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33人 실명으로 발가벗긴 촌철살인 ‘인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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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받들어야 할 자연은 국민”… 시인, 정치인을 꼬집다

“안개강 하나 건너와 옷깃 터는가／자연은 돌고 돌아 제자리에 오는 것／그대가 받들어야 할 자연은 국민이다.”(‘문재인’ 전문)

“가마꾼 없는 가마는 전시품이다／가마 탔다고 으스대지 말고／차라리 혼자 걸어라.”(‘황교안’ 전문)

내년 총선과 이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온갖 난맥상을 보이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포착한 ‘인물시’(人物詩)가 나왔다. 주로 고대부터 근세까지 우리 역사 속 주요 인물들을 시로 조명해 온 이오장(67) 시인이 월간 ‘시’ 7월호에 발표한 현역 정치인 33인의 ‘인물시’가 그것. 시들은 여야, 정파를 가리지 않고 ‘촌철살인’의 인상과 쓴소리로 일관한다. 정치인들의 모습이 발가벗겨지듯 짧은 시들에 그려졌다.

우선 전·현직 대통령을 다룬 시가 눈에 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퇴임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선 섬겨야 할 대상은 국민임을 강조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공주가 갖는 것／공주의 모든 것은 부마가 갖는 것／부마 없는 공주는 국민이 부마.”(‘박근혜’ 전문)

앞서 소개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시도 “그대가 받들어야 할 자연은 국민”임을 강조한다.

대권 도전설이 끊이지 않지만 본인은 부정하는 유시민 작가와, 요새 법무부 장관 내정설이 나오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에 관한 시도 궁금하다.

“굴뚝 없는 연기 그만 피워라／생장작 떨어지면 숯이 남는 것／아무리 피워도 연기는 안개가 되지 않는다.”(‘유시민’ 전문)

“꽃은 떨어져야 열매 맺는다／지기 전에 거두려면 진흙밭으로 가라／가서 발목 적시고 연꽃이 되라.”(‘조국’ 전문)

이른바 ‘차기’ 혹은 ‘실세’로 꼽히는 정치인을 향한 경고도 잊지 않는다. 차기 대선 주자로 꼽히는 이낙연 국무총리를 향해선 “부릅뜬 눈에 큰 귀 열고／펜으로 그려낸 스피커 시절로 돌아가라”고, 차기 총선에서 ‘정치 1번지’ 종로 입성을 노리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향해선 “정의의 투사가 상대를 잃으면／욕심이 넘치는 것”,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에 대해선 “회초리 한 번 맞아보지 않고／매를 들겠는가”라고 일갈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선 “손 내질러 이룬 명성 말로 잃지 말고／눈물 흘려 진실을 보여야지”, 잦은 당적 이동으로 ‘철새 정치인’이라고 비판을 받는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를 향해선 “꽃구름 탔더니 먹구름／나룻배 탔더니 조각배”,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 대해선 “손에 들 바늘 입에 물고／찢긴 군중의 가슴 바느질하는 여전사”라고 꼬집는다.

이 시인이 정치인 인물시를 쓰게 된 계기는 문 대통령의 복심인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정치권 복귀였다. 이 시인은 “정치권이 점점 시끄러워지는 판국에 대통령의 복심이란 사람이 다시 정치권으로 복귀하는 모습이 적절한 태도로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둥이 무대 위에 오르면／무대가 무너져 관중이 놀라지／나서지 말고 기둥으로 지켜라.”(‘양정철’ 전문)

이 시인은 “각각의 시가 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지만, 해당 정치인뿐만 아니라 정치권 전체에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며 “부디 정치인들이 자신이 정치권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시인은 앞으로 현역 정치인 약 300명을 인물시로 만들어 시집으로 펴내겠다는 구상이다. 월간 ‘시’의 민윤기 편집인은 “이 시인은 최근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정치의 꼴’이라는 형태의 ‘정치 시’ 실험을 하고 있는데, 이미 100여 명의 현역 정치인을 대상으로 작품을 완성했다”며 “시대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이 문학이라면 시와 정치의 만남은 유의미한 작업이라고 판단해 우선 정치인 33명의 시를 소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