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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정준모의 미술동네 설설 게재 일자 : 2019년 07월 15일(月)
無名 고흐를 세계 미술사 정상에 올린 사람은 ‘동생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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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센트 반 고흐, 꽃피는 아몬드 나무, 1890, 유화, 73.3×92.4㎝. 반 고흐미술관

고흐 숨지자 그림·스케치 수습
전시회·마케팅으로 작품 홍보


세상사를 보면 많은 영웅과 천재, 위대한 사람이 존재하지만 실은 그 뒤를 살펴보면 결코 그의 성공이 오롯이 혼자 힘으로 이뤄진 경우는 거의 없다. 반 고흐(1853∼1890)도 예외는 아니다. 26세 늦깎이 화가 지망생 고흐에게 가장 큰 힘은 동생 테오(1857∼1891)였다. 그는 네 살 위인 형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고흐는 외롭지 않았다. 사후에 그를 미술사의 지존으로 올려놓은 흔히 ‘조’라고 불렸던 동생 테오의 아내 요한나 봉허(1862∼1925)와 그의 조카가 더 있었기 때문이다.

고흐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무명이었다. 허나 고흐의 천재성에 못지않은 마케팅에서 천재적 소질을 보인 조는 컬렉터, 미술관, 비평가와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전략을 세우고 실행해 고흐를 미술사의 정상에 올려놓았다. 대학 졸업 후 영어교사로 일하던 조는 1887년 테오를 처음 만났다. 편지의 귀재 테오는 “나는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그 어떤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것을 당신에게서 발견했습니다”라는 구애의 편지를 보냈고, 조는 “나는 당신을 볼 때마다 왜 무감각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러나 2년에 걸친 편지 공세에 1889년 결혼에 이른다.

▲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그리고 테오가 일하던 파리로 이주했고 1년 뒤 형의 이름을 물려받은 조카 빈센트 반 고흐(1890∼1978)가 태어났다. 하지만 이듬해 고흐는 자살하고 6개월 뒤 테오마저 세상을 떠난다. 29세에 과부가 된 조는 한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고흐의 그림과 스케치 등을 수습했다. 그리고 파리를 떠나 고향 암스테르담 근교의 부숨에 자리 잡고 하숙집을 운영하며 자금을 마련해 천천히 고흐를 위한 일에 착수했다. 이곳은 많은 예술가와 비평가, 특히 조의 친구이자 영향력 있는 유명 미술비평가 얀 베스(1864∼1925)가 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고흐의 그림이 걸려 있는 조의 집은 지식인들의 살롱이 됐고, 그 집은 ‘문명의 중심’이 됐다.

이후 1892년부터 1900년까지 네덜란드 전역에서 20여 회의 고흐 전시를 열어 그를 알렸다. 특히 수작과 보통의 작품을 섞어 전시해 모든 작품을 ‘확실한 명작’으로 만들어갔다. 또 고흐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일에도 나섰다. 유명 화상인 카실러(1871∼1926)와 보이스(1878∼1946)를 비롯한 독일, 프랑스 화상들과 접촉해 작품 판매가의 10∼15%를 커미션으로 제공하며 전 세계 미술관과 개인 컬렉터들에게 작품을 팔았다.

약 10년간의 노력이 열매를 맺어 가던 1901년 조는 화가인 두 번째 남편 요한(1873∼1912)과 재혼했고, 요한도 고흐를 알리는 일에 끌어들였다. 조는 1905년 스테델릭미술관을 대관, 고흐 전시를 대대적으로 열어 명성을 확인시켰다. 또 고흐와 테오가 주고받았던 668통의 편지를 정리해 1914년 ‘형에게 보내는 편지’를 펴내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펼쳤다. 형제의 남다른 우애와 배려, 사랑이 묻어나는 편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려 고흐를 더욱더 깊이 받아들이게 했다. 전시 후 작품 가격도 올렸다. 하지만 일부 비평가는 조에게 “아무것도 모르면서 열정만 가지고 덤빈다”고 빈정거렸다. 하지만 조는 고흐 사후 30여 년간 1924년 런던 국립미술관에 판매한 ‘해바라기’를 필두로 약 190점의 작품과 55점의 드로잉을 중요 미술관이나 영향력 있는 개인 소장가들의 손에 넘겨주었다. 1925년 조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빈센트는 1930년 상속받은 모든 작품을 스테델릭미술관에 기탁했다. 고흐의 명성이 계속 높아가자 미술관 건립운동이 전개되고 이에 1962년 네덜란드 정부가 미술관 건립을 약속했고 조카는 모든 작품을 ‘반 고흐 재단’에 양도했다.

1973년 미술관이 개관하고 1999년 부속건물이 완공된 현재 매년 200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성소가 됐다. 이렇듯 한 사람의 천재 뒤에는 많은 이의 희생과 배려가 따른다. 최근 박서보, 하종현 등 국내 원로작가들의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있기까지 뒤에서 혼신을 다한 이들에게도 눈길을 돌려보았으면.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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