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주의자의 미식여행>들기름에 지져낸 두부부침 ‘입맛’ 잡은 문화재급 ‘손맛’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두부부침은 생두부의 부드러움과는 달리 바삭한 겉면을 입으로 자를 때의 느낌이 새롭다. 아래 왼쪽부터 막국수, 두부백반, 감자전.

화가 이진경과 함께한 강원 홍천의 맛

막국수
심심하고 밍밍한 ‘옛날 육수’
탄탄·쫄깃 80% 메밀면 일품
튀기듯이 구워낸 감자전까지
장모 이어 사위가 40년 운영

손두부
주중엔 하루 1번 주말엔 2번
직접 콩갈아 두부 만들어 내
부치면 겉은 바삭·속은 고소
좋은음식에 고마운 마음 절로

지난 4월부터 뜻하지 않게 강원 홍천을 세 번 방문했다. 이 중 두 번이나 ‘내촌’이라는 작은 동네를 지났는데 동네 곳곳에 익숙한 글씨체로 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서양화가 이진경. 서울 종로구 인사동 쌈지길 아트디렉터 시절, 자신의 이름으로 된 서체를 만들고 일상이 곧 예술이며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대중에게 알렸던 화가다.

홍천으로 이사와 폐허가 된 농협창고에서 개인전 ‘앞산’을 열고, 많은 관람객을 홍천으로 불러모았다. 그가 홍천으로 이사 온 지 20여 년이 됐다. 젊은 시절 아이 같은 유쾌함과 순수함을 기억한다. 많이 늙었을까. 아직도 까칠한 식성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웃는 얼굴 같은 그의 글씨가 동네 곳곳에서 반겨주는 홍천 내촌면으로 떠난다.

오전 10시 홍천터미널에 도착해 1번 정류장에서 하루 몇 번 있는 내촌행 버스를 탔다. 인근에 군부대가 많은지 군인들이 끊임없이 터미널에 모였다가 사라졌다. 버스를 타고 20여 분 홍천 시내를 지나 녹음이 짙은 교외 지역을 40여 분 더 달린 후 내촌면사무소 앞에 도착했다. 동네 어귀에서 마중 나온 이진경 화가를 만났다.

머리가 좀 하얗게 됐을 뿐 명랑한 목소리도, 수수한 모습도 예전 그대로였다. “2002년 포천 작업실에 불이 났어요. 그 땅에 다시 작업실을 지으려니 땅 주인이 허락을 안 해줬어요. 가지고 있던 전 재산으로 새 작업실 지을 땅을 찾아야 했어요. 그때 찾은 곳이 홍천입니다.” 포천 작업실에서의 마지막 모습과 홍천에 새로운 작업실을 짓는 과정은 이 화가의 친구인 독립영화감독 김지현에 의해 ‘앞산전’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온전히 기록됐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강원 홍천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이진경 화가.

이 화가의 작업실로 가는 길은 평화롭고 상쾌했다. 그의 내촌 작업실에 도착해 입구에 들어서니 출입구에서 작업실과 거실로 갈라진다. 거실 천장까지 빼곡히 꽂혀있는 책의 숫자와 책 제목들에서 그가 사회, 문화, 예술, 철학 등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된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역사책뿐 아니라 심리학과 철학책을 많이 읽었어요. 부모님 영향이 컸습니다.” 곳곳에 그의 작품과 전시 포스터, 엽서 등이 붙어 있는 거실은 작은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아직도 커피 좋아하시죠?” 작업실에 도착한 후 부산여행 전리품으로 사온 커피 원두를 내놓았다. 그는 20대 때부터 원두커피를 내려 마시던 커피 마니아다. 포천 작업실 시절 인근 커피숍보다 커피 원두를 더 많이 소비하던 사람이다. 그의 작업실에는 늘 방문자가 많았고, 그는 커피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으로 대접했다. 그가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부터 사용해 길이 든 그라인더를 사용했다.

“근황이 궁금했습니다.” 경기 파주시 헤이리 쌈지농부에서 아트디렉터로 일 할 때 만난 후 10년 만의 재회다. “현재 우란문화재단에서 ‘신물지’라는 전시를 하고 있어요. 한지로 만든 샤머니즘적 물건 ‘지화’나 ‘기메’ 등, 명인과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젊음의 지역인 성수동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공동 전시입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홍천에서의 생활을 물었다. “그림을 많이 그렸고, 공부와 독서를 원 없이 했어요. 지난 몇 년은 제주도 등 전국에서 다양한 전시도 했고요. 그간 기회가 없었는데 이곳 홍천에서 지역주민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참여할 수 있는 ‘사과축제’를 준비하고 있어요.” 최근 그는 홍천에 놀러 오고 싶어 하는 지인들과 작가들의 권유로 쉬고, 먹고,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종가에서 자랐어요. 집에 항상 손님들이 많이 오셔서 솜씨 좋은 어머니가 여러 가지 음식을 많이 만드셨어요.” 그의 ‘밥’ 그림뿐만 아니라 음식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에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나눴던 음식에 대한 대화와 추억이 담겨 있다. 그런 기억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절제된 단순함이 그림에 표현돼 있다.

“이제 요즘 제가 마시고 있는 커피를 내릴게요.” 내가 사온 원두가 그의 입맛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홍천에는 좋은 음식을 하는 곳이 몇 곳 있는데 메밀 막국수와 두부가 좋아요. 막국수와 두부 하는 곳은 많지만 오늘 가는 집들은 제가 오랫동안 다니던 곳입니다.”

내촌에서 그의 차로 10여 분 정도 달리니 서석면이란 곳이 나왔다. 마침 장날이었다. 인근에서 보기 드문 큰 규모의 장이란다. 계절 채소와 과일 가격이 싸다. 그는 뜰에 심는다며 접시꽃, 채송화, 돌배나무, 라일락, 살구 등 다양한 묘목을 샀다. 뜰이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장 구경을 마치고 생곡리에 도착했다. 평일 좀 이른 시간이라 주차된 차량 하나 없이 조용했다. “면발이 정말 맛있는 집입니다. 저는 심심하고 밍밍한 강원도 옛날 육수 맛이 좋은데 요즘 이곳 사장님께서 매운 양념장을 얹기 시작했어요. 저는 양념을 빼고 먹어요. 이 집의 매력은 면입니다.” 감자전을 먼저 주문했다. 여느 집처럼 납작하고 작은 전이 아니라 두툼하고, 튀기듯이 구워 겉이 바삭하다. 막국수가 나올 때까지 푸짐하게 나누며 즐길 수 있는 크기다. 감자전을 먹기 시작하며 막국수를 주문하니 알맞은 시간에 나왔다. 육수를 먼저 마신 후 면을 맛봤다. 달콤함이 살짝 도는 시원한 동치미국물에 면발은 탄탄하고 쫄깃했다. 국수의 식감이 정말 탁월했다. “80% 메밀면을 쓰고 있어요. 장모님 때와 다른 것은 없어요. 차이가 있다면 요즘 손님이 늘어나면서 계속 주문량이 많아져 동치미를 항아리가 아닌 동치미 전용 냉장고에서 떠드리고 있습니다.” 40여 년 동안 간판도 없이 운영했던 장모의 가게를 사위가 힘을 더해 알토란처럼 잘 일궈가고 있었다. 매운 양념장을 올리기 시작한 건 얼마 안 됐다고 한다. “사장님, 시간이 지나도 장모님이 하시던 그대로의 맛을 지켜 주세요.” 20년 단골 이 화가 부탁을 들은 사위 사장의 눈빛이 유난히 빛났다. 밖으로 나오는데 주차장에 차량이 가득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진경 화가의 작품 ‘갈치’.

“막국수를 드셨으니 인근 구경을 좀 해볼까요.” 이 화가는 홍천 곳곳을 차로 다니며 설명해줬다. 그가 사는 동네로 들어서자 간판 글씨를 써준 내촌철물점과 인근 몇 개의 가게들이 보였다. 물걸리(동창마을)에 위치한, 8명의 열사를 기념하는 팔렬중학교에서는 이곳이 동학의 접지이자 마방(말보부상)의 집결지로, 3·1 만세운동의 장소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 척야산문화수목원에서는 광개토대왕비와 발해석등 등을 재현해 놓은 내용을 전문가 못지않은 내공으로 설명해줬다. 양조장도 그의 안내리스트에 있었다. “이곳의 사장님은 메밀로 소주를 만드세요. 매일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미리 전화로 확인해야 해요.” 그의 입맛에도 이곳 소주의 맛이 좋았나 보다.

하지 무렵이라 오후 7시가 넘도록 밝았다. “두부를 잘 만드는 집이 있어요. 아무나 안 데리고 가는 집입니다.” 그럼 누구를 데리고 가는지 궁금해 묻자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그 집 두부를 먹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만 데리고 가요.”

이 화가가 식당에 들어서며 목청 높여 인사를 건넸다. “이 집 두부와 김치는 문화재 수준이에요.” 김옥선 사장을 만났다. “주중에는 하루 한 번, 주말에는 두 번 두부를 만들어요.” 그리고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쉰다. “주말에 손님 치르고 나면 힘들어서 쉬어야 돼요.” 김 사장은 자신의 보물창고인 김치숙성고까지 보여줬다. 김치뿐만 아니라 다양한 저장 반찬들이 보관돼 있었다. 뒤뜰에는 생두와 콩물이 있었다. 완성된 생두부를 맛봤다. 식감이 부드럽다. 철판에 들기름을 두르고 지져낸 두부부침은 생두부의 부드러움과는 달리 바삭한 겉면을 입으로 자를 때의 느낌이 새로웠다.

사장님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니 수줍어한다. “뭘 그리 알라 그라요.” 어려웠던 가정형편으로 열다섯에 민며느리로 시집와 스물하나에 정식 결혼을 했단다. “일만 하다가 일평생 다 끝난 것 같아요. 이제 힘들어서 더 못할 것 같아요.” 사장의 말에 이 화가가 거든다. “그럼 목요일까지 하루 더 쉬시고 더 오랫동안 문 여세요.” 이 화가가 사랑하는 식당임을 인증하는 밥 그림이 벽에 걸려있다. 그림이 ‘이 두부 먹을 자격이 있는 자, 이곳에 앉아라!’라고 외치는 듯했다.

이 화가에게 음식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물었다. “이곳은 특별해요. 그래서 아무한테나 안 알려줘요. 사람들은 대개 좋은 음식을 만든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몰라요. 음식은 당연히 맛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맛있게 만든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음식이 맛있다면 당연히 만든 이에게 감사해야 해요.” 그는 포장마차부터 허름한 식당까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곳에는 늘 글씨와 그림을 통해 관심과 사랑을 표현했다. 명륜동 달동네의 1800개가 넘는 그의 글씨가 그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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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촌 작업실로 돌아왔다. 서석장에서 사온 묘목과 꽃을 심고 물을 주며 정원을 가꾸는 이 화가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고양이 밥을 챙기며 닭과 작업실에서 함께 사는 그의 모습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확인했다. “두부 집 사장님 같은 화가가 되고 싶어요.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이진경, 그와 그의 그림, 그의 글씨는 모두 같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본 홍천의 밤하늘은 유난히 깊었고, 별은 쏟아질 듯 총총했다.

강태안 미식여행가

‘술~술~ 떠나볼까’… 홍천 양조장 투어도 추천

면발이 좋은 생곡막국수(033-436-5061)는 강원 홍천군 서석면 생곡1리 694-2, 삼생초등학교 바로 앞에 있다. 매주 화요일에 쉰다. 두부 집 미산민박식당(033-463-6921) 주소는 강원 인제군 상남면 내린천로 2076이다. 두루양조장 등 홍천을 대표하는 4개 양조장을 방문하고, 지역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홍천 양조장 투어’(010-9062-1760)도 추천한다. 강원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306-1 척야산문화수목원(033-435-6546)에서는 한국 대표 위인들과 애국의사들의 명언과 업적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