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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9년 06월 25일(火)
최영미 “등단 직후 작가회의 행사 가면 만지고 성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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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투 촉발’ 최영미 시인, 6년 만에 시집 출간 (서울=연합뉴스) ‘미투(MeToo :나도 당했다)’ 운동을 촉발한 최영미 시인이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9.6.25
1993년 등단후 ‘작가회의 술자리 성추행’ 폭로한 시 ‘등단 직후’ 소개
“사랑 떠올릴 수 있는 동안 시 잃지 않을 것…직구뿐 아니라 변화구도 던져”


“등단한 직후 문단 술자리에 나가서 내가 느낀 모멸감을 표현한 시에요. 밥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 작가회의 행사 하러 갔는데, 가만히 서 있으면 뒤에서 엉덩이 만지고 술자리에는 무성한 성희롱 언어들…. 처음엔 발끈했는데 나중엔 무뎌지더라고요. 불편했으니까 이런 시를 썼겠죠.”

문단 기득권층의 성폭력 행태를 고발하며 ‘미투(MeToo :나도 당했다)’ 운동을 확산시킨 최영미 시인이 신간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미출판사)에 실린 시 ‘등단 소감’ 한 대목을 설명하며 전한 1990년대 초반 문단의 한 풍경이다. 25일 마포구 서교동 한 찻집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다.

시 ‘등단 소감’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내가 정말 여, 여류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술만 들면 개가 되는 인간들 앞에서/ 밥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 고, 고급 거시기라도 되었단 말인가’

비유가 상당히 직설적이어서 많은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이 시에 따르면 당시 문단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할 만하다.

이른바 진보 성향인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행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최영미는 회고했다.

그는 당시 너무 불쾌해서 1993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보에 실은 등단 소감에 이 시를 넣었다고 한다. 이후 2000년 에세이집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사회평론 펴냄)에 이 시를 다시 한번 삽입했고, 20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처음으로 시집에 싣게 됐다. 시가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셈이다.

각주에는 이런 사정을 다 밝히지 못했다. 두 번째 교정까지 민족문학작가회의 회보에 이 시를 실었었다는 사실을 각주에 넣었다가 고은 시인과 소송 중인 민감한 상황을 고려해 삭제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최영미는 “내가 재판하면서 너무 쪼그라들었다. 2쇄에서는 이 부분을 넣으려고 한다”고 했다.

시집에는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구체적으로 고발한 ‘괴물’ 외에도 고은을 비판하는 시, 미투 운동과 관련된 시가 등장한다.

‘그가 아무리 자유와 평등을 외쳐도/ 세상의 절반인 여성을 짓밟는다면/ 그의 자유는 공허한 말잔치// (중략) 휴머니즘을 포장해 팔아먹는 문학은 이제 그만!’(시 ‘거룩한 문학’ 일부)

‘나는 내 명예가 그의 명예보다/ 가볍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시 ‘바위로 계란 깨기’ 일부)

최영미는 이들 시에 나오는 ‘그’에 대해 “당연히 저랑 싸우고 있는 원로 시인”이라며 “처음엔 그 원로 시인이 모델이지만 시를 전개하는 과정에서는 꼭 그 한 사람만이 아니라 보편화했다. 어떤 우상 숭배라고 할까”라고 설명했다.

계간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시 ‘괴물’을 실은 배경과 뒷얘기도 자세히 털어놨다.

최영미가 ‘괴물’을 발표한 것은 사실 완전히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청탁을 받던 시점은 2017년 9월 중순으로 아직 미국 할리우드에서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 전이다. 당시 ‘황해문화’ 실무진에서 ‘젠더 전쟁’을 주제로 시 3편을 써달라고 청탁해 ‘괴물’을 포함한 3편을 잡지에 보냈다.

최영미는 “의도적으로 이런 글을 써야겠다고 하지 못한다. 나오는 대로 쓴다”고 말했다.

그는 ‘괴물’을 써놓고도 원고를 보낼까 망설였다고 한다. 최영미에 따르면 한 일간지 기자한테 원고를 보여줬더니 못할 이유가 없다며 보내보라는 조언을 받았다. 고은을 지칭하는 표현 ‘en’을 ‘n’으로 여러 차례 바꿨다가 되돌리기도 했다. ‘미투’란 표현도 나중에 이런 용어가 생긴 뒤 수정해 삽입한 것이다.

남성 언론인 2명과 식사 자리에서도 고은 시인의 실명을 얘기하며 당시 성추행 의혹을 폭로했고, 지난 2016년 가을 한 언론사에서 고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모두 취재했지만, 보도로 이어지지는 못했다고 최영미는 전했다.

최영미는 고은과 법적 분쟁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로 힘들긴 하지만 “시 ‘괴물’을 발표한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 시를 쓸 때 젊은 여성들에게 조금 미안했어요. 이미 2016년 가을 여고생들에 의해 문단 성폭력 문제가 불거졌어요. 여고생들이 먼저 시작했죠. 너무 늦게 쓴다는 미안한 마음을 갖고 (괴물을) 썼어요.”

최영미는 자신의 시가 사회적 이슈가 됐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연애시’이고 ‘사랑’이라고 했다.

그는 “‘썸’탔던 시는 아무도 언급 안 하더라”면서 “나는 연애시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또 “사랑을 떠올릴 수 있는 동안은 시를 잃지 않을 것”이라며 “사랑보다 더 좋은 게 있느냐”고 덧붙였다.

이 밖에 최영미는 이번 시집 출간 과정에서 여러 출판사가 시집 출판을 거부하거나 꺼렸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배경에 고은과의 대립이 무관치 않음을 시사했다.

그는 “원로 시인이 출판계에 고루 친분이 두텁다”면서 “그 원로 시인 책을 많이 낸 출판사는 내가 당연히 부담스럽다. 출판계도 인맥이 작용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론가, 교수, 심사위원들이 오랫동안 문단서 권력을 쥔 힘이 센 남성들이고, 그들이 불편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문학성에 대한 질문엔 “문학성이 높아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시 쓸 때 아무 생각 없이 써요. 내가 어떻게 하면 정확히 표현할까에 집중합니다. 저를 직구만 던지는 투수인 줄 아는데 변화구도 던지는 투수예요. 변화구를 던져도 사람들이 직구로 안다. 훌륭한 투수는 직구도 변화구도 잘 던집니다. 그 비유가 너무 직구처럼 들어가서 직구인 줄 알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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