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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 게재 일자 : 2019년 07월 19일(金)
日 경제 보복, 왜 ‘에칭가스’인가… 일본산 순도 99.999% ‘독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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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 지난 4일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3개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시행한 가운데, 12일 불화수소 국내 생산 업체인 동진쎄미켐 직원들이 생산 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반도체 깎아내기·세정공정 핵심소재
정밀회로일수록 초고순도 필수
국내선 환경규제 탓 생산 엄두 못내

불순물 잘제거해야 불량률 감소
삼성·하이닉스 日에 전적 의존
재고량 기밀…추가확보 안간힘
업계선 “2~3개월분 비축” 추정

2011년 구미 불산누출사고후
공장 안전기준 79개 → 413개
1년반 內 국산화 가능하겠지만
순도 99.9% 이상 달성 쉽잖아

우라늄 농축에 에칭가스 쓰여
日 “北 유입” 주장하며 韓제재
산업부 “근거없는 억측” 반박

“民·官 초기기술 연구소 시급”


일본은 지난 4일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3개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대(對)한국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강행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성 조치가 분명하지만, 일본은 수출된 전략물자가 북한으로 반출되는 등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한국 정부는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준비하고 있지만, 일본은 추가 보복 조치를 예고하는 등 양국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반도체 생산 공정의 핵심 소재인 에칭가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양국의 경제 협력 관계를 상징하는 소재다. 과거사를 놓고는 갈등을 빚고 있지만, 경제적으론 긴밀하게 엮여 있는 게 한·일 관계다. 한국이 일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에칭가스 공급 여부는 양국 관계를 나타내는 바로미터가 됐다.

1. 에칭가스 용도

에칭가스는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습식 식각과 세정(클리닝) 과정에서 핵심적으로 쓰이는 소재다. 식각 공정이란 화학 용액이나 가스를 이용해 실리콘 웨이퍼상의 필요한 부분만을 남겨놓고 나머지 물질을 제거하는 과정으로, 습식의 경우 증기로 에칭가스를 넣어 해당 작업을 수행한다. 세정 공정에서는 반도체 웨이퍼 위에 전자회로를 쌓으며 생긴 불필요한 불순물을 화학적으로 떼어내는 작업에 에칭가스가 쓰인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식각 공정은 99.99% 순도의 에칭가스가 필요하며, 비교적 낮은 순도를 쓰는 세정 작업에서도 대부분 고순도 에칭가스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에칭가스는 반도체 분야 외에도 독가스 등 화학무기를 만드는 데 쓰인다.

2. 日 에칭가스 수출규제 이유

일본은 지난 4일 한국 반도체 산업의 핵심 소재인 에칭가스와 더불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FPI), 포토레지스트(PR) 등 3개 품목을 수출규제 품목에 포함했다. 한국이 전략물자 관리 우방국이었는데, 반도체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에칭가스가 북한으로 흘러들어 갔다고 주장했다.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한국에서 대량 발주해 에칭가스를 수출했는데, 한국 기업에서 행방이 묘연해졌다”며 “에칭가스는 독가스나 화학무기 생산에 사용될 수 있는데, 행선지가 북한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에 대해 “불화수소가 북한을 포함한 유엔 결의 제재 대상국으로 유출됐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일본은 근거 없는 주장을 즉시 중단하기 바란다”고 즉각 반박했다.

3. 수출 규제 영향은

일본은 에칭가스 등을 한국에 수출하는 규제 품목에 포함 시켰다. 노가미 고타로(野上浩太郞) 일본 관방부 부장관은 “이번 조치는 한국에 대해 실시해 왔던 간소화된 절차를 통상적인 절차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WTO 협정과도 정합성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일본 기업이 이들 소재를 한국에 수출하려면 매번 당국의 심사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본 정부가 수출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심사 기간을 연장하거나 허가를 지연시켜 수출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간 일본 정부는 3년 단위로 ‘포괄적 수출 허가’를 내 줘 한 번 포괄적 허가를 받으면 3년간 개별 품목에 대해 허가를 받지 않도록 했다. 일본이 한국에 제공했던 ‘최혜국 대우’를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은 WTO 규정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다.

4. 왜 일본산만 쓰나

한국 반도체 생산의 양대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일본 에칭가스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던 것은 ‘순도 99.999%’의 고순도 때문이다. 반도체 공정에서 웨이퍼 위에 10나노미터(nm·10억분의 1m) 등의 정밀 회로를 만들 때 에칭가스의 순도가 높아야 정확도와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불순물 제거가 중요한 이유는 불순물 종류에 따라 불량률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불순물이 남아 있을 경우 다른 금속이랑 붙거나 전기가 통하지 않아야 할 부분에 전류가 통하는 등 오류가 날 수 있다. 현재까지 99.999% 고순도 에칭가스에 압도적인 노하우와 기술,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은 일본 기업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설계회로를 잘 그려도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고순도 에칭가스는 세계적으로 일본이 압도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5. 우라늄 농축에도 사용

자연 상태에서 우라늄은 99.3%가 우라늄 238 형태로 존재한다. 우라늄이 원자폭탄 원료인 핵물질이 되려면 0.7% 정도인 우라늄 235 비율이 95%를 넘어야 한다. 우라늄 235의 함량을 높이는 과정에서 불화수소가 사용된다. 우라늄 광석을 불화수소로 녹이면 우라늄이 육불화우라늄(UF6·원심분리기에 주입해 농축하기 위한 기체로 변환한 우라늄 화합물)으로 변한다. UF6를 원심분리기에 넣어 분당 5000번 이상 속도로 돌리면 가벼운 우라늄 235는 중심부에, 무거운 우라늄 238은 바깥쪽에 모이게 된다. 이 같은 과정을 반복해 고농축우라늄을 얻게 된다. 학계 일각에서는 우라늄 농축에는 굳이 가격이 비싼 고농도 불화수소를 쓸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불화수소 가격이 그렇게 고가가 아닌 만큼 고농축우라늄을 얻기 위해서는 북한이 중국산보다는 일본산을 선호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  지난 12일 일본 도쿄의 경제산업성 간이 회의실에서 열린 한·일 실무협의 회의에서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찬수(오른쪽) 무역안보과장과 한철희(〃 두 번째) 동북아 통상과장이 일본 경제산업성의 이와마쓰 준(왼쪽) 무역관리과장과 이가리 가쓰로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을 상대로 마주 앉아 있다. 연합뉴스

6. 국산화 안된 이유는

에칭가스의 국산화에 진전이 없었던 건 환경규제 탓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 등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경북 구미에서 발생한 불산 누출 사고 이후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 개정되면서, 유해물질 취급 공장이 충족해야 할 안전기준은 기존 79개에서 413개로 늘었다. 사실상 규제가 5배 이상으로 늘어난 셈이다. 이 기준을 맞추려면 공장마다 최소 수십억 원씩 시설 개선비용이 든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국산화보다 일본에서 수입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 된 것이다. 하지만 환경부는 “화관법은 유해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취급하도록 해 사고를 줄이기 위한 필수사항을 규정하고 있을 뿐 공장 건설 자체를 제한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국내 업체가 에칭가스 개발에 나서면 일본 업체가 가격을 크게 떨어뜨려 기술 개발을 막는 경우가 많았고, 첨단 소재 개발에 대한 국가 및 관련 기업 지원이 부족한 것도 국내 생산을 어렵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7. 국내 개발 수준

에칭가스 국산화율은 사실상 0%에 가까운 실정이다. 그렇지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3대 수출 제한 품목 가운데 에칭가스 국산화 가능성이 가장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불화수소는 국내 기술진이 달려들면 1년에서 1년 반 정도면 상당한 수준의 국산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품질이다. 반도체 공정에서 세밀한 작업을 위해서는 고순도(99.9% 이상) 에칭가스를 써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화에 성공하려면 품질은 물론, 가격 경쟁력도 갖춰야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고 말했다.

8. 삼성·하이닉스 보유량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생산 기업들은 현재 보유한 불화수소 재고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재고량은 회사 최상급 기밀에 속한다”며 “만약 정확한 재고량이 알려지면 불화수소를 수입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협상력을 잃게 되는 것이며 투자자들의 불안감도 키울 수 있어 사내에서도 정확한 재고량을 아는 사람은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설명했다.

다만, 양사 모두 일본의 수출규제로 당장 반도체 생산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점으로 미뤄봤을 때 양사 모두 불화수소 재고량을 최대 2∼3개월 치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일본의 규제 방침이 나온 이후 삼성전자는 여러 경로를 통해 시장에 남아 있는 에칭가스를 일정량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관계자는 “일본이 수출 규제를 계속한다면 수개월 이상 버티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9. 다른 소재 보유 현황

일본 정부는 에칭가스 외에도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레지스트를 수출 규제 소재에 포함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폴더블폰과 같은 유연한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데 쓰인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대일 수입 의존도가 무려 93.7%에 달한다. 대만(3.9%)과 중국(1.4%)에서도 일부 수입하고 있지만, 극히 일부분이다. 반도체 기판을 제작할 때 쓰는 감광제인 레지스트의 대일 수입 의존도는 91.9%다. 나머지는 미국(7.4%)에서 들여오고 있다.

이들 품목은 일본 기업의 세계 점유율이 70∼90%에 이르는 만큼 당장 다른 나라에서 공급처를 찾기가 쉽지 않다.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는 “한국은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반도체 가공 공정에 들어가는 소재와 장비를 개발할 수 있는 민관 공동연구소가 없는 상황”이라며 “미국 IBM과 뉴욕주 정부가 함께 반도체 장비·소재를 연구하는 알바니 컨소시엄을 만들었듯 한국도 전략적으로 초기 기술을 확보할 연구소를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10. 영향받는 품목은

김영주 한국무역협회장은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서 열린 ‘통상전략 2020보고서’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배제할 경우 몇 개 품목이 영향을 받는다고 정확히 집기는 어렵지만 850개 정도로 보고 있다”며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이 배제될 경우 글로벌 밸류 체인이 붕괴될 것”이라고 밝혔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는 18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일본의 경제보복과 한일관계’ 포럼에서 “향후 문재인 정부의 플래그십 정책인 수소 경제, 인공지능(AI), 로봇, 의료, 우주산업 등 4차산업, 태양광 관련 산업도 조준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현아·윤정아·이해완·이은지 기자

kimhaha@munhwa.com
e-mail 김현아 기자 / 정치부  김현아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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