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미래 파괴할 ‘폐해의 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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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용 경제산업부 차장

문재인 대통령이 ‘축적의 길’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지만 축적(蓄積)의 의미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한국 경제의 미래에 위기감을 느낀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은 이 책의 총론에 속하는 ‘축적의 시간’에서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고 우리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해법은, 긴 호흡으로 경험을 쌓아가기 위한 축적의 시간을 어떻게 벌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축적도 갈림길과 같아서 ‘긍정적 축적’과 ‘부정적 축적’이 있다. 어떤 축적이냐에 따라 미래엔 다른 결과로 다가온다. 사실 일본이 반도체 강국인 한국을 겨냥해 반도체 핵심 소재를 무기화한 자신감은 축적의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 긍정적 축적의 시간을 보낸 나라와 부정적 축적을 거쳐온 나라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은 한곳에서 뼈를 묻은 기업과 기술자, 그들이 만든 경제적 성과가 존중받는 문화와 시스템이 자리 잡혀 있다. 기업이 검찰과 국세청, 금융 당국의 보복을 신경 쓰지 않으며 대기업 회원사 중심인 경제단체 수장이 공개적으로 정부 정책을 비판할 수 있는 나라다. 총리와 퍼스트레이디가 부른다고 기업 총수들과 CEO들이 죄다 달려가지도, ‘1분 팻말’의 수모를 당하지도 않는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일류 기업을 발목 잡는 삼류 여의도 정치권, 반기업 정서 확산에 앞장서는 청와대와 정부, 평등을 강요받는 교육, 강력한 노조에 휘둘리는 대기업, 가업을 승계하려면 경영권까지 팔아야 하는 중견·중소기업 등이 우리의 현주소가 아닌가. 경제학의 기본을 역행하는 초고속 최저임금 인상, 기술 개발을 위해 밤을 새워야 할 연구원과 엘리트 직원까지 강제로 ‘칼퇴근’시키는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평등 교육의 이념에 사로잡힌 자사고 폐지, 법인세 인상 및 투자세액공제 폐지 등 문 대통령이 내놓았던 공약과 정책 하나하나가 일반 대중에겐 자극적이고 달콤하지만, 미래에 큰 해악을 미칠 축적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일본이 화학물질인 불산을 무기화한 점을 자성해야 한다. 반일 정책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2년 경북 구미에서 불산 유출 사고가 터지자 현장에 찾아가 국민의 여론에 불을 질렀다. 문 대통령의 민주당은 국내 소재 산업 국산화의 장애물로 지적되는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불산 유출 사고라는 실패를 축적의 시간으로 봐줬다면 우리의 불안감이 이처럼 크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그 피해는 기업과 국민의 몫이다.

최근 문 대통령은 무디스가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중국·일본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한 것과 15억 달러 규모의 외평채 발행에 성공한 점을 자랑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문 대통령이 적폐로 지목하는 두 보수 정권에서 국가 채무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온 축적의 덕이라는 것이 최근 만난 미 월가 금융 전문가의 평가다. 이런 문 대통령이 온갖 현금 살포를 통해 국가 채무 비율을 올리려는 것은 이기적이고 모순된 행동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경제학의 향연’에서 한 정부의 경제 정책은 미래 정부의 결과물로 나타난다고 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은 참 우려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수년 뒤 봇물 터질 문재인 정부 5년간의 ‘축적의 폐해’를 더 걱정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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