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공존’의 종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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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방언 재일 한국인 음악가

1위 목표로 뛰는 스포츠 경기
경쟁의 순수함 우선할 때 매력

차이를 알고 겨루는 패럴림픽
불순물 없는 예술처럼 감동적

각자 정상에서 전망 공유할때
모두 훌륭한 ‘공존’으로 귀결

최근 홍콩의 친구가 걱정돼 오랜만에 연락해 소식을 들었다.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 일명 ‘송환법’에 반대하는 많은 홍콩 시민이 뜨거운 의견을 쏟아냈는데, 내 친구도 그중 한 사람이다. 이야기를 들으니 안심이 되면서 용기가 샘솟았다. ‘지금 내가 여기서 굴복하면 홍콩과 우리들의 장래는…’이라는 ‘정면돌파’ 의지가 뭉클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그들의 절박함과 현재 처한 상황이 전해져 응원하고 싶어졌다.

중국의 대형 음악 제작 프로젝트 관계로 본토인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들과 대화하다가 홍콩 비슷한 자립에 관련된 얘기를 하게 되면 대개는 아주 잠깐 뜸을 들이다 생각을 정리하곤 대화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에 깊이 빠져들지 않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느껴지는데, 그들은 간단한 코멘트만 하곤 일상의 화제로 돌아간다. 순간적으로 ‘제정신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어 왠지 씁쓸해진다. 홍콩과 본토 양쪽의 차이가 뚜렷한데, 그 차이와 경계선은 무엇일까? 역사·지리적 조건과 시간에 의한 여러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지만.

화제를 바꾸면, 나는 어떤 장소에 모인 사람들의 ‘다름’이 그 순간 그곳에서 무엇을 만들게 되는가, 그리고 그것이 통상적인 것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데 관심이 많다. 그런 생각을 하면 너무 흥미롭다. 음악가여서 공연장이나 녹음 현장에서 이런 것을 생각하는 일이 대부분이었지만, 오랜 기간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음악 이외의 일상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고, 하루하루 그런 느낌이 강해진다. 영국에서도 녹음을 하고, 한국·일본·독일·프랑스에서도 공연을 하며, 중화권에서도 음악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당연히 저마다 다르다. 그리고 어느 것이 최고라고 결정할 필요 없이 각각이 모여 무언가 만들어지는 그 순간이 즐겁고 그래서 소중하다. 그 과정에서 똑같은 결과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에는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에 참여했고, 지금은 2020년 도쿄패럴림픽 다큐 음악에 관여하고 있다. 스포츠와 음악이 공존하는 순간을 체험했고 지금도 그것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는 경기에 있어 참가자가 1위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음악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음악에도 콩쿠르나 최근 유행하는 오디션처럼 순위를 겨루는 일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음악의 최종 목적이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된다. 이는 스포츠에서도 공통적인데, 나는 상업적인 의도에 휘말리지 않고 순수 스포츠와 음악 그 자체에서 감동을 받고 싶다.

지금 일본에서 참여하고 있는 패럴림픽을 보면, 장애를 안고 있는 모든 선수가 서로 다르다는 차이를 인식하면서 같은 필드 위에서 스포츠로 실력을 겨룬다. 그 자세는 무척 감동적이다. 물론 순위라는 최종 목표를 노리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의 내면으로부터 배우는 게 정말 많다. 음악에도 비슷한 점이 많은데, 경기에서 이긴 사람처럼 좋은 연주로 감동을 준 사람의 뒷모습에 감동하는 일이 많다. 선수가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기 위해 노력하듯이, 아티스트가 콘서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각자 노력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뒷모습에 감동한다. 올림픽도 그렇지만, 스포츠도, 또 문학 같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도 모두 그렇다. 그러나 일단 불순물이 섞이게 되면 아차 하는 순간 물은 흐려진다. 어느 정도의 불순물은 면역상으로도 필요하지만, 세인의 관심이 지나치게 증폭된 상업적 측면은 진정한 사물의 가치를 왜곡시킨다.

나는 그 경계선이 가장 신경 쓰인다. 물론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장된 정보와 광고에 휘말리지 않고 그에 상응하는 가치가 있는 것과의 만남을 스스로 찾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안목·식견·지성·감성, 때로는 조언을 주는 멘토와의 만남 등 자신이 처한 현실을 확실히 파악하고 있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주위에 휘둘리는 일 없이 살아가는, 그리고 각 개인이 그렇게 서로 공존하는 것이 아니면,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만 유도되고 그런 식으로 선동당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앞서 말한 홍콩의 이야기도 그런 느낌이 있다.

스포츠 경기처럼 하나의 산 정상을 향해 경쟁하며 올라가든, 예술과 같이 개성이 빛나는 각각의 정상을 향해 올라 거기서 서로의 뛰어난 전망을 공유하든 각축전을 벌인 뒤 패자(覇者)로서 정상에 홀로 서는 것은 기쁨과 쾌감을 맛볼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정상에서 서로의 전망을 공유함으로써 시야가 넓어지는 것도 귀중하고 매력적인 체험일 것이다. 즉, 모두가 훌륭하다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스포츠와 예술은 공통 부분도 많고 양자 간 경계선 같은 건 없다. 경계선이란 인간의 관념에서 만들어진 것일 뿐, 그것은 각자가 정형화한 것이다. 무경계(No Boundary)라는 말처럼, 경계 같은 구분이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개인의 의식 속에 경계선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는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란 말이다.

공존·미소·감동·평화·긍정·정방향 등으로 의미가 연결되지만, 마이너스 방향의 연쇄작용도 있다. 그러나 정방향의 연결고리를 쭉 더듬어 가다 보면 그 종점은 ‘통일’이 아니겠는가. 마이너스 방향으로 이어지는 자의적 불순물은 가능한 한 섞이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늘 정방향으로 연결되도록 스스로를 지그시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내가 그리는 공존의 마지막 모습, 아니 가까운 장래의 모습이다. 그러한 공존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꼭 나만이 아닐 것이라고 확신하며 매일 열심히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