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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Fifty+ 게재 일자 : 2019년 07월 19일(金)
“맞지않는 ‘법복’ 20년 입었으니… 이젠 ‘추리’하는 재미에 빠질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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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장판사 출신’보다는 ‘추리소설 쓰는 작가’로 유명한 도진기 변호사가 지난 1일 서초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지난 5월 출간된 책 ‘판결의 재구성’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추리소설 쓰는 도진기 변호사

판사 시절에 잇달아 10편 펴내
2010년 ‘선택’으로 신인상받아
최근엔 ‘판결문 비평서’ 출간

서울대 법대 입학뒤 공부 기피
현실 도피처로 소설책에 빠져
그때 엉뚱한 생각이 작품 토대

자유로운 ‘백수 탐정’ 진구는
고시생 시절 나의 모습과 닮아
올여름 휴가때 시리즈 마무리
고진의 최종 대결도 이미 써놔


탐정이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사냥 모자를 쓴 채 굽은 파이프 담배와 돋보기를 늘 들고 다니는 남자, ‘셜록 홈스’다. 1887년 첫 발표 이후 셜록 홈스와 그를 항상 따라다니는 존 왓슨 박사는 이제 소설 작품 속의 주인공을 뛰어넘어 탐정이라는 이미지 자체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됐다. ‘어떤 사건’을 겪은 뒤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된 탐정 ‘고진’은 평범한 변호사가 아닌, 법정에 나가지 않고 뒷골목에서 일을 해결해 주는 ‘어둠의 변호사’로 통한다. 그런 고진의 옆에는 정의를 구현하려는 서초경찰서 열혈 강력계 팀장 이유현이 있다. 둘은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범인에 맞서 사건의 실체를 파헤친다. 고진과 이유현은 셜록 홈스같이 추리소설사에 오래 남는 불멸의 캐릭터가 될 수 있을까.

도진기(52·사법연수원 26기) 변호사는 2010년 ‘붉은집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 등장하는 추리소설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소설가다. 우연의 일치일까. 탐정 고진처럼 도 변호사 역시 2017년 2월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 이제는 본업인 변호사보다 한국 추리소설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고정 팬덤을 확보한 중견 작가로서 주목받는 그를 지난 1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무실은 당초 상상하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판사직을 내던지고 법의 테두리 안팎을 넘나들며 암약하는 소설 속 변호사 고진의 박력 넘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린 채 들어섰지만 도 변호사의 사무실은 이런 예상이 무색할 정도로 평범한 모습이었다. 책상 앞 테이블에는 커다란 서류뭉치들만 잔뜩 쌓여 있을 뿐, 읽는 사람의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미스터리하고 스릴 있는 추리소설을 잇달아 펴내는 사람의 공간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이 밝고 깔끔했다.

“그럭저럭 사무실은 굴러가는 것 같아요. 고진이었다면 정작 맡지 않았을 따분한 경제사건이 대부분입니다. 하하하. 형사사건도 있긴 하지만 제가 맡은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가급적 피하려 하죠. ‘어둠의 변호사’ 고진의 활극은 주로 제가 늦은 시간 집안 부엌 식탁에서 노트북을 켜고 앉았을 때에야 시작됩니다.”

나이 40대에 늦깎이 데뷔한 도 변호사는 마치 그동안의 시간이 아까웠다는 듯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작품을 쏟아내며 필력을 과시하고 있다. 2010년 ‘선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그는 판사 시절에만 10편을 잇달아 펴냈다. 2014년엔 백백교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장편 ‘유다의 별’로 한국추리문학대상을 받았다. 누구나 선망하는 부장판사직을 내려놓으면서 고민이 없었냐고 물었다. 되레 판사직을 그만두고 몇 년 더 빨리 법원을 뛰쳐나오려 했단다.

“죽는 순간 ‘그동안 내가 왜 조금 더 재밌게 살지 못했을까’를 후회하지, ‘왜 더 도덕적으로 살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할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맞지 않는 옷을 20년 남짓 입었으니 이만 하면 두 번째 인생을 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차분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도 변호사가 만들어낸 세계의 생생한 캐릭터와 치밀하게 계산된 트릭은 사실 그의 젊은 시절 방황의 산물이다. 도 변호사는 주위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지만 좀처럼 법학 공부와 가까워지지 못했던 젊은 시절을 회상했다.

“처음에는 정말이지 ‘공부가 이렇게 재미가 없을 수 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2학년 때까지 읽은 법전이 채 한 권 분량도 안 됐지요. 고시 공부하기에는 내적 욕망이 너무 많았던 거죠. 현실에 대한 도피처로 소설책에 빠져들어 혼자 엉뚱한 생각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심지어 당시 사람을 영원히 살게 해준다며 유행하던 영생교 주변에도 기웃거렸죠. 진지하게 출가 계획까지 세운 적도 있습니다. 결국 군대에 다녀와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바보천치 같은 시절이었죠.”

말은 이렇게 해도 그의 ‘엉뚱한’ 방황은 모두 인간의 악함, 이기적 본성을 끝까지 파고드는 작품 전반의 토대가 됐다. 1920~1930년대 실존했던 사이비 종교 집단 백백교를 현대에 벌어지는 잔인한 살인사건과 접목시켜 기발한 상상력으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유다의 별’은 사이비 종교 모임에 기웃대던 도 변호사의 고시생 시절 경험이 소설에 살아 숨 쉬는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고진과 더불어 도 변호사가 창조한 대표적 캐릭터로 꼽히는 ‘백수 탐정’ 진구는 상상력과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추구하는 그의 이러한 성향이 보다 강하게 드러난 인물이다. 법대를 다니다 중퇴하고 백수로 지내면서 사건 의뢰를 받아 해결하는 진구는 정의 실현보다는 오로지 이익과 재미를 위해서만 움직인다. 형사도 변호사도 아닌, 성실함과는 한참 거리가 먼 20대 청년 진구의 모습에는 고시생 시절 도 변호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작가 데뷔 초기에는 솔직하게 말하기가 민망해서 작품 속의 인물과 나는 관계가 없다는 식으로 인터뷰했죠. 하지만 진구나 고진 모두 제 개인적인 내면에서 탄생한 캐릭터입니다. 판사라고 해서 늘 선한 생각만 하고 살진 않습니다. 하하하. 솔직히 말하자면 다음 생은 진구처럼 계속 살아보고 싶기도 해요.”

최근에는 추리소설의 영역을 잠시 떠나 그간 써두었던 판결문 비평을 책으로 묶어 냈다. ‘판결의 재구성’은 20년의 판사 생활을 통해 그가 들여다본 우리 법원의 논쟁적인 판결 30건을 다뤘다.

“‘판결의 재구성’은 법원을 그만뒀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책입니다. 저도 판사 생활을 해봤지만 판결의 취지가 사람들로부터 오해받는 경우도 상당히 많아요. 하지만 제대로 된 판사라면 그러한 오해에 괴로워하거나 싫어해서는 곤란합니다. 오히려 논쟁을 사회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해요. 따지고 보면 판결만큼 비판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는 것도 없습니다. 항소 절차 말고는 일반 국민이 판결을 두고 이의 제기를 할 방법조차 없지 않나요? 대중과 법원 사이의 괴리를 좁히고 싶었습니다. 판결이 우리 곁에서 멀리 있지 않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판사 시절 시민이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판결이 신문에 날 때마다 판결문을 따로 구해 읽는 버릇이 들었단다. 옳고 그름을 떠나 튀는 행동을 싫어하는 법원에서는 확실히 ‘눈에 띄는 행동’이었다. 돋보이길 원하는 성격이 아니라 대놓고 엇나간 행동을 하진 않았지만 도 변호사는 이 시절 생각했던 것만큼 판결문이 완전무결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저도 판결을 내릴 때 ‘꼭 이렇게밖에 처벌할 수 없나’ 하는 답답함이 들었습니다. 머릿속에서 정의와 법이 충돌하는 것이 일상이었죠.”

어쩌면 도 변호사의 캐릭터인 ‘탐정 고진’은 그가 법조계 생활에서 느꼈던 괴리감을 대신 해결해주는 슈퍼 히어로에 가까운 인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간한 책이 점점 쌓이면서 어느새 추리소설 독자들은 그의 작품을 두고 ‘고진 시리즈와 진구 시리즈 중 어느 것이 더 재미있느냐’며 논쟁을 벌이기까지 한단다. 최근 글쓰기와 변론, 방송까지 세 가지 모두 병행하느라 신작이 뜸한 것이 흠이라는 도 변호사는 “변호사 업무에 지쳐 한동안 진구 시리즈에 소홀했다”며 “이번 여름에는 휴가를 내서 진구 시리즈 신작을 마무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탐정 고진과 그의 숙적인 사이코패스 정신의학자 이탁오의 운명적인 최종 대결까지 이미 결말을 써두었으니 독자들께서는 양쪽 모두 천천히 즐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무실을 나서는 길에 그가 평소 생각하던 현실에서의 탐정 고진과 진구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원작자 입장에서 소설이 영화·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원하는 ‘가상 캐스팅’이 따로 있는지 물었다. 실제로 도 변호사의 작품 중 상당수를 두고 영화·드라마화를 염두에 둔 판권 계약이 이미 이뤄졌다고 한다. “고진 변호사는… 배우 하정우 씨가 어울릴 것 같아요. 고진이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꽃미남이어서는 안 되거든요. 하하하. 탐정 진구는 배우 김수현 씨가 어떨지 생각해봤습니다.”

흔히 요즘 세대를 대표하는 탐정 캐릭터를 말할 때 어른들은 ‘셜록’, 청소년들은 ‘코난’을 꼽는단다. 모두 추리문학 강국으로 불리는 영국과 일본에서 탄생한 콘텐츠다. 이제 우리도 누구나 알 만한 한국인 탐정 캐릭터가 생기는 것일까. 도 변호사는 오늘도 독자들이 읽으면서 오싹해지고 머리가 하얗게 비는 결말을 쓰기 위해 서초동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희권 기자 leeheke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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