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기자의 엔터 톡>기세 좋은 ‘기생충’의 사회학

이제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마음껏 외치려 합니다.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을 두고 하는 말이죠. 개봉한 지 한 달이 넘고 10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모았으니, 이제 영화의 줄거리를 늘어놓아도 스포일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생충’은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과 건강한 토론의 장을 형성했습니다. 각 장면과 소품에 대한 그럴듯한 풀이가 등장했고, 그중 ‘대저택 vs 반지하 vs 지하’의 구도에서 오는 빈부 격차에 대한 설왕설래가 특히 심도 있게 진행됐죠.

저는 ‘기생충’이 ‘기세(氣勢)’에 관한 영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단어는 장남 기우(최우식)가 과외를 받는 부잣집 학생인 다혜(정지소)의 손목을 잡으며 “실전은 기세야 기세”라는 말하는 장면에서 처음 등장하죠. 극 초반 기우의 친구가 골목에 소변을 보려는 취객에게 “정신 차려, 정신!”이라고 외치며 움찔하게 만드는 장면도 의미심장합니다. 이후 등장 인물의 모든 관계에서는 기선을 제압하는 과정이 세밀하게 묘사됩니다.

기우의 동생 기정(박소담)은 참관수업을 원하는 연교(조여정)의 부탁을 단박에 끊으며 우위를 점하죠. 기정은 박 사장(이선균)의 차 안에 속옷을 벗어놓는 대담한 행동을 통해 자신의 가족을 모두 박 사장 집으로 불러들입니다. 당연히 이 판의 주도권은 설계자인 기정이 쥘 수밖에 없죠.

기택 가족과 박 사장네 집 지하에 숨어 살던 근세(박명훈) 가족의 기싸움 역시 관전 포인트입니다. 처음에는 “계속 지하에 살게 해달라”며 부탁하는 근세의 목줄을 쥔 기택이 우위였지만, 그들이 박 사장을 속였다는 사실을 들킨 후에는 근세가 다시 기세를 올리죠. 결국 서열 정리에 실패한 두 가족은 서로를 죽이는 비극으로 치닫고 맙니다.

두 가족이 박 사장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죠. 근세는 “리스펙트”를 외치며 철저히 박 사장 무릎 아래 굴종합니다. 반면 기택네 가족을 살펴보면, 기우가 다혜와의 결혼을 꿈꾸는 등 관계 전복을 꿈꾸죠. 숙주에 붙어사는 기생충이 직접 숙주가 되겠다는 거창한 꿈입니다.

이 영화는 결국 기생충과 기생충의 다툼으로 파국을 맞게 되죠. 그래서 ‘기’택, 근‘세’라는 두 가장의 이름을 통해 이 영화가 ‘기세’에 대해 얘기하려는 것은 아닌지 추측해 봅니다.

한 달 넘게 ‘기생충’을 향한 극찬이 쏟아졌습니다. 반면 이런 평을 듣고 영화를 관람한 적잖은 이들이 “불편하다” “기분이 나쁘다”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죠. 그들의 의견 역시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영화를 직접 본 모든 관객에게는 이를 마음껏 평할 자유도 있으니까요. ‘기생충’이 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는 왕관의 기세에 눌릴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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