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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럼 게재 일자 : 2019년 07월 09일(火)
획일적 52시간제, 연구 역량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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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잔인한 거인이다. 그는 아테네 교외의 케피소스 강가에 살면서 행인들을 상대로 강도질을 일삼았다. 잡아온 사람을 침대에 눕힌 다음 키가 침대보다 크면 다리를 절단하고,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침대 길이에 맞춰 다리를 억지로 늘여 죽였다. 그들은 키가 침대 길이에 딱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이 끔찍한 신화 때문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말이 생겼다. 자기 기준이나 생각에 맞춰 남의 생각을 뜯어고치려 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독단과 아집을 의미한다.

정부의 ‘주 52시간 근무제’ 추진 방식을 보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연상된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지난해 7월부터 근로자 300명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됐다. 내년 1월부터는 50~299명 사업장에, 그리고 2021년 7월부터는 50명 미만의 모든 사업체에까지 확대된다. 일과 삶의 조화와 행복추구권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은 글로벌 트렌드다. 지난 1년간 이 제도를 시행하면서 많은 기업이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인력난과 인건비 상승, 그에 따른 수익성 하락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도 저녁이 있는 삶과 이른바 워라밸(워크 라이프 밸런스)을 위해서는 필요한 정책으로 보인다. 문제는, 정부가 ‘주 52시간 근무제’를 융통성 없이 모든 업종에 획일적으로 적용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지난 4일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산기협)가 민간 산업체의 연구·개발(R&D)을 주 52시간 근로제의 예외 분야로 인정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R&D 분야를 일주일에 12시간 이상 연장근로가 가능한 특례 업종에 추가하거나 탄력근로제 적용 단위 기간을 1년까지 확대해 달라는 것이다. 탄력근로제는 연간 최대 근로시간만 준수하면 필요할 경우 언제든 초과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도다. 기업의 R&D 업무는 과제가 특정 시기에 집중되고 실험을 한번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핵심 연구자가 퇴근하면 대체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산기협은 저녁만 되면 연구소의 불을 무조건 꺼야 하는 유연성 없는 근무시간 단축 정책이 국내 R&D의 뿌리를 송두리째 흔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우리보다 앞서 근로시간 단축을 도입한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훨씬 융통성 있게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전통적인 제조업같이 시간 투입과 생산량이 비례하는 일자리에 대해서는 근로시간 단축제를 엄격하게 적용하지만, 창의성이 중요한 R&D와 정보기술(IT) 분야 등은 글로벌 경쟁력을 고려해 예외를 인정한다. 반면, 한국은 보건업과 일부 운송업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 획일적으로 적용한다.

지금까지 국내 IT 기업들은 밤낮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수출과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IT 강국 코리아를 만들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시대에 들어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거의 모든 미래 기술 분야에서 선진국에 뒤지며, 심지어 일부 분야는 중국에도 추월당하고 있다. 우리가 선진 경제로 나아가기 위해선 ‘기술 추격형’에서 벗어나 ‘기술 선도형’으로 전환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세계 최고의 R&D 역량이 필수적이다. 획일적인 근로시간 단축은 대한민국의 성장엔진을 멈추게 할 위험이 크다. 정부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서 벗어나 주 52시간 근무제를 융통성 있게 운영해 달라는 산업계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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