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 시대’ 이렇게 극복하자>“육아가 이렇게 힘들 줄은~”…아빠 휴직, 가정·직장에 ‘모두 플러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3일 서울 송파구 성내천 물놀이장에서 한 아이가 아빠와 함께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가족친화적인 사회 환경은 자녀 출생 초기에 아빠가 육아휴직 등을 통해 적어도 한 달 이상 온전히 육아를 경험했을 때 가장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뉴시스

- ⑤ 아빠 ‘육아휴직 의무화’ <끝>

‘돈버는 것 이상 역할해야’ 인식
아내 산후 우울증 뒤늦게 공감
집안일에 적극적 자세로 변해
자녀와의 유대감도 훨씬 커져

직장내 워킹맘들 고충 이해돼
조직사회 배려문화 형성 도움

“육아휴직에 ‘휴(休)’ 자를 넣는 걸 바꿔야 합니다. 복직해서 제일 싫었던 말이 “잘 쉬다 왔어?”라는 말이었습니다. 차라리 일하는 게 나았다고요. 키워본 사람은 아실 겁니다.”

“아이 낳고 부부간에 알콩달콩한 건 없어졌어요. 그런데 육아휴직을 한 다음부터는 와이프와 동지애가 생겼습니다.”

“자녀 성향이나 성격에 대해 더 잘 알게 됐습니다. 사실 예전에 와이프가 얘기하면 사실 공감이 잘 안 됐어요. 아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아이 스타일이 이렇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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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예전엔 육아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는 여선배들을 보면 ‘왜 이렇게 이기적이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육아휴직 후에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니까, 생각을 고쳐먹게 되더라고요.”

남성 육아휴직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의무화한 롯데그룹에서 육아휴직을 경험해본 아빠들의 진심 어린 소감 모음이다. 남성 육아휴직은 많은 남성에게 육아의 노동강도가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며, 배우자는 물론 자녀와의 유대감도 커지는 동시에 조직사회에 배려 문화를 형성해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 육아휴직제도가 충분히 훌륭한 제도라는 사실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지만, 그동안 소수의 자발적 선택에 그쳐 그 효과를 가늠하기 어려웠었다.

최새은 한국교원대 교수는 27일 아산사회복지재단의 학술연구사업으로 ‘기업의 가족친화제도로서의 아버지 육아휴직 의무제’ 연구를 통해 아빠 육아휴직제도의 의무화 적용 효과를 분석했다. 최 교수는 “개인은 물론 가족, 기업과 사회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소수의 대기업을 넘어서 중소기업으로 확산하는 게 필요하며, 이를 위해 국가의 재정지원 등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 교수는 2017년 1월부터 국내에서 최초로 남성의 육아휴직 1개월을 의무화한 롯데그룹의 직원 15명(남성 육아휴직 참여자 9명, 참여자의 배우자 4명, 실무담당자 2명)을 분석했다. 최 교수는 “남성들이 처음 아버지가 될 때 남편과 다른 새로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선 자녀 출생 초기에 적어도 한 달 정도 온전한 시간이 보장됐을 때, 가정 내 부부관계는 물론 자녀와의 관계에 가장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강조했다.

◇여성과 남성의 부모 역할 경계 완화 = 자녀 출생 3개월 이내에 한 달간의 육아휴직을 경험한 남성 참여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한 점은 육아가 대단히 많고, 힘들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부분이다. 아빠의 역할이 노동시장에서 돈을 벌고, 가정에서 분리수거나 청소·요리를 하는 정도의 역할로 충분한 게 아니라, 그 이상의 돌봄 노동이 수반된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된 것이다. 남성 육아휴직 참여자의 아내는 “신혼 때는 각자 생활을 하다가 저녁에 만나서 갈등이 없었어요. 그런데 아이를 낳은 후에 나는 이런 큰 변화를 겪었는데, 왜 남편은 자기의 기존 생활을 유지하고 있지? 정말 부정적 생각들이 많았고,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면서 이혼 생각도 많이 했죠. 그때 남편이 육아휴직하면서 많은 것을 공유하고 나누면서, 갈등을 많이 해결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남성 참여자들은 부모로서 해야 할 역할 자체를 이해하고 ‘현실 육아’를 배우자와 함께 경험함으로써 배우자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돕는 동지애가 생겨났다. 건설 부문에서 근무하는 남성 A 씨는 “저는 산후 우울증에 대해서 공감할 수는 없지만,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를 온종일 보니까 그 심정은 알겠더라고요. 육아휴직 하기 전에는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이젠 집안일을 빨리 끝내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고, 제가 그렇게 하다 보니까 와이프와 ‘서로 먼저 하겠다’는 게 생겼어요. 육아휴직 전에는 많이 싸웠었는데 그 후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육아휴직이 만들어 준 아빠 자리 = 남성 육아휴직자들은 어린 자녀와의 관계에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애착을 형성했다. 이러한 애착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자녀와의 관계에서 밑거름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둘째 자녀부터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었던 남성 B 씨는 “키워보니까 확실히 둘째한테 정이 가는 것 같아요. 제가 먹이고 같이 자고 했기 때문에 애착이 더 가는 것 같아요. 첫째 때는 제가 육아를 안 해서 첫째와의 추억이 없었거든요”라고 아쉬워했다.

아이와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은 아니더라도, 아이의 고유성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얻고 있었다. 금융 부문에서 근무 중인 남성 C 씨는 “애들을 관찰하고 우리 아이가 어떠한 아이구나! 어떻게 사는구나. 그런 것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간이 육아휴직 그 한 달이었던 것 같아요. 애 낳기 전에는 이쁘게, 공부 잘하게 키우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애를 낳고서 막상 육아이론을 내 아이에게 적용하려고 하면 망설여졌거든요”라고 말했다.

◇워킹대디 시대 조직의 변화 = 남성이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하면서 기존의 워킹맘들이 일과 가정 사이에서의 균형 때문에 힘들었던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일터에서 워킹맘들에 대한 시선, 여성의 육아휴직에 대한 태도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건설 부문에서 근무하는 남성 D 씨는 “계속 자녀하고 통화하는 직원이 있거든요? 그거 들으면서 ‘왜 이렇게 애랑 통화를 업무 중에 하지?’라고 생각했었어요. 근데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와이프가 애 보면서 ‘애랑 무슨 일이 있었어. 애가 열이 나서 병원에 가는 길이야’ 등 애 때문에 생기는 통화가 많아지는 거예요. 심지어 저조차도 바뀌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이는 기업 내의 가족친화적 문화를 형성한다. 자녀 돌봄의 책임을 수행하면서 다른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고려하는 게 일반적이 되는 것이다. 건설 부문에서 근무하는 남성 E 씨는 “육아휴직이라는 것도 그룹 차원에서 가정이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아기가 아파요.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야 해요. 와이프가 오늘 일찍 출근해서 제가 늦게 출근해야 해요’라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어렵지 않은 분위기가 됐다”고 전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