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로서의 죽음 쓴 감수성 통한 듯… 노벨상 말하는 건 詩 그만 쓰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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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시인 ‘그리핀賞’ 소감

“이 시집은 죽은 자의 죽음이 아니라 산 자로서의 죽음을 쓴 것입니다. 제가 죽음과 같은 순간에 처했을 때 제 주변 지인이나 사회적 죽음이 시작되는 순간을 썼습니다. 그런 시적 감수성이 심사위원들의 감수성에도 닿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김혜순(사진) 시인이 25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캐나다 그리핀 시 문학상 수상 소감을 밝혔다. 김 시인은 “시상식장엔 1000명 정도 모여 있었는데, 아시아인은 나와 번역자 최돈미 시인 둘 뿐이었다”며 “수상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집의 이름이 시상식장에서 불렸을 때 아무 느낌이 없었고 현실이 아닌 줄 알았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김 시인이 쓰고 최 시인이 번역한 시집 ‘죽음의 자서전’(영문명 ‘Autobiography of Death’)은 지난 7일 그리핀 시 문학상을 받았다. 이 상은 시 부문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상으로 영어로 쓰였거나 번역된 시의 초판본을 대상으로 한다. 지난 2016년에 국내에 출간된 ‘죽음의 자서전’은 김 시인이 2015년 지하철역에서 갑자기 쓰러진 경험을 토대로 쓴 49편의 시가 담겼다. 소제목을 달리해 49일간 서로 다른 죽음을 교차시킨 점이 특징이다. 그리핀 시 문학상 심사위원단은 ‘죽음의 자서전’을 두고 “한국의 세월호 사건 이후 김 시인은 매일 49편의 시를 썼으며, 망자들은 매일 환생을 기다려야 했다”며 “최 시인의 놀라운 번역으로 우리는 이전에는 노래한 적이 없는 시를 듣게 된다”고 상찬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김 시인이 노벨상에 근접한 시인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201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웨덴 출신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도 2007년에 그리핀 시 문학상 평생공로상을 수상하는 등 이 상에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자주 후보로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김 시인은 이 같은 세간의 평가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김 시인은 “내게 노벨문학상을 말하는 건 시를 그만 쓰라는 말이나 다름없다”며 “우리나라 작가라면 누구나 그 말이 괴롭게 들릴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 시인과 함께한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기존 한국 문학은 남성 작가 중심의 큰 이야기가 주를 이뤘는데, 그런 이야기가 과연 보편성을 가졌는지 의문이 있었다”며 “김 시인의 수상은 한국 여성 작가의 문학이 동시대에 보편성을 가지고 있고 또 세계가 이에 호응한다는 걸 보여준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김 시인은 올해로 작품 활동을 한 지 40년째를 맞았다. 김 시인은 작품 활동 40년을 맞은 소감을 밝히길 거부하며 현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시인은 “나는 내가 쓴 시를 전혀 읽지 않으며 과거에 쓴 시는 과거에 묻어버린다”며 “나는 당면한 오늘을 바라보고 사유를 진행할 뿐”이라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