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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철환의 음악동네 게재 일자 : 2019년 06월 27일(木)
‘음악의 잔’도 ‘팬의 둥지’도 여전히 가득… 영원한 가수이자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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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의 ‘둥지’와 ‘빈 잔’

시청률, 화제성 다 잡을 기획안이 하나 있다. 예능국 캐비닛 안에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꺼내지 않았을 뿐이다. 남진(사진), 나훈아, 조용필, 이른바 ‘빅3’ 쇼다. TV가 이 세 분을 한자리에 부를 수 있을까. 데뷔 순으로 먼저 두 분만 모셔도 반응은 폭발적일 것이다. 하지만 카드의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시청자들은 남진, 나훈아 빅매치를 살아생전 못 볼 가능성이 크다. 곤고한 시기에 눈 딱 감고 함께 나와 주시면 참으로 ‘시의적절’하련만.

빅3 콘서트는 오페라가 선두다. 1990년 7월 7일 로마월드컵 결승전 전야제 날, 로마오페라극장에는 주빈 메타 지휘 아래 호세 카레라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가 한무대에 올랐다. 그들이 부른 ‘오 솔레 미오’처럼 무대는 반짝였고 객석은 황홀했다. ‘폭풍우 지나가니/하늘은 맑고/상쾌한 바람에/축제처럼 햇살 비쳐오네/저 태양보다/더 아름다운 그대 눈동자’. 2001년 6월 22일 밤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도 스리테너가 5만여 명의 눈과 귀를 호강시켰다. 콘서트 앨범은 가장 많이 팔린 클래식 음반으로 기네스북에 올랐지만 비평가들은 심드렁했다. 상업적 성공과 예술적 성취는 로마와 서울의 거리만큼이나 아득했다. 혹시 그들에게 라이벌 의식은 없었을까. 맏형(1935년생)격인 파바로티는 점잖게 대응했다. “내 경쟁 상대는 오직 나 자신이다.” 자신도 지키고 우정도 유지했다. 마치 ‘난 이렇게 노래할게. 넌 그렇게 노래하렴’ 고상한 약속이라도 한 걸까.

시간이 흐르면 이따금 사건도 사연이 된다. 55년 차 가수 남진이 최근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나훈아 피습사건에 대해 밝혔다. ‘현실일까 꿈일까/사실일까 아닐까’(남진 ‘둥지’ 중). 1970년대 사회면에 등장한 이 사건은 둘의 인기만큼이나 라이벌 구도가 심각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당시엔 남진이 배후라는 풍문도 돌았다. 곡절은 많았으나 둘은 살아남았고 여전히 노래하고 있으니 시대의 행운아, 풍운아가 아닐 수 없다. ‘운명아 비켜라 이 몸께서 행차하신다/때로는 깃털처럼 휘날리며/때로는 먼지처럼 밟히며’(남진 ‘나야 나’ 중).

약간은 무례한 상상을 해본다. 남진, 나훈아가 복면가왕에 나오면 누가 먼저 가면을 벗을까. 그들은 3단 고음을 내지도, 무리하게 악을 쓰지도 않는다. 누가 더 가창력이 좋은지 따지는 자체가 무리수다. 만담처럼 얘기하자면 유도의 기술에 메치기, 굳히기, 조르기, 꺾기, 누르기가 있는데 꺾기(기교) 부문에선 나훈아를 따를 자 없고 부드럽게 누르기(애교)로는 남진이 최고수다. 호소력과 무대장악력은 둘 다 역대 최고다.

최종병기는 역시 버티기다. 이들은 가요계의 세찬 물살을 50년 이상 버텨왔다. 20세기 유물로 남은 감이 있지만 MBC 10대 가수 가요제(초기엔 청백전)에서 최초의 가수왕(1966년)은 최희준이었다. 30년 가까이 치렀던 이 왕좌의 게임에서 3회 이상 가수왕 칭호를 받은 이는 조용필(6회), 남진(3회), 이미자(3회) 딱 3명이다. 희한하게 나훈아는 한 차례도 가수왕을 차지한 적이 없다. 대관식에 참석한 기미조차 거의 없다. 다만 이런저런 이유로 노래를 부르지 않을(못할) 때도 꾸준히 노래를 만들었고 히트곡의 숫자도 방대하다. 지금 한국에서 그의 콘서트 티켓파워는 가히 방탄소년단(BTS)급이다. 실력이 기회를 절제할수록 팬덤은 공고해진다.

음악동네에선 빅데이터보다 롱데이터를 더 쳐준다. 60∼70대에도 신곡을 발표할 수 있는 음악인이 몇이나 되는가. 이들은 청춘을 음악과 함께 보냈을 뿐 아니라 일생을 팬과 함께 지냈다. ‘어차피 인생은/빈 술잔 들고 취하는 것/그대여 나머지 설움은/나의 빈 잔에 채워 주’(남진 ‘빈 잔’ 중). 설움을 도닥이고 빈자리도 채워주니 외로운 소녀들에게 오빠는 영원할 수밖에 없다. ‘너 빈자리 채워 주고 싶어/내 인생을 전부 주고 싶어/이제는 너를 내 곁에다 앉히고/언제까지나 사랑할까봐’(남진 ‘둥지’ 중).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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