층이다. 그들을 대상으로 도덕 교과서 같은 설교를 하거나 사자후를 내지르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대가를 주고받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자기가 모시는 송 의원을 돕고 그 자신의 앞길을 다져나간다.

선인도 악인도 아닌, 자신의 야망을 위해 움직이는 주인공. 착한 가치를 내세우는 우리 정치드라마에선 볼 수 없었던 인간형이다. 미국 드라마에서나 등장할 법하다. 아침에 도심을 조깅하는 장면이나, 권모술수와 협잡으로 정치거래를 나누는 설정에선 ‘하우스 오브 카드’가 떠오른다. 한국 정치판이 아닌 미국 드라마 같은 국회 상황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신선하다. 기존 한국 정치드라마의 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기존 정치드라마보다 ‘보좌관’이 더 리얼하다는 점도 미덕이다. 이 세상은 선과 악으로 확연히 구분되지 않는다. 정치도 그렇다. 선의지와 사적 욕망, 현실 논리가 뒤섞여 움직이는 것이 정치판이다. 장태준은 매 순간 이 세 가지를 모두 고려해 결정한다. 자신을 후원해줄 스폰서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회사 사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세우지만, 그건 동시에 부당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이렇게 가치와 욕망이 뒤섞여 구분이 안 되지만 그 속에서 조금씩 결과물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진짜 정치다. 그동안의 정치드라마는 이분법적으로 착한 가치만을 내세워 도덕 교과서처럼 흐르고, 도덕적이지 않은 정치판을 싸잡아 매도해 정치혐오를 조장했다. 그에 반해 ‘보좌관’은 판타지이긴 하지만 보다 현실적인 통찰을 담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치드라마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고 하겠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