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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Fifty+ 게재 일자 : 2019년 07월 05일(金)
주부서 배우로 ‘황혼의 반전’… “지금이 삶의 하이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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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 모델 겸 배우 활동을 통해 젊은 시절 도전하지 못했던 꿈을 이뤘다는 김영희 씨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다양한 연기를 선보이며 눈물짓는 등 전문 배우 못지않은 기량을 발휘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연기로 인생 2막’ 시니어 액터 김영희씨

10여년전 배우 모집 공고에
얼떨결에 오디션 봤다가 합격
악극 ‘아씨’에 카메오로 출연
통곡하는 모습에 감독도 칭찬

새벽부터 촬영하는 고된 일정
의사도 건강이 걱정 된다지만
좋아하는 일 포기할 수 있나

‘끼’ 있으면 누구든 도전 가능
무대서 새 세상 만날 수 있어
실버세대에 적극 추천하고파


“여배우 나이는 묻지 마세요.” 서울 마포구 우리마포시니어클럽에서 만난 시니어 배우 김영희 씨는 그야말로 ‘소녀’ 같았다. “간밤에도 새벽까지 드라마 촬영하고 왔다”면서 밝게 웃다가 나이를 묻자 “10년 전 까지만 해도 나이를 줄이지 않았는데… 1945년생 정도로만 알아주세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넉넉히 70대 중반은 된 듯하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이나 에너지만큼은 여느 젊은 기성 배우 못지않았다.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니 젊게 살게 되더라”는 김 씨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어떤 계기로 뒤늦게 연기를 시작했나.

“2006년쯤이었어요. 서울 강남 보건소에서 운동을 하다가 인천에서 배우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죠. 막상 신청을 하고도 서울에 살고 있어서 ‘내가 거기까지 어떻게 가?’ 싶었는데 결국 오디션을 보러 다녀온 후 합격 연락을 받았어요. 그냥 노인들끼리 취미로 하며 노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일자리 사업이어서 여러 요양원이나 각 구청을 돌면서 연기를 하며 월급도 받았죠. 그리고 양재를 거쳐서 지금은 마포시니어클럽에서 일하고 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서편제’로 유명한 오정해 씨가 나오는 악극 ‘아씨’에 카메오로 참여했었어요. 제가 6·25전쟁을 겪은 세대여서 우는 것을 기가 막히게 잘해요. 극 중 할머니가 죽어서 상여 나가는 장면이었는데 목놓아 울었죠. 관객이 가득 찬 대극장 무대였는데 제 우는 연기를 보고 감독님이 칭찬하며 더 자주 찾아주셨어요.”

―삶의 경험이 연기에 도움을 주나.

“그럼요. 전쟁 나고 피란 가는 장면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바구니 이는 모습도 어색해요. 저는요, 머리 위에 짐을 올리고 손을 놓고도 걸어가요. 제가 6·25전쟁 때 실제로 그렇게 했으니까요. 일부러 제가 사는 아파트 주변에서 풀을 뽑아서 페트병에 담아갔다가 무대에 오를 때 제 바구니와 머리 위에도 뿌려요. 그게 진짜 피란민의 모습이죠.”

―그동안 출연한 작품을 말해 달라.

“최근까지도 드라마 tvN ‘막돼먹은 영애씨’, MBC ‘역적’ 등에 출연했어요. ‘역적’은 사흘간 찍으며 1인2역을 맡았는데, 그중 한 역할은 전쟁 나갔다가 살아 돌아온 아들을 마주한 엄마였어요. 단역이니 대사도 없었죠. 원래 대본대로 안 하면 난리가 나는데 저는 기뻐서 ‘내 아들 살았네, 살았어! 동네 사람들 내 아들 살았어요’라고 애드리브를 했어요. 그걸 실제 방송 때 집어넣었어요. 그리고 얼마 전까지 OCN 드라마 ‘구해줘2’에 참여했어요.”

―왜 좀 더 젊었을 때 연기에 도전해보지 않았나.

“안 그래도 감독님이 그렇게 물어봐요. 제가 어릴 적 옆집에 연극배우가 살았어요. 하지만 그 당시 부모님은 ‘연극배우는 배가 고프다’고 못하게 하셨죠. 그래서 저는 관광 가이드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옷을 잘 차려입고 고궁을 소개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거든요. 하지만 6·25전쟁을 겪으며 헐벗고 보리밥 한 끼도 못 챙겨 먹을 때였기 때문에 제 꿈을 좇을 여력이 없었죠. 그것 역시 제 팔자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동안 고생하며 살았으니 ‘늘그막에 화려하게 빛나라’는 뜻으로 지금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저는 지금이 제 생애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 생각해요.”

―젊었을 때는 어떤 일을 했나.

“저는 평범한 가정주부였어요. 고성 바닷가에 살았는데 민박을 치기도 했죠. 그 앞은 다 바다여서 점점 사람이 그리웠어요. 저는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북적북적한 서울 가서 사는 게 꿈이었어요. 그래서 서울에도 집을 하나 뒀죠. 서울 올라와서 처음에는 강남 살다가 잠실로 온 지 10년 정도 됐어요.”

―보조 출연자로 드라마에 참여한다는 게 힘겹지 않나.

“어제도 오전 5시 20분 첫차를 타고 충남 홍성에 갔어요. 원래 낮 12시에 촬영이 끝나는데 동료 할머니 한 명이 사정이 있으니 배역을 바꿔달라고 해서 그분을 돕다 보니 밤 12시가 넘어 끝났어요. 시외버스는 이미 끊겼고, 보조 출연자 30∼40명을 태워서 서울 올라오는 차가 있어서 얻어 타고 여의도까지 온 다음에 다시 귀가했죠. 드라마 촬영이 이렇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체력적인 문제는 없나.

“의사가 ‘녹내장, 백내장 걱정되니 하지 말라’고 해요. 평소에는 눈을 보호하려고 안경을 끼는데, 촬영할 때는 햇볕이나 조명 아래서 안경을 벗고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도 저는 (연기를) 해요.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제가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산다고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죠.”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

“(웃으며)각자 자기 일로 바쁘지, 저까지 신경 쓸 겨를이 있나요. 그래도 내심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가 ‘시크릿 엔젤’이라는 중국 TV드라마도 일주일 정도 찍었는데, 어쩌다 가족들이 그걸 봤나 봐요. 은근히 좋아하고 자랑스러워 하던 걸요.”

―출연료는 어느 정도 받나.

“돈 벌기 위해서 하라고 하면 못해요. 내가 좋아하고, 목적이 좋아서 하는 것이지요. 저는 유명한 드라마에도 출연하기 때문에 다른 동료들보다 조금은 (수입이) 괜찮은 편이에요. 그래서 (시니어클럽) 동료들이 저만 보면 기가 죽어요(웃음). 그래도 시니어클럽에서 소개한 일을 하면 후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공적인 목적이라 생각하고 더 열심히 하게 돼요.”

―시니어 배우에 도전하고 싶은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끼가 있어야 해요. 저와 연년생인 언니가 있는데 한번 해보더니 질색을 하며 ‘못하겠다’고 했죠. 이 일에 대한 동경이 있어야 도전할 수 있어요. 그럴 준비가 됐다면 각 기관의 선발 시기를 체크하면 돼요. 하지만 너무 큰 기대를 가지면 안 돼요. 처음에 뽑히면 금방 뭐라도 될 것 같아서 아주 기대에 차죠. 하지만 기관은 기회를 줄 뿐,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각자가 노력해야 해요. 저는 에이전시를 통해 기회를 얻게 되면 이후에도 문자메시지로 수시로 안부 인사를 전하며 끊임없이 저를 어필하려고 노력해요. 제가 지속적으로 활동할 기회를 갖게 되는 노하우죠.”

―실버 세대 사람들에게 연기에 도전해보라고 추천하고 싶나.

“대부분 엄두를 못 낸다고 하는데, 용기를 내서 젊을 때 못했던 일들을 황혼기에 꼭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연기하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도 기쁨을 주지만 이를 보는 이들에게는 더 큰 기쁨을 준다는 측면에서 봉사활동도 되죠. 봉사를 하면 굉장히 행복해요. 기쁨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크다는 것도 알게 되고요. 그리고 많지는 않아도 용돈이 생기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게 돼요. 손주들이 놀러 왔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뜻깊게 번 돈으로 용돈을 챙겨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복이에요.”

―시니어 배우를 양성하기 위해 기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더 많은 홍보를 통해 움츠리고 있는 인재들이 무대 위로 올라올 용기를 갖도록 격려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신청서 제출 방법 등도 좀 더 쉽게 다듬을 필요가 있어요. 프로필을 작성하고 제출하는 과정이 힘겨워서 중간에 포기하는 분들도 있거든요. 실버 세대가 자립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지원과 배려가 필요해요.”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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