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맥주는 수도원서 탄생…수도사들의 큰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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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원 맥주 유럽역사를 빚다’ 출간한 고상균 목사

“수녀 출신 마르틴 루터 부인
맥주 팔아 생계 지원안했으면
종교개혁도 한참 늦춰졌을 것”

“맥주의 명품은 유럽의 수도원에서 탄생했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수녀 출신 부인 카타리나가 맥주를 팔아 지원하지 않았으면 종교개혁도 어려웠을 겁니다.”

‘목사님’의 말씀이다. 전통 깊은 진보 개신교 교회인 서울 명동 향린교회의 부목사를 지냈고,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앞장서며 차별금지법을 신학적으로 지원하는 저서 등을 써 온 고상균(45·사진) 목사. 그가 이번엔 중세 유럽 수도원의 맥주와 그리스도교, 이것을 다시 한국 사회의 문제와 연결짓는…, 한마디로 맥주에 관한 책 ‘수도원 맥주 유럽역사를 빚다’(꿈꾼문고)를 펴냈다. 고 목사는 10년쯤 전부터 ‘술과 인문학’을 주제로 시민사회단체나 기업 등에서 공부모임이나 강연을 해왔고, 최근에는 ‘술기로운 생활’이란 발칙한 유튜브 방송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소위 세계종교라고 일컬어지는 여러 신앙 가운데 유일하게 성찬, 즉 먹고 마시는 절차가 제의의 한 중간에 포함된 종교입니다. 누가복음 7장 34절에 보면 예수그리스도는 ‘먹고 마시는 것을 탐한 분’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지배권력의 편에 서면서 초기 신앙 공통체로 돌아가자는 중세유럽의 종교개혁이 수도원 운동이었다. 유럽 각지에 생겨난 수도원은 지식과 기술을 축적하는 초기 대학의 역할도 했는데, 맥주 양조는 그중 중요한 기술이었다. 수도원 유지를 위한 경제적 기반으로 저도수 술인 맥주를 수도원이 만들어 낸 것.

“수도생활의 팍팍함 속에서 시원한 맥주는 그들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낙이자 유일하게 끊지 못한 속세의 욕망이었을 겁니다. 수도사 자신들이 엄청 마셨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람빅’과 같은 맥주 명품들은 수도원에서 만들어졌고, 지금 우리가 마시는 유럽맥주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르틴 루터의 부인인 카타리나 폰 보라는 봉쇄수도원의 수녀였는데, 신부인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에 심취해 수도원을 탈출, 청혼한다. 수도원에서 익힌 양조기술로 맥주를 만들어 팔아 빈털털이 가장인 루터 대신 가계를 책임졌고, 개혁 의지가 약해지는 남편을 다그쳤다. 카타리나의 맥주가 없었다면 인류사의 최대 사건 중 하나인 종교개혁도 한참 늦춰졌을지 모른다.

책에는 수도원마저 권력화되면서 맥주 양조를 독점하며 파산한 사람들의 이야기부터 농민전쟁과 민주화운동과 연관된 맥주 이야기 등 유럽의 역사가 담겨있다. 물론 맥주에 대한 세밀한 정보도 ‘팁’으로 들어있다. 고 목사는 “술은 ‘노동’과 발효의 ‘신비’가 만나 빚어낸 까닭에 전세계 종교 혹은 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며 “이 환상적인 액체가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 있었던 수많은 사람의 노동과 피눈물도 이번 책을 통해 떠올려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