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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9년 07월 09일(火)
실제 삶 만큼 근사했던 문장… 그녀, 펜으로 파리를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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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콜레트’에서 프랑스 현대 작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를 연기한 배우 키라 나이틀리. 순수한 시골소녀 같은 모습이다.

■ 윤성은의 스크린 인물학 - ⑬ 영화 ‘콜레트’ 속 주인공…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현대 佛 문학사서 독보적 작가
클로딘·셰리·여명 등 대표작품
세번 결혼·팬터마임 배우 활약
30살 연하 의붓아들과 연애도

女작가 책 안팔린다는 이유로
작가였던 남편 명의로 책 발간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 그려낸
‘클로딘 시리즈’ 파리여성 열광

작품세계 지대한 영향 미친 母
영화속에선 비중 적게 다뤄져
1954년 국장으로 치러진 장례
“내 삶은 근사했다” 남기고 떠나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1873∼1954)는 현대 프랑스 문학사에서 매우 뛰어난 작가 중 한 사람이자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다. 초창기에 쓴 ‘클로딘’ 시리즈(1900∼1903)부터 ‘셰리’(1920)를 거쳐 ‘여명’(1928)과 ‘시도’(1930)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작품들에서는 자전적인 요소를 많이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녀 자신이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콜레트는 유명 출판업자이자 작가인 앙리 고티에 빌라르(필명 ‘윌리’, 이하 ‘윌리’)와 결혼한 후 파리로 이주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팬터마임 배우로도 활약했으며, 세 번째 결혼 전에는 거의 서른 살 연하의 의붓아들과 연인 관계로 지내기도 했다.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히 화려한 인생이었다. 이러한 맥락과 더불어 그녀의 소설에 녹아든 성에 대한 자유롭고 대담한 표현과 주체적 여성상은 그녀를 당대의 페미니스트로 규정짓게 한다. 그러나 텍스트 자체에서는 정치적인 의미의 페미니즘보다는 모든 규범을 벗어던진 자유로운 캐릭터들에서 오는 해방감, 대리 만족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프랑스 애니메이션의 대가, 미셸 오슬로는 최근작, ‘파리의 딜릴리’(2018)에서 벨 에포크 시대의 수많은 명사를 소환한다. 그 중 남다른 재능으로 대중들에게 사랑받았던 여성들도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데, 콜레트도 그런 인물 중 하나다. 공연을 준비하던 콜레트는 소녀 딜릴리에게 자신이 남편의 이름으로 책을 내야 했던 일을 이야기해준다. 분량은 매우 짧지만 연쇄 소녀 유괴 사건을 중심으로 성차별에 대해 고발하는 이 애니메이션의 맥락상 의미가 큰 장면이다. 콜레트는 자신의 학창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학교에서의 클로딘’을 썼으나, 여성 작가의 책은 팔리지 않는 데다 남편의 명성을 이용해야 한다는 명목하에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발표하지 못했고, 그 관행은 ‘민느’ 시리즈(1904∼1905)까지 이어진다. 벨 에포크는 이처럼 겉으로는 전에 없던 풍요와 평화가 찾아온 것 같지만, 여전히 노골적인 차별과 은근한 폭력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던 시기다.

영화, ‘콜레트’(감독 워시 웨스트모얼랜드)는 콜레트(키라 나이틀리)의 일생 중 바로 이 시기를 집중적으로 다룬 작품으로 첫 남편 윌리(도미니크 웨스트)와의 지난한 관계와 클로딘 시리즈의 성공이 서사의 근간을 이룬다. 부르고뉴 지방의 생소뵈르앙퓌제에 살던 스무 살의 콜레트는 열네 살 연상의 윌리와 결혼해 파리로 온다. 남들에게는 파리가 (윌리가 콜레트에게 선물한) 에펠탑이 들어 있는 스노볼처럼 환상적인 공간일지 몰라도 콜레트가 처음 지각하는 파리는 따분한 도시일 뿐이다.

파리에 대한 콜레트의 첫인상은 ‘파리의 클로딘’ 초반부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열일곱 살의 클로딘이 아빠를 따라오게 된 파리의 자코브 거리는 우울하고 초라하며, 가래침이 가득한 더러운 곳이다. 클로딘은 파리에 오자마자 뇌수막염을 앓으며 숲과 들판이 있는 고향을 그리워한다. 자연에 대한 예찬, 동물과의 교감은 콜레트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테마다. 오죽하면 ‘여명’의 화자는 (인간들 대신) “동물들 사이에서 이름을 날리고 싶다. 그들의 털 위로, 그들의 영혼 깊숙이 내가 지나간 흔적을 간직한 채, 한순간만이라도 내가 자신들과 같은 종족이기를 열렬히 바랄 수 있는 그런 동물들 사이에서”(문학동네, 58p)라고 말하겠는가.

▲  윌리에게 실망한 콜레트를 위로하는 콜레트의 어머니.

따라서 자연과 동떨어진 환경은 콜레트에게 남다른 스트레스였음이 틀림없다. 영화에서도 초반부 파리는 낭만적으로 그려지기보다 어둡고 탐욕스러우며 오만한 분위기로 묘사된다. 콜레트의 고향을 보여주는 첫 장면이 새소리와 함께 눈부신 햇살이 드는 침실, 고양이의 나른한 그루밍으로 시작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콜레트는 그렇게 가족도 친구도 없는 곳에서 남편만을 의지하며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윌리는 영리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콜레트가 좋아할 만큼 언변술이 뛰어난 남자였고 그 또한 콜레트에게 빠져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바람둥이 기질과 낭비벽을 버리지 못해 계속 아내의 속을 썩인다.

금전적 문제가 악화하자 윌리의 권유로 글을 쓰기 시작한 콜레트는 각고의 작업 끝에 ‘학교에서의 클로딘’을 완성한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교사와 학생, 친구들 사이에 엉켜 있는 권력관계와 그들 사이에 흐르는 야릇한 감정은 여성 독자들의 큰 공감을 얻었고, 클로딘은 금세 모든 여학생의 롤 모델처럼 여겨졌다.

프랑스를 매료시킨 클로딘은 사실 콜레트의 유전자로부터 시작한다. 클로딘은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각종 동물의 생물학적 욕구와 그 해소방식을 자연스레 접하며 자랐고, 모든 종류의 연애와 사랑을 책으로 배운 소녀다. 스스로는 세상 물정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영락없이 순진한 시골 소녀이면서 모든 금기를 넘어 거침없이 행동하기도 한다. 기존의 도덕관념을 무시한 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녀의 캐릭터는 독자들에게 해방감을 주고 종종 웃음보를 터뜨리게도 한다. 가령, ‘파리에서의 클로딘’에서 돈 많고 나이 많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 클로딘은 돈 때문에 결혼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한 가지 방도를 생각해내는데, 그것은 그 남자의 아내가 아닌 정부가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는 당신의 정부가 되겠어요!’라고 외치는 모습이라니, 철은 없지만 미워할 수도 없다.


윌리의 이름으로 출간된 클로딘 시리즈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동안 윌리와 콜레트의 관계는 부침을 거듭한다. 이 과정에서 마치 소설을 정말 자신이 쓴 것처럼 방자하게 구는 윌리에게 콜레트는 지나치게 관대해 보인다. 혼외 관계를 갖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라 해도, 콜레트가 오랫동안 소설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은 것을 단지 그녀가 명예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넘기는 것은 불합리해 보인다. 어쨌든 영화는 그것이 콜레트의 자발적인 선택이었음을 강조하면서 두 사람이 완전히 이혼하는 1910년까지, 이별과 재결합을 거듭했던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커플처럼 솔메이트(soulmate) 같은 관계를 유지했음을 보여준다.

부부라는 이유로 서로 간의 착취와 피착취가 정당화되는 상황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더 와이프’(메그 윌리처)라는 장편소설의 설정과 판박이다. 남편은 평생 글을 대신 써준 아내 덕분에 헬싱키 문학상까지 받게 되고, 겉으로는 공을 아내에게 돌리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를 떠나려는 아내와의 말다툼 속에서 그는 소설이 부부의 공동 작업이었음을 주장한다. 윌리 역시 후반부에서 콜레트가 쓴 원고에 수정을 도왔다는 이유로 자신의 공로를 내세운다. 중요한 사실은 오랫동안 아내에게 기생해왔던 윌리는 갈수록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유아기적 단계로 퇴화하고 있는 반면, 콜레트는 성장을 거듭해 마침내 홀로 서게 된다는 것이다.


▲  윌리와 별거하면서 콜레트는 생계를 위해 팬터마임 무대에 서기도 했다.

콜레트의 문학이 오랫동안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 클로딘이라는 유명한 주인공 때문은 아니다. 다른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당시 그녀의 문체는 독특하고 새로웠다. 콜레트는 개성 있는 시각으로 사물을 통찰하고 그것을 유려한 감각적 수사로 풀어낸 작가다. “몽티니에서는 지금쯤 멀리 가시나무 생울타리에나 잔가지에 대롱거리는 보드라운 작은 잎사귀들이 녹색 안개처럼 펼쳐질 텐데”(‘파리의 클로딘’, 민음사, 117p), “콧구멍의 곡선이 움직이는 모습이 재미있었고, 검고 짙은 눈썹 아래로 진한 회청색 눈이 반짝이기도 했다”(앞의 책, 107p) 등에서 볼 수 있는 풍경과 인물묘사는 아름답고 세밀하며 재치가 넘친다.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콜레트는 인물이나 풍경, 감정을 독자들이 지각할 수 있을 만큼 생생한 언어, 생명력을 가진 언어로 재현해내고자 했다. 이것은 영화에서는 부각하지 못했던 콜레트 문학의 한 특징이다.

‘콜레트’에서 또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시기적으로 윌리와 함께 한 날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콜레트의 후기작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어머니, ‘시도’와의 관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윌리에게 상처받은 콜레트를 위로하거나 조언을 해주는 속 깊은 어머니 정도로 시도의 역할 및 분량을 축소했다. 그러나 콜레트가 ‘클로딘의 집’ 서문에서 ‘점차적으로 나머지 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인물인 어머니는 나를 떠난 적이 없다’고 직접 밝혔듯 어머니에 대한 고찰과 그리움은 그녀의 작품 세계에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것은 여성으로서, 모녀로서 시도의 삶과 콜레트의 삶, 혹은 그녀가 창조해내는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이 다양한 방식으로 겹쳐지는 데서 입증된다. ‘여명’에서는 아들에 대해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갖고 있었던 어머니, 그리고 연하남과 서로 애틋한 감정을 갖게 된 주인공 콜레트가 대응을 이룬다. 현실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던 콜레트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두고두고 어머니를 애도한다. 자신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어머니의 생을 반추하는 콜레트는 동시대의 모든 딸의 자화상과도 다르지 않다.

1954년 8월 3일 세상을 떠난 그녀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고,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으며 시신은 페르라셰즈 묘지에 안장됐다. 콜레트의 작품들은 여러 언어로 번역됐으며 연극, 오페라 등으로도 만들어져 그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그녀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내 삶은 근사했어요. 그걸 좀 늦게 깨달았지만” 생의 황혼기에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니 삶을 근사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콜레트의 작품을, 그녀에 관한 영화를 만나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조금 늦었을지라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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