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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美國에서 본 한반도 게재 일자 : 2019년 07월 17일(水)
미국은 ‘한국 손’ 들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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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욱 스탠퍼드大 교수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韓 징용판결, 국제 조약과 괴리
1965 한일 협정은 국가 간 합의
美,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해소


한·일 관계가 심한 독감을 앓고 있다. 그동안에도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감기처럼 위안부, 역사 교과서, 독도 문제 등으로 주기적인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단순한 감기를 넘어서 합병증을 수반하는 심각한 질환으로 번질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한 결과다. 정확한 원인 진단과 올바른 치료법이 시급하다. 그렇지만 한국 정부는 근원 해소보다 증상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분명한 입장 정립 없이 경제인 간담회, 일본 제품 불매운동, 미국에 중재 요청, 일본과의 ‘사무적 설명회’를 한다고 원인이 치료되진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항일투쟁’을 한다고 일본이 공식 입장을 바꿀 리 만무하다. 미국 역시 한·일 간 긴장 고조를 바라진 않지만, 자국 안보나 경제에 큰 영향이 없는 한 중재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국제 여론 역시 한국에 우호적인 것도 아니다. 전문가들이 한·일 관계의 이상 징후를 누차 경고했지만, 정부는 외교적 해법을 찾기는커녕 무대응으로 일관하다가 이제야 이리저리 허둥댄다. 필자 역시 지난 칼럼(6월 19일 자)에서 한·일은 전략적 공유지를 가진 나라인 만큼,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만나 새로운 비전을 공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쌓일 대로 쌓인 감정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현재의 한·일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직접적인 원인은 국내법과 국제조약 간의 괴리에 있다. 여기다 정치 논리가 외교 논리를 압도했다. 한국의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30일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1인당 1억 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일본은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징용 피해에 대해 개인에게 배상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해 왔으나, 대법원은 이 협정이 정치적 해석이며 개인 청구권에 적용될 수 없다고 최종 판단했다. 이에 일본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외교는 실종되고 한·일 관계는 급속하게 냉각됐다.

하지만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면 이는 훨씬 더 복잡한 사안이다. 일본의 패전 후 배상 문제에 기본적인 토대가 된 것은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맺어진 평화조약이다. 패전국 일본이 연합국 48개국과 서명한 이 조약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4월 28일에 발효되면서 대일 전쟁 배상 청구권을 일괄적으로 면제했다(14조 b항). 그동안 일본과 미국에서 진행됐던 위안부, 징용 관련 소송 등은 모두 이 조항에 근거해 법원에서 기각됐다. 하지만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서명국에서 배제됐기 때문에, 한·일 간 청구권 문제는 1965년 협정에서 따로 논의가 됐던 것이다.

이제 와서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불공정하다고 항의할 수는 없다. 이 조약을 통해 태평양전쟁 이슈를 마무리하고 전후 동북아 질서를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미국이 한국의 손을 들어줄 리도 만무하다. 패전 후 일본 사회를 다룬 책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존 다우어 교수의 말대로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승자의 정의(victor’s justice)’인 것은 맞는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또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문제가 있다 해도 엄연한 국가 간의 합의임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일본을 향해 한국 대법원 판결에 무조건 따르라고 압박하기보다는 국내법과 국제조약 간의 괴리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를 고민하며 현실적인 해법을 찾았어야 했다.

하지만 적폐청산에 매몰된 문 정부는 외교적 사안 역시 같은 논리로 접근하는 자세를 취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외교부가 대법원에 의견을 제시한 것을 적폐로 규정했지만, 미국 역시 소송이 진행될 때 국무부가 대법원에 “대일 청구권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해소됐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적폐청산과 달리 국제 이슈는 상대국이 있는 만큼 국내적·정치적 논리가 아닌 국제적·외교적 논리로 대응했어야 하는데 문 정부의 대처에 아쉬움이 크다.

국내법과 국민 정서가 국제법과 외교 논리에 충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가혹한 식민지배를 잊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의 식민지배라는 원죄만 탓하거나 항일투쟁을 독려할 때가 아니다. 뜬금없이 미국이 중재에 나서 달라고 외교 당국자들을 워싱턴에 급파할 일도 아니다. 아무런 전략도 없이 국수주의적 감정만 자극하며 허둥댄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국제사회가 한국 편인 양 국민을 호도해서도 안 된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국제정치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한 진단과 이를 실행할 용기다. 유능하고 차분한 외교 역량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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