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역사적 ‘쇼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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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30일 판문점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획, 연출, 주연을 모두 맡은 한편의 ‘빅 외교 쇼’가 벌어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전격적으로 회동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조연 역할을 맡았다. 설마설마했던 일이 실제 벌어지자 국내 언론은 물론 전 세계의 관심이 모두 판문점으로 쏠렸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일본 오사카 G20 회의에서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협상 타결 문제가 초미의 관심이었는데, 순식간에 관심을 판문점으로 돌린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처음 트위터에 올린 것이 29일 오전 7시 51분으로, 미국 시간으로 저녁 6시 51분 TV 시청 프라임 타임이다. 전날 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1차 TV토론회가 1810만 명이 시청하는 가운데 흥행에 성공하자 방송 감각이 탁월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판문점 회동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일본에 있지만, 신경은 온통 재선 운동에 쏠려 있음을 잘 보여준다.

얼마 전 이란이 미국 무인정찰기를 격추시키자 보복 공격을 감행하기 10분 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과 친한 폭스뉴스 TV 앵커가 “재선이 날아간다”고 조언하자 즉각 중단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송과 함께 정치적 성장을 해 왔을 정도로 누구보다 이 분야의 감각이 탁월하다. 영화 ‘나 홀로 집에’에 카메오로 출연해 자신과 소유 호텔을 선전하고, 이후 미스 유니버스 조직위, 미국 프로레슬링 등 대중이 열광하는 사업에 투자했다. 결정적으로 미 NBC 방송에서 10년간 리얼리티쇼 ‘견습생(Apprentices)’을 진행하면서 ‘넌 해고야(You’re fired!)’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정운영이나 외교도 한편의 리얼리티 쇼처럼 생각한다. 참모들을 수시로 해고하고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도 화려한 수사(修辭)와 이벤트로 포장하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다. 싱가포르 1차 회담 때도 장소 선정을 놓고 5곳-2곳-판문점-싱가포르 등으로 극적 효과를 노렸다. 이번 방문 때도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와의 차별성을 적극 부각시켰다. 재선 운동으로는 이만한 빅 이벤트가 없다. 판문점 회동으로 미·북 회담의 불씨는 살렸지만, 북핵 폐기에 대해 북측이 전향적 입장으로 변화하려는 조짐은 여전히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떠났지만,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