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新냉전 넘을 가치는 ‘자유’와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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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前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

미·중 무역 갈등은 序幕일 뿐
3가지 요인 뒤엉켜 악화일로
中 WTO 책임 외면에 美 폭발

G20 오사카 회의서 反轉 난망
화웨이 이어 겹겹의 파도 덮쳐
기본 가치 고수해야 국익 지켜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 2500억 달러에 대한 관세 25% 부과에 더해 나머지 수입품 3000억 달러에 대해서도 고관세를 매길지에 관해 오늘로 열흘째 공청회를 열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세계 경제 1, 2위 국가 간 관세 퍼붓기로, 세계 교역과 경제 전반이 위축되고 있다. 양국 간 갈등이 확산일로인 것은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있다고 본다. 첫째는, 미국의 만성적 대중(對中) 무역 적자와, 중국의 비(非)시장경제적 행태와 불공정한 제도에 대한 미국의 해묵은 좌절감이다. 둘째는, 시진핑(習近平) 등장 이후 천명한 중국의 굴기이다. 셋째는, 이 좌절감을 폭발시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이다. 이 갈등이 관세 폭탄 주고받기 정도라면 오래지 않아 타결될 수 있고, 우리나라도 직접 손실과 반사이익을 계산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싸움은 서막(序幕)에 불과하다.

중국 대륙이 공산화한 1949년 이후 폭력적 극좌 이념투쟁이었던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중국은 피폐했다. 여기에 젖줄을 대준 나라는 바로 미국이었다. 거대한 중국을 문명사회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봉쇄보다는 포용이 유효할 것으로 봤고, 당시 소련과의 냉전에서 전략적 계산도 있었다. 때마침 등장한 중국의 실용주의 개혁·개방은 2001년 마침내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함으로써 물을 만났다. 이것은 ‘죽의 장막’을 걷고 나온 배고픈 곰이 엄청난 꿀밭을 갖게 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중국은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경제 2위 국가로, 2013년에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교역 1위국이 됐다. 그런데 미국의 불만은 쌓여 갔다. 가입 때 약속했던 조건들이 지켜지지 않음은 물론,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이 국제 기준은 따르지 않으면서, 개도국으로서 계속 특별대우를 누리는 것도 온당치 않았다. 특히, 시 주석 등장 이후 더 이상 빛을 감추지 않고 떨쳐 일어날 것을 천명한 데 이어 ‘이제 대국이 됐으니 대국과 대국으로서 새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고 나오자 미국 조야는 큰 경계심을 갖게 됐다.

이런 미국의 불만과 경계심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구호로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더 강경하고 구체적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1년 차이던 2017년 12월에 발표한 ‘국가안보 전략’에서 미국은 중국을 적대 세력 내지 전면적 경쟁의 상대로 지목했다. 이어서 2018년 3월 발표한 ‘중국의 경제침략에 대응한 대통령 각서’는 제목 그대로 중국을 경제적 침략자로 규명했다.

올해 초 약 4개월간 계속된 고위급협상은 많은 분야에서 합의될 뻔하다가 불발됐다. 결렬의 원인은 합의 이행 문제였다. 미국은 △주요 합의 법제화 △불이행 시 고관세로 복귀 △중국은 보복하지 않을 것 등을 요구했다. 일면 과다해 보이는 미국의 요구가 넓은 지지를 받은 것은 그만큼 미국민의 중국에 대한 불신과 경계심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몇 주 전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 국경 문제를 다루면서 적정한 선에서 조기에 타협한 것과는 대비되는 대목이다.

세계는 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개최되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트럼프-시진핑 간의 회담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으나, 새롭게 대두한 화웨이 문제, 대만 문제 등을 고려할 때 분위기 반전(反轉)은 쉽잖아 보인다. 성공적 만남이 된다면 협상 재개 정도가 최대한의 기대치가 되지 않을까 예측들 한다. 양국 갈등의 내면에는 제도와 문화의 차이는 물론, 어떤 제도와 가치가 미래 산업을 선도하고 세계 질서를 주도해야 하는가 하는 본질적 문제가 깔려 있다. 신냉전의 시작으로 보는 이유다.

지금 우리는 화웨이 문제를 두고 미·중 양측으로부터 상반되는 요구를 받고 있다. 앞으로도 남중국해, 인도·태평양 전략과 일대일로 등 지역 또는 세계 전략 차원의 이슈와 관련, 이런 상황은 겹겹이 다가올 것이다. 우려만 할 게 아니라, 사드 사태를 교훈 삼아 재발을 막아야 한다. 개인에게 인성과 인격이 있듯이 국가에도 체제와 국격이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오면서 지켜온 가치, 앞으로도 지켜 가면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기본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칙이다. 21세기 지구촌에서 이웃 나라를 적대시하고 배격할 이유는 없지만, 이 원칙과 기본이 공유되거나 최소한 존중돼야 더 탄탄한 실익을 나눌 수 있는 파트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