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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9년 07월 17일(水)
동아시아 金문화의 원류… 三國금관 기원은 스키타이 아닌 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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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용하의 인류 5대 ‘古朝鮮문명’- ④ 발달된 기술의 금문화와 철기문화

BC 25세기에 이미 도금기술
청동·금 활용 金銅장식 제조
金 양산하며 순금장식도 발전

고조선 상징물 태양·새깃털
삼국 금관에도 그대로 계승
스키타이 기원설 틀렸단 증거

BC 12세기엔 철기시대 열어
철검·철거울·쇠뇌 잇단 출토
BC 7세기엔 ‘강철’까지 진화

고조선은 당대최고 금속기술
같은 문명권인 부여의 철 장검
日 전파돼 일본刀 원형 된 듯


고조선문명은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금(金)’ 문화를 창조해 발전시킨 문명이었다. 고조선문명의 금 문화는 BC 25세기에 금을 청동기에 도금한 금동기로 시작됐다. 평양시 강동군 순창리 글바위 5호무덤에서 출토된 BC 25세기(bp 4425년·bp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거해 1950년을 기준으로 역산한 고고학의 연대)의 금동 귀걸이, 강동군 송석리 문성당 8호무덤에서 출토된 BC 24세기(bp 4384년)의 금동 귀걸이, 강동군 순창리 글바위 2호무덤에서 출토된 BC 24세기(bp 4376년)의 금동 귀걸이 등이 이러한 금동 장식물이었다.

고조선의 수도 지역에서는 적어도 BC 25∼BC 24세기에는 왕족과 귀족들에 의해 금동 귀걸이가 제조돼 사용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금동은 청동과 순금을 전제로 하고 후에 도금하는 것이므로 청동과 순금 기술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과학 기술을 요했다. 고조선문명에서 금은 매우 일찍 발견돼 사용됐으나 순금은 매우 귀중하고 소량이어서, BC 25세기에 이르러 도금기술이 발명되자 청동기에 금을 도금한 ‘금동’(金銅) 장식품 형태로 금 문화가 시작됐다.

자연과학자들이 주목한 대로, 글바위 5호 무덤에서 나온 금동 귀걸이는 과학기술상 아말감법으로 순동에 금을 도금한 것이었고, 글바위 2호 무덤에서 나온 금동 귀걸이는 판금법으로 순동에 순금박판을 씌운 것으로서, 이러한 금속공예 기술이 이미 BC 25∼BC 24세기 고조선에서 사용됐다. 한반도의 강들, 특히 고조선 수도 아사달이 위치한 대동강 유역에는 사금이 매우 많았으며, 운산 금광 부존에서 볼 수 있듯이 금광이 풍부했다. 고조선이 건국된 한반도 자체가 금이 많이 나는 지역으로 고대 중국인에게도 알려졌었다. 이미 신석기시대 사람들까지도 강가에서 사금 채집과 판금 제작을 시작했다고 추정된다. 강동군 강동읍에는 한말∼일제강점기 초기까지 ‘생금동’(生金洞·금이 나는 고을)이라는 이름을 가진 큰 마을이 남아 있었다.

‘순금’의 경우를 보면, 고조선 수도지역에서 BC 12세기의 ‘순금’으로 제조한 장식 패물들로 순금 귀걸이와 순금 목걸이도 출토됐다. 이것은 순금 장식품이 이때 처음 제조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술적으로 순금 장식물 제조가 금동 장식물 제조보다 쉽기 때문에, 금동 귀걸이를 제조한 BC 25∼BC 24세기에 순금 귀걸이, 순금 목걸이도 동시에 제조할 수 있었지만, 아직 발굴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순금이 매우 값비싼 것이어서 재료를 절약하기 위해 순금 장식물을 제작했다가도 녹여서 금동 장식물에 재활용했을 수도 있다. 순금 패물이 BC 12세기경부터 다수 나오는 배경은 이 시기부터 금광 채굴에 의한 금의 대량생산이 가능했던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문명의 이른 시기의 금 문화는 고조선 후국 부여를 비롯해 전 문명권에 전파됐다. 부여의 풍속에 대해 ‘삼국지’ 위서 부여전은 “부여에서는 아름다운 구슬이 산출되는데 크기가 대추만 하다”고 했고, “나라 밖에 나갈 때는 비단옷·수놓은 옷·모직 옷을 즐겨 입고, 대인(大人)은 그 위에다 여우·살쾡이·원숭이·희거나 검은 담비 가죽으로 만든 갓옷을 입으며, 또 금·은으로 모자를 장식했다”고 서술, 모자의 금·은 장식이 관습이었음을 기록했다.

이 기록을 증명하는 유적·유물이 1985년에 발굴됐다. 부여족 유적인 길림성 유수노하심(楡樹老河深) 묘지 유적에서 화려한 마노 구슬 목걸이와 금귀걸이 장식이 출토된 것이다. 목걸이는 마노 구슬 266개를 줄에 꿰고, 6돈의 금으로 만든 네모 모양의 장식을 달아 길이가 98㎝나 되는 화려한 것이었다. 금귀걸이도 <사진 2>에서처럼 장식 금잎을 많이 붙인, 매우 화려한 것이었다. 부여에서는 금 문화와 함께 금동 문화도 발전했다. 널리 알려진, 길림 동단산(東團山)에서 출토된 부여인의 청동 가면도 금도금한 금동 가면이었다.

부여·고구려·백제·신라·가야의 찬란한 금 문화와 금동 문화는 멀리 스키타이 금 문화와의 교류 훨씬 이전에 이미 고조선에서 먼저 계승·발전된 것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조선의 이러한 금·금동 문화를 직접 계승해 고구려·백제·신라·가야에서는 금관(金冠) 문화가 초기부터 발전했다. 고구려에서는 초대 동명왕(재위 BC 37∼BC 19년) 때부터 금관을 사용했다. 지금의 평양에 있는 고구려 동명왕릉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에 일본인들이 도굴, 부장품들을 반출해 갔다. 광복 후 북한 고고학자들이 발굴조사를 한 결과 ‘금제관식(金製冠飾)’들이 109점이나 출토됐다. 그 다수가 금관에 매다는 금 및 금동제 날개 장식들이어서, 동명왕이 금관을 의례용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금관은 최근 몇 개의 실재가 보고됐다. 신라 금관과 백제·가야 금관은 이미 잘 알려져서 더 설명이 필요치 않다.

필자가 여기서 구태여 고구려·백제·신라·가야의 금관까지 거론한 것은 이 금관들의 원류가 고조선문명의 금 문화임을 알지 못하고, 학계 일부에서 스키타이 기원설 또는 시베리아 기원설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관은 왕권의 상징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상’이 상징화돼 있다. 고조선문명에서는 태양과 단군(하느님)을 숭배했고, 하늘을 나는 새를 토템으로 상징화했다. 그러므로 고조선 사람들은 평민까지도 모자에 새 깃털을 꽂았었다. (농경문 청동기 참조)

고구려·백제·신라·가야의 금관들이 공통적으로 고조선문명의 금 문화·금관을 직접 계승한 자생적인 것임을 증명하는 요소는 다수 있다. 예컨대 ①금관의 양 옆면에는 고조선의 도안 모형인 새 깃털을 불꽃 등과 함께 다양하게 조합·변형하면서 표시했다는 점 ②금관의 앞면 꼭지 또는 중앙 정면에 넣은 태양을 상징하는 도안 ③금관의 테 둘레에 있는 몇 줄의 점선 ④고조선의 새 깃털과 불꽃 문양을 한 세움 장식 ⑤금관에 동반된 금귀걸이가 고조선의 금동 귀걸이를 직접 계승한 점 ⑥금관의 곡옥 달개가 고조선의 곡옥을 직접 계승한 점 등이 주목된다.

필자는 고조선문명 후예들의 이러한 금관들의 자생성과 특징은 특히 ①정면 중앙 또는 상단의 각종 원형 해(태양) 상징과 ② 옆면(귀 위)의 각종 새(鳥) 깃털 도안과 불꽃에 명백하게 표현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고조선문명의 태양숭배와 새 토템의 발전된 사상을 왕관에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고조선 전통이지 스키타이나 시베리아와는 상관이 없다. 학계 일부에서 한국 고대 왕관의 북방기원설을 제시하면서 왕관 앞·옆면의 도안을 기원후 5세기 스키타이 금 문화와의 교류 과정에서 얻은 나무와 나뭇가지에서 구했다는 시베리아 기원설을 주장하는 것은 ‘국왕이 사용하는 귀중한 금관’의 사상성과 전통 계승성을 파악하지 못한 빗나간 견해라고 본다. 고구려·백제·신라·가야의 금관은 스키타이 금 문화와 교류하기 훨씬 이전에 고조선문명 금 문화를 직접 계승한 것이다.

이런 찬란한 금관은 고조선문명의 후예들만이 썼다. 막강한 권력과 권위를 가졌던 이웃 중국의 역대 왕과 황제들도 이런 금관을 쓰지 못했다. 일본의 어떤 역대 왕들도 이런 금관을 쓰지 못했다. 오직 고조선문명의 후예들만이 이런 금관을 썼다.

또한 고조선문명은 동방에서 가장 앞서서 BC 12세기에 철기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고조선문명권은 두만강 유역 함경북도 무산(茂山) 지역과 만주 무순(撫順) 지역에 세계 최대 철광산 중 하나가 부존돼 있을 뿐 아니라, 한반도 만주지역 도처에 철광석이 부존돼 있는, 혜택받은 지역이었다. 특히 무순 지역엔 노천철광(露天鐵鑛)도 있어서, 이미 BC 70∼BC 49세기 ‘예’족의 신석기시대 신락(新樂) 문화 유적에서는 족장의 집 자리에서 석탄 정제품과 함께 모아놓은 적철광석(赤鐵鑛石)들이 출토되기도 했다.

현재 철기 발굴의 초기 단계에서는 우선 고조선 수도권 지역에서 주목되는 철기 출토품으로서 평양시 강동군 송석리 1호 석관무덤에서 철거울(鐵鏡)이 인골과 함께 출토됐는데, 인골의 연대가 BC 12세기로 측정됐다. 또 강동군 향목리 1호 고인돌에서 철창과 쇠줄, 철촉이 출토됐는데 BC 7세기로 측정됐다. 이 지역에서는 연속되는 그 후 편년의 철검(鐵劍·쇠장검), 철칼, 철제 기계활인 쇠뇌(鐵弩·석궁)들이 출토됐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송석리의 BC 12세기 철거울이 순도가 높고 단조해 제작한 쇠거울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철기 생산이 이미 시작됐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향목리의 BC 7세기 철창·쇠줄·철촉은 ‘선철’ 단계를 넘어 이미 ‘강철’ 단계로 들어서기 시작한 순도의 것이어서, 제철기술이 제강기술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려준다. BC 7세기에 강철이 생산됐다는 사실은, 해면철과 선철 생산은 훨씬 전에 이뤄졌으며 늦어도 BC 7세기에는 철제 무기와 농구 생산이 가능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만주 무순 부근 지역 유수노하심 중층유적의 고분 129좌에서 무려 540여 점의 철기가 출토됐는데, BC 331년경의 것으로 측정됐다. 한편 태래평양(泰來平洋) 묘지의 철기는 BC 412년경, 조동동팔리(肇東東八裏) 묘지의 철기는 교정치가 BC 481년의 것으로 보고됐다. 또 무산 철광산을 배경으로 한 함경북도 무산군 범의구석에서 출토된 쇠도끼 2개 가운데 1개는 BC 7∼BC 5세기 것이었고, 다른 1개는 BC 4∼BC 3세기 것이었다. 평안북도 영변군 세죽리 출토 쇠도끼·쇠과·쇠끌·쇠칼·쇠낫 등의 측정연대는 BC 4∼BC 3세기였다. 평양시 토성동 목곽무덤에서도 장검·쇠칼·극·활촉 등 철기가 세형동검·세형동과 등과 함께 출토됐는데, BC 3세기경의 것으로 측정됐다.

고조선문명은 종래의 청동 무기를 철제 무기로 바꾸기 시작했다. 철제 장검과 단검, 비수, 철창, 철제 화살촉과 쇠뇌, 철제 갑옷이 출현해 발전하기 시작했다. 고조선문명의 철기 문화에서 철검이 출현해 세형동검과 함께 사용됐다. 고조선문명의 부여 철검이 길림성 유수노하심 유적에서 다수 발굴됐는데(<사진 4> 참조), 우수한 ‘장검’이었다. 부여식 장검은 충북 청주시 오송읍 정방리 토광묘에서도 1개 출토됐는데, 칼은 철이고 자루는 동으로 제작해 조립한 ‘동병철검’(銅柄鐵劒)이었다. 제주 용담리 유적에서도 85㎝의 부여식 장검 2자루가 출토됐다.

부여식 철제 장검은 부여족 무사 집단의 이동에 따라 가야·탐라 지역에 전파됐으며, 말과 함께 일본 열도에도 전파된 것으로 해석된다. 필자는 부여 장검이 일본에 건너가 초기에는 왕과 장수의 신분재와 ‘쓰루기’라는 제사용 철검으로 사용되다가, 무사의 ‘일본도’로 발전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즉, 일본도의 기원은 부여 장검이라고 본다.

이상의 철기 출토품과 고조선문명권 각지에 산재한 철기 출토품을 종합해 볼 때, 고조선의 철기시대는 약 BC 12세기부터 세형동검 출현 직후에 동반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강철제 농구와 무기 생산은 약 7세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관찰된다.

일본 학계와 한국 학계 일부에서는 과거 일제 식민주의 사관의 설명과 유사하게 BC 3세기 초엽 연(燕)의 진개(秦開)가 고조선을 침공해 1000여 리의 고조선 영토를 빼앗은 후 철이 고조선에 도입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연의 철기 문화에 고조선이 패전한 것으로 추측한 것이었다. 그러나 BC 12∼BC 3세기의 고조선문명권 안에서 자생적으로 제조된 각종 우수한 철기들이 다수 출토됐으므로, 연의 철기 문화에서 고조선의 철이 전파돼 들어왔다는 가설은 허구에 불과했음이 증명됐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 선생은 반대로 연의 진개가 고조선 후국 동호(신조선)에 인질로 오자 동호왕이 진개를 과신해 군사기밀까지 모두 알게 해 주었기 때문에, 진개가 고조선의 철기·철제 무기를 포함한 선진문물을 배우고 군사상태를 잘 파악해 귀국한 다음 고조선(동호 지역)을 기습해 패전시킨 것으로 설명했다. (‘고조선상고문화사’) 고대 중국인들은 동북(만주) 지역 철물이 중원 지역보다 더 발전해서, 동북에서 중원으로 들어왔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고조선문명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청동·금동·금·철기를 망라해 당시 최고 수준의 찬란한 금속기술과 금속문화에 있었다. 이것은 고조선문명의 후예에게 계승돼 중앙아시아에 들어가 지배한 투르크족, 유럽에 들어가 라인강 양안을 거의 200년 동안이나 통치한 아발(大檀)족 모두 원래 우수한 ‘대장장이’들이었다. 본토에 남은 고조선문명의 후예들도 고조선·고구려·신라의 쇠뇌, 부여의 철장검, 신라의 금관과 종, 백제의 금동대향로, 가야의 갑옷·투구·장검, 고려의 금속활자 등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세계 최고, 최선진 금속문화의 전통을 계승했다. (문화일보 6월 26일자 27면 3회 참조)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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