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영변 폐기가 CVID라니…北 속임수에 넘어가자는 건가

대한민국 절체절명의 안보 과제를 더 멀어지게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위험한 인식이 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문 대통령은 26일 국내외 7개 통신사 서면 인터뷰에서 “플루토늄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核)시설 전부가 검증하에 전면적으로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핵 개발을 시작한 장소로 여전히 가동 중이긴 해도 이젠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영변 핵시설 폐기만으로, 국제사회가 요구해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CVID)’인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취지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유나마 문 대통령이 과연 기억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게 한다. 당시 김정은의 영변 외 핵시설 폐기 거부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협상장에서 나와 버렸다. 최근에는 “김정은은 (핵시설) 1∼2곳을 없애겠다고 했지만, 5곳이 있다. 나는 제대로 된 합의를 하자고 말했었다”고도 공개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영변을 “북한 핵시설의 근간”이라고 주장한 것은 북한 대변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비핵화에 실질적 진전이 있으면 국제사회도 제재의 부분적 또는 단계적 완화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 배경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노이 회담에서 김정은이 영변 폐기 대가로 대북 제재 전면 해제를 요구한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문 대통령은 거듭 “나는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믿는다”고 했지만, 근거 없는 신뢰는 독(毒)이 될 뿐이다. 미국 국방정보국(DIA) 국장은 지난 24일에도 “김 위원장이 비핵화 준비가 돼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영변 폐기는 CVID’ 메시지는 북한 속임수에 속아 넘어가자는 것으로까지 들리게 마련이다. 오사카 G20 회의에 이어 한·미 정상회담도 앞둔 문 대통령은 그 어느 때보다 북핵 실상을 냉철하게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