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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미숙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9년 07월 10일(水)
‘과거’로는 ‘미래’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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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韓·日 정상 과거·미래 정책差
세계화 우등생·열등생 길 바꿔
아베, 국제무대서 韓배제 주도

징용 갈등에 日 경제보복 확대
제2외환위기 도화선 될 수도
文대통령, 미래 위해 공조해야


한국은 세계화 시대의 우등생으로 불렸다. 1991년 탈냉전과 함께 다가온 기회를 동유럽 공산권 및 중국과의 수교로 잡으면서 국력을 키웠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으로 헤맬 때 한국은 눈부시게 도약했다. “일본에 근대화는 뒤처졌지만, 세계화는 앞섰다”는 자부심도 생겼다. 2007년 대선 전날 밤 서울시청 앞에서 만난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 다케사다 히데시(武貞秀士)는 “한국 대통령제의 역동성이 부럽다”고 했다. “일본의 내각제엔 미래가 없다”는 얘기도 했다. 그해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 글로벌 기여를 내세워 평창 개최권을 따냈다. 뉴욕발 금융 위기도 선제 대응해 위기 전이를 막았고, 주요 20개국(G20) 회의도 일본보다 10년 앞서 유치했다. 글로벌 코리아의 진가가 확인되던 시기였다.

그런 세계화 선진국이 문재인 정부 2년 만에 역주행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모든 한·일 관계 현안을 반일 프레임으로 접근하면서 미래 대비보다 과거 청산에 초점이 맞춰졌고, 국가 간 합의도 외교 적폐인 양 접근했다. 박근혜 정부 때의 위안부 합의가 파기되고 노무현 정부 때 일단락된 강제 징용 문제가 ‘코드 대법원’에서 뒤집힌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부가 칼을 빼 들었다. 반도체 핵심 소재 등 3개 품목의 수출 규제에 이어 배터리·자율 주행차 등 미래 산업의 소재 부품이 제2 타깃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997년 일본계 은행의 자금회수가 외환위기의 도화선이 됐듯, 이번에도 일본이 한국을 제2의 위기에 빠뜨리려는 것 아니냐는 공포도 번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한국이 피를 흘릴 때까지 갈 것”이라는 일본 언론의 보도에선 섬뜩함이 느껴진다. 한국이 더 이상 일본을 넘보지 못하도록 확실히 주저앉히겠다는 독기마저 읽힌다. 아베 총리가 전면에 나서 한국 압박 외교를 지휘하는 것을 보면 다케사다의 관측이 10여 년 만에 뒤집혔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양자 차원에서 진행하는 제재와는 별도로 글로벌 외교·안보·통상 무대에서 한국 배제 미래 전략도 주도면밀하게 구축해왔다. 아베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머릿속에서 한·미·일 공조를 지우고 대신 인도·태평양 전략을 입력시킨 것은 한국 배제 전략의 일부다. 일본이 기금을 대는 워싱턴의 싱크탱크들은 인도·태평양 전략 홍보에 집중하면서 한·미·일 공조론은 한물간 이슈가 됐다. 일본은 한국에 비해 자유무역협정(FTA) 후진국으로 불렸지만, 아베 총리는 메가 자유무역협정을 선도하며 간단히 역전시켰다.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자 여기에 ‘포괄적이고 점진적인(CP)’이라는 표현을 붙인 CPTPP를 이끌고 있다. 최근 일본과 관계개선을 한 중국도 가입을 타진해왔다고 한다. 문 정부도 CPTPP 가입 비공식 협의를 해왔으나 징용 갈등이 확대되며 중단됐다.

문 정부는 일본 대안으로 아시아를 염두에 둔 듯 아세안대표부까지 설치했지만, 아시아 국가들은 이미 일본 편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최근 주최한 ‘가치 외교’ 국제회의에서 웰시 브리지트 교수는 “14개 동아시아 국가 대상 여론조사에서 동아시아국들은 미국과 일본을 롤모델로 꼽았다”고 했다. 아시안 바로미터 서베이(2014∼2017)에 따르면 아시아 각국의 롤모델은 미국 22.9%, 일본 15.8%, 중국 9.0% 순이다. 한국을 선택한 국가는 하나도 없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적을 이뤄내 부러움을 샀던 대한민국은 사라졌다. 아시아인들은 이제 한국을 따라 배울 나라로 생각하지 않는다.

1965년 관계 정상화 이후 일본은 한국의 캐치업 모델이었다. 일본을 따라잡으려는 미래지향적 노력 덕분에 한국은 세계 12위 경제 대국이 됐다. 그러나 수교 후 한국이 대일 무역수지에서 흑자를 기록한 해가 없다는 사실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 대통령이 친일잔재 청산으로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며 과거에 골몰하는 동안, 아베 총리는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대중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한국을 고립화하는 쪽으로 전략을 구축해왔다. 과거에 초점이 맞춰진 정책은 미래의 동력이 될 수 없다. 과거로는 미래를 이길 수도 없다. 문 대통령은 국가적 재앙이 엄습하기 전에 한·일 기본조약에 입각한 협력의 가치를 재확인해야 한다. 한·일 관계가 흔들리면 한·미 동맹도 약화하고 경제는 물론 안보까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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