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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19년 07월 12일(金)
조선의 흥망성쇠, 그 중심엔 中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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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41년 영조가 사도세자를 참석시킨 가운데 경연을 시행하는 모습을 그린 ‘경현당 어제어필 화재첩’ 일부.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 중용, 조선을 바꾼… / 백승종 지음 / 사우

중용, 왕·선비들 세계관으로
왕의 유언보다 귀한 대접받아

사화 등 갈등의 원인 됐지만
임진왜란 위기극복에도 쓰여

환경문제 등 인간공멸의 시기
현재까지도 의미있는 우주관


조선시대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놓고 유교의 발상지인 중국의 서원보다 먼저 등재됐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는 보도들이 여럿 있었다. 달리 말한다면, ‘주변부’ 조선의 유교(성리학)가 ‘중심’보다 얼마나 강고한 이데올로기로 쓰였는지를 보여준다. 그 성리학의 사서삼경 중 ‘중용(中庸)’이 핵심 경전이었다는 건, 과문한 탓이겠지만, 역사학자 백승종 코리아텍 대우교수가 쓴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중용’은 ‘대학’ ‘논어’ ‘맹자’에 이어 사서(四書)의 끝자리에 서 있고, 현대인들에게는 마음을 닦는 수양서 중 손에 꼽을 만한 고전 정도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가.

‘상속의 역사’ ‘신사와 선비’ 등 내놓는 책마다 기존 시각을 뒤집으며 주목받아온 백 교수는 이번 책에서 ‘중용’에 관한 우리 대부분의 막연한 인식을 바꾸어 놓는다. ‘중용’은 조선의 왕과 선비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우주관 또는 세계관의 ‘렌즈’였고, 세자가 배우는 제왕학, 왕이 신하들과 공부하는 경연(經筵)의 필수 교재였으며, 때로 왕의 유언이나 법보다 더 중요하게 대접받았다. 특히 나라의 중대한 현안 때마다 왕과 신하, 선비들은 ‘중용’에서 해답을 찾았으니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중용’이 했다. 당연하게도 ‘중용’은 당파 간 이념투쟁의 무기가 됐고, 후대에는 새로운 문화와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 장애로 변했다. 책은 ‘중용’이 조선 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탐구하며, 현대에서 ‘중용’의 의미까지 새롭게 모색한다. 한편으론 “한 손에 ‘중용’을 들고 떠나는 일종의 조선 문화사 산책”이기도 하다.

책에 따르면, ‘중용’은 태생부터 사상투쟁의 산물이었다. ‘사서’의 막내 격인 ‘중용’은 2400년 전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 공급(孔伋)이 편찬했다. 당시는 소위 ‘이단’의 학설이 크게 늘어나 유교가 수세에 몰렸고 사상계의 패권을 장악하고자 ‘사서’ 중 가장 체계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내용으로 ‘중용’이 쓰여진 것이다. 이처럼 중국 사상사에서 유교는 도가, 묵가, 법가, 불교와 사투(思鬪)를 벌여야 했고 무기는 ‘중용’이었다. 그 과정에서 ‘중용’에 대한 해석은 더욱 정교해져 마침내 송나라 주희의 ‘중용장구집주(中庸章句集注)’에 이르러 ‘중용’은 ‘사서’에 편입됐고, 그가 완성한 ‘성리학’은 불교와 도교를 제압하며 이후 중국의 국가이념으로 채택됐다.

태종 3년(1403)의 실록에는 “정일(精一)과 집중(執中)은 제왕의 학문이라, 과거의 지혜를 배우는 것은 ‘중용’과 ‘대학’부터 시작하겠노라”는 태종의 언급이 나오는데, 이후 세자의 공부나 왕의 경연에서 ‘중용’은 필수서적이었다. 성종 대에 이르러서는 성리학자들이 불교세력을 조정에서 완전히 축출하고 조선의 사회문화적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해 ‘중용’을 토대로 이상국가를 건설하려는 기반을 다졌다.

16세기 조광조의 신진사류와 훈구파의 세력다툼 중심에도 ‘중용’의 해석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 훈구파는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중용’을 인용한 반면, 신진사류는 ‘홀로 있을 때 삼간다’(愼獨·신독)는 등의 도덕적 가치에 역점을 두었다. 조광조가 이끄는 기묘당이 숙청되면서 신진사류는 초야에 묻혀 ‘중용’에 의지해 심성론과 이기설 등의 영역을 새로 개척하며 성리학을 더욱 고매하고 심원한 사상으로 발전시켰다. 16세기 말부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총체적 위기를 맞은 조선 사회가 대안을 모색한 것도 ‘중용’을 통해서였다. 김장생 등이 주도한 예학적 질서수립이 바로 그것이다.

17세기 초까지는 학문의 자유가 있어서 조선 성리학에서 쌍벽을 이루는 이황과 이이가 주희의 ‘중용장구집주’에 오류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명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두 차례 난을 겪은 뒤 체제 위기가 깊어지자 사상 통제가 엄격해지고 ‘중용’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이 ‘사문난적(斯文亂賊)’ 시비를 불렀다. 송시열과 같은 보수적인 선비들은 박세당, 윤증 부자 등을 마녀사냥하듯 고난으로 몰았다.

신하들에게 직접 ‘중용’을 강의할 정도로 실력이 있었던 정조는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사회문화적 갈등이 심화되자 ‘문체반정’을 주도하고 ‘정학(正學)’인 성리학의 육성을 더욱 강조했다. 그 핵심은 역시 주희의 주석을 그대로 따르는 ‘중용’이었으며, 신하들과 ‘중용’을 공부하고, 경전에 대한 친시(親試·임금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시된 시험)를 치르기도 했다. 저자는 “당시 정약용의 답안지를 보면 한편으로는 주류 성리학계의 가르침에 순응하는 듯하면서도, 거기에서 이탈한 모습이 반영돼 있다. 그의 내면은 이미 혼란에 빠져 있었던 것”이라고 평가한다. 당시 지식사회의 분위기를 말해준다. 결국 한 사회의 이념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전반적인 발전을 가로막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평민지식인들이 여러 종류의 지식을 융합해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했는데, 하나의 체계적인 사상으로 등장한 것이 동학(東學)과 그 전통을 이어받은 증산교, 원불교 등의 신종교라고 저자는 본다. ‘사람이 곧 하늘’이며 ‘천주를 섬기라’는 최제우의 사상은 ‘중용’에 언급된 ‘하늘과 사람이 하나된 경지’(天人合一·천인합일)를 새롭게 정의한 것이라고 저자는 평가한다. 지구 환경의 파괴로 인간의 공멸을 우려해야 하는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우주관으로 ‘중용’은 여전히 의미를 갖는다고 저자는 강조했다. 296쪽, 1만8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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