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경의 요즘 클래식>詩 쓰듯 기도하듯 오묘한 음색… 투박하면서 자연스러운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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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디 사발 & 르 콩세르 데 나시옹

‘요즘 사람들의 귀로는 맑은소리를 들을 수 없다. 어떠한 과학이나 마법으로도.’ 전쟁의 시기를 겪으며 종말론적 소리를 체험한 헤르만 헤세는 1943년에 출간된 소설 ‘유리알 유희’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날은 어떨까. 폭탄의 파괴적 음향은 사라졌지만 현대사회가 만들어내는 무수한 소음들이 ‘평범한’ 소리를 들을 권리를 잠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다. 캐나다 작곡가 머리 셰이퍼는 ‘도시인은 먼 곳의 소리를 듣는(그리고 보는) 능력을 잃어버렸고, 이는 지각의 역사에 중요한 변화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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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조르디 사발, 르 콩세르 데 나시옹의 연주회는 낯설게 느껴질 만큼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통해 잃어버린 지각을 되찾는 경험을 선사했다. 22일에는 기악곡, 23일에는 합창단인 라 카펠라 레이알 데 카탈루냐가 참여하는 합창곡 중심의 프로그램을 마련했는데, 필자는 첫째 날에 다녀왔다. ‘세상의 모든 아침’ ‘대지에 바치는 경의’라는 제목으로 구성된 1·2부의 프로그램은 옛 악기가 지닌 가능성과 다양성을 오랜 시간 연구한 조르디 사발의 통찰을 드러냈다.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로서 조르디 사발은 원전 악기가 지닌 원초적 소리를 탐닉하는 한편,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대의 음악에 깃든 진중함과 경외의 정신을 재현했다. 결코 과시하는 법 없이 장식음 하나에도 의미와 이유를 담는 생트 콜롱브, 마랭 마레의 실내악곡들을 풍부하고 자유롭게 펼쳐 보일 수 있는 건 사발의 음악적 확신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때로는 한 편의 시를 쓰듯, 또 때로는 기도문을 외듯 사발은 청중을 시종 깊고 오묘한 세계로 안내했다.

현대에 사용되는 서양악기에 비해 원전 악기는 민첩하게 음을 바꾸기가 까다롭고, 다이내믹을 화려하게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에서 다채로운 음악적 재미와 감흥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나무 플루트가 내는 부드러운 울림, 납작하게 뻗어 나가는 오보에의 소박한 음색과 내추럴 호른의 투박함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깨끗하고 평온한 정서를 전달했다. 헨델의 ‘수상음악’ 모음곡 HWV 349·350을 포함하는 2부에서 지휘자로 나선 사발은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며 아름다운 풍경들을 적극적으로 묘사했다.

앙코르곡으로 사발과 르 콩세르 데 나시옹 단원들은 관객들이 경쾌한 리듬의 박수를 따라 하도록 유도한 후 그에 맞춰 라모의 ‘레 보레아드’ 중 콩트르당스를 연주했다. 새삼 ‘오래된 음악’이란 성립할 수 없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가와 청중이 존재한다면 음악은 영원히 새롭다. 이들은 25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마지막 공연을 연다.

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 한화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